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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Sep 24. 2018

여덟 살이 복지를 말하다

매일 택시를 타고 등하교를 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시아가 물었다.

"엄마, 학교에 돈을 많이 냈어?"

"아니. 학교에 돈 안 냈어."

"그럼, 엄마가 택시 아저씨들 돈을 주는 거야?"

"아니, 엄마가 드리는 건 아니고..."

"그럼, 아저씨들은 그냥 오는 거야? 그냥 어린이들 도와주려고? 진짜 좋은 아저씨들이네."

"아... 아저씨들이 좋기는 한데, 그냥 오시는 건 아니야. 덴마크 나라에서 아저씨들 돈을 드리는 거야."

"그래? 그럼 나라는 돈이 어디서 났어?"

"사람들이 나라에 돈을 내는 거지. 그걸 세금이라고 그래. 어른들이 일을 하면, 일을 해서 번 돈을 다 갖는 게 아니라 나라 하고 나눠 갖는 거야. 그런데, 덴마크는 다른 나라보다 나라에 내는 돈이 많지."

"아, 그러니까 우리한테 택시를 보내 줄 수 있는 거구나.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면 나라가 더 많이 사람들을 도와주겠구나."

"응...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럼 아픈 사람들은 어떻게 해? 아파서 일을 못하면 나라에 돈을 못 내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도와줘?"

"아파서 일을 못하는 사람은 그냥 도와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낸 세금을 모아서 아픈 사람들도 도와주는 거지."

"아, 그래? 그럼 세금을 많이 내는 건 착한 일을 하는 거네. 아빠가 일을 해서 돈을 나라에 많이 줘도 좋은 거다. 내가 택시도 탈 수 있고, 아픈 사람들한테도 나누어 줄 수 있고. 내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인데, 내가 아팠을 수도 있고, 엄마 아빠가 아플 수도 있는데, 그때는 나라가 우리도 도와주니까 좋은 거네."

"그렇지... 그런데, 세금이 많으니까, 나라에 내는 돈이 많으니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돈이 좀 적어지긴 하지."

"아... 그래서 엄마가 여기서는 장난감을 많이 안 사주는구나.. 그건 좀 안 좋은데... 그래도 뭐... 아빠가 내는 돈을 다른 사람들이랑 나누어 쓰는 거니까, 나쁜 건 아니지. 그래도, 나라에도 내고, 필요한 것도 사고 돈이 남으면 내 장난감은 그래도 사줄 거지?"

"ㅎ 알았어. 사줄게."




외국인들의 덴마크어 교육이 올 7월까지만 해도 무료였다고 한다.

7월 이후에 입국한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유료 학원에 등록했다.

유료라고는 하지만, 이태리에 처음 가서 어학원 다닐 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여기가 저렴하다.

단계별로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한 단계를 통과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2000kr 에 해당하는 학원비를 다시 내는 시스템이다.

기본 2년 정도는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그 정도는 다녀야 영주권 신청이 가능한 정도의 실력에 이른다고 한다.

자국을 찾아온 외국인이 덴마크어를 배우도록 일종의 관리를 하는 듯하다.

언어를 잘 배워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도, 언어를 배우지 못한 외국인들이 반 사회인이 되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덴마크인화 시키려는 의도도, 언어를 잘 배워 취업을 해 납세자의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모두 섞여 있는 정책일 것이다.


극장 첫 출근 하는 날 황가수는 조합에 가입했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단원은 없다고 하니, 노조는 선택 사항이라기보다 의무에 가까운 듯하다.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조합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근로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은 조합과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태리에서도 파업을 일삼는 노조의 역할과 능력이 대단하다고 했는데, 덴마크에서의 노조는 좀 더 당연하고 안정적이고 위엄이 대단한 단체인 듯하다.


덴마크를 아직 하나도 모른다.

사람들은 덴마크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복지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와서 조금 살아보니, 살인적인 세금과 물가만 느껴지고 새겨지지, 행복한지 천국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시아는 살인적인 세금이, 물건을 살 때마다 지불하는 놀라운 부가세가 좋은 일, 착한 일이라고 한다.

아직, 이곳이 우리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이 사회는 시아를 학교에 받아들여주었고, 이민자 부부를 국가 보조금이 지불되는 어학원에 등록시켜 주었다.

부모가 특별하거나, 자신이 특별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기 살기 때문에 나서부터 누리는 이러한 혜택들은 이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를 대하는 남다른 태도를 형성해 갈 것이다.

시아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그런 혜택을 누리면서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무엇을 의식하고,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까?

복지는 희생이기도 하고, 포기이기도 하지만 안전이기도 하고, 나눔이기도 하다는 것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희망을 품을까?


이태리에서는 1킬로 값을 족히 넘는 비싸지만 날씬한 오이 한 개를 비통하게 집어 들고, 나도 좋은 일, 착한 일을 하며 너를 먹어주리라고, 오이한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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