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aMya Sep 11. 2018

덴마크에서 네 뒷 모습을 보던 날

코펜하겐 시 교육부서에서 마련해 준 인터뷰 이후 약속한 기한에 맞추어 학교가 지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또다시 약속한 기한에 맞추어 학교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덴마크어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예비 반이 준비되어 있다는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학교에 인터뷰를 하러 갔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고 있는 학교 앞뜰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가니 연락을 주셨던 시아 담임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선생님은 영어를 잘 못하셔서 영어 통역을 해주시는 분과 함께 계셨다.

덴마크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을 만난 것도 신기하고, 외국인 아이들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 영어를 잘 못하시는 것도 신기하다.


학교 앞에서 한글학교에서 만난 두 살 동생 H을 만났다. 시아와 똑같은 날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딱 한번 인사를 나눈 사이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니 반갑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외국인 아이들을 위한 준비반은 6-8살 아이들이 함께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러니 H와 시아는 반도 같은 반이다.


시아와 H까지 해서 총 12명이 한 반이고,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함께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일반 교과 과정도 배우고 덴마크어도 배우고, 체육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고 한다.

숙제는 일체 없고, 집에는 책도 필통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했다.

준비반은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다니고 평가를 통해 아이들이 준비되었다고 판단될 때 동네의 일반 학교로 보내 주거나, 아이들이 원할 경우에는 이 학교에 남아 일반 아이들의 반으로 옮겨 계속 다닐 수도 있다고 한다.


수업은 8시부터 한시까지. 한시부터 두시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하는 방과 후 교실에 참여하고, 두시부터 다섯 시까지 하는 방과 후 교실도 별도로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두루두루 학교 구경을 했고, 방과 후 교실이 있는 옆 건물 구경도 했다.


동네 학교가 아닌 만큼 아이들 통학을 위해 매일 택시를 보내준다고 했다.

택시?!!!

택시?!!!

그렇단다. 매일 아침 택시가 아이를 데리러 오고, 학교가 끝나면 택시가 아이를 집 앞에까지 데려다준다고 한다.

외국인 적응반이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아, 외국인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먼 곳에 위치한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이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집이 가깝지 않은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등하교를 하고, 비용은 정부 부담이라고 했다.

학교 건물 4층에는 치과가 있고, 아이들은 무료로 치과 치료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급식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온다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매일 등하교할 일이 사실 걱정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대중 교통비용도 부담스러웠고, 데려다주고 집에 왔다 조금 지나 다시 나가야 하는 매일이 좀 고단 할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택시라니. 상상도 해보지 못한 해결책이다.

들었어도 믿어지지 않은 놀라운 일이다. 좋기도 하지만 조금은 엉뚱하기도 한 나라다.

시아는 택시를 타고 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더구나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조를 이루어 택시를 같이 탈 수 있도록 조정해 준다고 하니 더 설레고 기대되는 모양이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선생님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이태리에서 다니던 유치원 교실처럼 작은 교실도 예쁘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숙제도 없고, 시험도 안 보는 학교라 참 좋다고 했다.

급식 대신 도시락을 먹는 것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좋아했다. 오며 가며 슈퍼에서 보았던 수많은 도시락 통의 이유를 알았는지, 마음에 들었던 도시락 통이 있었는데, 그걸 사줄 수 있는지 물었다.

체육을 하는 날은 학교에서 샤워를 하는 것도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비 오는 날 밖에서 놀아야 하니 비옷과 장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에는 크게 웃었다.

"비 오는 날에 노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엄마는 많이 못하게 했는데, 여기서는 비 오는 날 밖에서 꼭 노는 건가 봐. 진짜 재밌겠다. 장화 신고 막 뛰어야지. 하하하"


시아가 마음에 담아 두었었다는 분홍색 도시락 통을 하나 샀다.

비옷이랑 장화도 장만했다.

이태리에서 쓰던 가방에, 이태리에서 쓰던 필통과 새 도시락 통과 비옷이랑 장화를 들고 약속된 시간에 아파트 현관 앞으로 나갔다.

오늘은 아빠도 동행할 수 있도록 다른 친구 없이 빈 택시를 보내준다고 하셨다.

정말 빈 택시가 우리 아파트 앞에 있다.

운전사 아저씨 전화기에 시아 이름, 우리 주소, 학교 주소가 쓰여있다.

택시로 10분 채 안 가서 벌써 학교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내려오셔서 인터뷰했던 2층의 시아 교실로 안내해주셨다.

아이들이 복도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고 다닌다. 그것도 신기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시아도 가방을 복도에 걸어두고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간다.

선생님께서 원하면 학교에 좀 남아 시아와 함께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시아야, 엄마 아빠 여기서 좀 기다릴까?"

"응? 왜?"

"시아 첫날이니까, 혼자는 좀 힘들 수도 있으니까."

"아니, 괜찮아. 나 혼자 있을 수 있어. 선생님도 있고 친구들도 있잖아. 엄마 아빠 가도 괜찮아."

무척이나 비장하고, 무척이나 흥분된 얼굴을 한 시아가 대답했다.

대답하기 무섭게 돌아서서 자리를 찾아가는 시아 뒷모습에 대고, '아빠 뽀뽀'.. 하고 황가수가 옆에 있는 나도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시아를 부른다.

시아는 아마 못 들은 것 같다.

교실 가운데서 우리를 돌아보고 웃으며 손을 한번 흔들었다.


시아를 두고 덴마크 와서 처음으로 둘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서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느라 조용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지하철에서도 내리고 나서야 황가수가 아직 생각을 정리 중인 것처럼 천천히 얘기했다.

"시아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어. 기대되나 봐. 시아가 씩씩해서 다행인데, 조금 서운하기도 하더라."


하교 길에는 부모 둘 중 한 사람만 같이 택시를 탈 수 있다고 해서 황가수가 대표를 자처했다.

시아의 덴마크 학교에서의 첫날이 궁금해 황가수는 일찍 나가서 시아를 기다렸다.

(한 이틀 정도는 부모가 함께 택시를 타고 그 다음부는 아이들끼리 택시를 타고 등하교를 하게 된다.)


방과 후 교실에서 만들기를 하던 시아가 아빠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고 한다.

"나, 아까 울었어."

"왜? 무슨 일 있었어? 너무 힘들었어?"

"아니, 학교에서 여기로 오는데, 나는 내가 다른 데로 가면 엄마 아빠가 나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찾아올까 봐. 선생님한테 엄마 아빠 여기로 오는 거 아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말을 못 하니까. 그래서 좀 울었지."

"아, 미안해. 이쪽으로 옮겼다가 집에 간다는 걸 설명을 안 해줬구나. 미안해."

"괜찮아. 선생님도 있고, 친구들도 다 같이 오고, H도 있으니까, 괜찮았어. 조금 울었는데, 다시 재밌게 놀았어. 덴마크 말로 무슨 노래를 배웠는데, 그건 어려워서 잘 못하겠고, 나 숫자 셀 줄 안다. 봐봐, 해볼게."


아빠랑 같이 집에 돌아온 시아는 아빠한테 했던 얘기를 나한테 다시 하느라 숨이 가쁘다.

만화도 봤고, 화장실도 가봤고, 도시락을 먹었는데, 빵이 좀 부족했으니 내일은 두 개는 있어야 할 것 같고, 포도는 씨를 빼기 귀찮으니 싸 주 주지 말고, 씨가 없는 사과나 복숭아를 잘라서 넣어주면 좋겠고, 선생님은 영어를 잘 못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는 게 더 쉬운 것 같고 재밌었다고 했다.

친구들은 얼굴색이 까만 친구도 있고, 하얀 친구도 있었고, 우리 같은 중국 친구도 있었는데, 친구들은 모두 덴마크 말을 잘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친구들이 빨리 배운 걸 보면, 시아도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친구 H가 같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숨 가쁘게 제 하루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 만화를 보여 달라는 시아에게 만화를 틀어주고 둘이 소근소근 우리 딸이 최고라고, 참 대단하다고,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방과 후 시간을 보낼 건물로 옮겨 가면서 시아가 얼마나 무섭고 걱정됐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찌릿하게 아팠다.

내 잘못이다.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하는데, 내가 다닐 것도 아니면서 나만 듣고 시아에게 다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다 설명하고 전달해야지 다짐했다.

엄마가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시 사과하고 꼭 한번 안아주었다.


시아가 나랑 스케이트 배우러 다녀온 사이, 황가수가 씨 때문에 번거롭지 않은 복숭아, 자두, 사과, 바나나와 시아가 오매불망 소원했던 보드 게임 Matador (모노폴리) 선물을 준비했다.

"오늘 시아가 힘들었을 텐데, 너무 잘해서, 기분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게 아빠가 너무 좋아서 선물을 준비했어."

"우아!!!!!! 아빠!!!!! 우아!!!!!!!"


덴마크 모노폴리에는 덴마크 말이 쓰여 있다.

판을 펴고 주사위를 던져... 찬스 카드가 나왔는데...

"이게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셋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카드를 아래 위로 훑어도 어디 가서 뭘 어찌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카드를 스캔하고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한 바퀴 돌고 나니 피로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은행원을 겸한 시아는 단위가 큰 덴마크 크론을 계산하느라 집중을 해서 콧등에 주름이 다 잡혔다.

"말을 배울 때 까지는 아무렇게나 놀까? 그냥 우리가 생각해서.. 그건 안 되겠지... 내가 학교에서 빨리 배워야겠다."

"아빠 다음엔 말이 별로 안 쓰여 있는 장난감을 사줘도 괜찮을 것 같아. 내일 또 놀자. 내일 학교 가니까 이제 자야겠어. 괜찮지?"


아무리 우리 딸이 최고라도 꼭 지금 덴마크 말이 빼곡한 모노폴리를 선물했어야 했냐고, 는, 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덟 살 거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