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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Oct 06. 2018

달콤 살벌한 그들의 사랑

매일 아침 아빠의 배웅을 받고 등교하고, 거의 매일 아빠와 저녁을 먹는. 시아가 꿈에 그리던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이태리 정리 시작하면서부터 아빠 있는 삶을 유지했으니 이제 거의 3 달이다. 100일 정도 그들은 진지하게 교제 중인 것이다.

이태리 사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 3일에 한번, 어쩌다는 한 달에 한번 만날 때마다 둘이는 꼭 붙어서 속삭이고 웃고 간지럼을 태우고, 불량 식품을 나누어 먹었다.

가끔 내가 집을 비울 때는 둘이 드라이브를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 하루 지나면 부서지지만 인기 많은 장난감을 쇼핑하기도 했다.

둘이는 이제 고대했던 긴 재회의 시간을 누리며 온 우주에 둘 뿐인 것처럼 집중하여 행복했다.

코펜하겐의 여름이 아직 뜨거울 때는 북유럽의 바다에 첨벙첨벙 뛰어들기도 했고, 서로의 볼록한 배를 격려하며 공원의 운동 기구로 근육 단련을 하기도 했다.

덴마크어 회화 오디오를 틀어 놓고 전혀 다르게 따라 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아빠와 거의 매일 같이 저녁을 먹고, 슈퍼에 장을 보러 가고 자전거를 타고 푸른 들을 따라 내달리기도 한다.

늘 엄마와 다니던 토요일 한글학교에도 셋이 같이 다닌다.

발레와 오페라 리허설 직원 표를 구입해 아빠와 둘이 문화 산책을 나서기도 한다.

아빠랑 둘이 햄버거를 사 먹고 엄마는 비싸다고 안 사주는 덴마크 학용품을 사 들고 오는 날도 있다.

시아 방에 놓을 조립식 책상을 같이 만들어가며 동료애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100일을 맞는 요즘, 둘이는 아주 대단하게 다투기도 한다.

무척 사사로운 일로 다투는 게 대부분이다. 간식을 누가 먼저 먹느냐를 가름하다, 외출 준비 중에 지체하는 쪽을 재촉하다, 게임에 대해 각자 다른 규칙을 주장하다, 말 한마디로 상대의 마음에 분을 일으켜...

지켜보는 나는 과연 어느 지점에서 그 둘이 그토록 격분하게 되었는지를 놓치는 경우가 있을 만큼 사사로운 원인이 대부분이다.

둘이의 싸움은 금세 끝나기도 하지만, 한참 등을 돌리고 집안 분위기를 스산하게 하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되기도 한다.


싸우다 더 억울한 한쪽이 나에게 옳고 그름을 가려 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지만, 실제 누가 옳고 그른지 명확하지 않기도 하고, 그 모호한 싸움에 끼어들기도 싫은 마음에 나는 대번에 손을 내두르며 한 걸음 물러선다.

어렵게 화해를 했어도 억울함이 남는 경우에는 한 사람씩 차례로 나를 찾아와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고 나중에 싸움의 다른 상대에게 조용히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그 역시 두 사람이 대화로 풀어나갈 것을 권하는 것으로 내 입장을 정리한다.


처음에는 중재자로 나서기도 했고, 시차를 두고 화가 식은 두 사람을  면담하며 상대의 입장을 대변해 주려고 노력도 했지만, 지혜롭지 못한 탓인지, 그런 노력은 보통 또 다른 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하고, 나를 새로운 싸움의 주인공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아주 물러섰다.


아들 며느리의 싸움을 지켜보는 시어머니, 딸과 사위의 싸움을 지켜보는 친정 엄마.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못하고 다만 둘이 잘 살아주기만 바라는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고 때로는 속 터져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마는 그런 심정으로 둘이의 대단한 싸움을 지켜본다.

시아 돌 무렵 수개월 육아를 했던 황가수는 시아를 잘 알고, 세상의 어떤 아빠보다 아이와 친밀하다고 늘 자신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한 달에 며칠 씩 만나 안고 뒹굴고 뛰며 좋은 아빠로서의 자신에 대해 더 확신했고, 덴마크에 오면서 365일 좋은 아빠 할 일에 대해 자신 만만했다.

아가 때부터 아빠와 친밀한 시아도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 아쉬운 만큼 매일 아빠와 함께하는 일상에 대한 기대가 컸다.


롱디.

참 오래 그렇게 멀리서 그리워만 했던 둘이는 이제 드디어 만나 사랑을 매일 살게 되었다.

그리웠을 때, 기다렸을 때는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늘 달콤하기만 했던 짧은 만남의 추억과는 전혀 다른 일상을 체험하면서 둘이는 턱턱 부딪힌다.

간식 먹다 싸워도, 게임하다 싸워도, 그냥 싸워도 늘 결론은 이렇다.


"아빠는 덴마크에 와서 나하고 많이 놀지도 않고.. 신경질도 많이 내고.. 많이 안아주지도 않고.. 별로야."

"시아는 맨날 시아 하고 싶은 대로만 하자고 하고, 아빠가 얘기하는 건 한 번도 안 들어주고, 아빠 힘들다고 해도 기다려 주지도 않고.."

"아빠는 이태리에서 더 힘들어도 나하고 많이 놀았는데, 여기서는 일도 더 조금 하는데 왜 나하고 많이 안 놀아?"

"여기서 더 많이 놀지. 그런데 계속 같이 있잖아. 계속 같이는 놀 수가 없잖아. 아빠도 뉴스도 보고, 야구도 보고, 덴마크어 숙제도 해야지."

"나는 여기 친구도 없고, 밖에서도 많이 못 놀고, 집에 장난감도 많이 없으니까, 아빠가 같이 놀아줘야지. 더 많이 나하고 놀아야지. 아빠는 일을 조금 해도 피곤하다고 하면 안 되지? 아빠가 더 피곤해? 내가 더 피곤해? 내가 더 피곤하지. 나는 학교에서 얼마나 많이 뛰는데. 진짜 힘들어."

"그럼.. 너무 뛰지 말고, 좀 앉아서 놀지."

"앉아서 어떻게 놀아? 그건 안 노는 거지. 놀지 말라고? 그럼 더 심심하게?"

"놀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뛰어서 힘들다고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쉬면서 놀라고 하는 거지."

"쉬면서 놀 수가 있어? 아빠는 그렇게 할 수 있어? 아빠도 그럼 쉬면서 일하던지. 쉬면서 야구 봐. 그럼 힘이 남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참 한국말을 이상하게 이해하네."

"내가 한국말을 못한다고? 아빠는? 아빠는 나보다 이태리 말 더 못하지. 그래도 내가 아빠 이태리 말 이상하게 이해한다고 말해? 안 하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기분 나쁘지. 아!!!! 앙앙!!!!"

"황시아, 왜 울어?"

"싫어. 아빠 아빠 나빠. 아빠 나빠."



둘이는 자주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참 치열했던 우리의 신혼을 떠오르게 한다.

매일매일 서로를 길들이기 위해, 내가 알았던 것과 다른 상대의 모습에 실망해, 원래 그랬던 내 진짜 모습을 받아들여주지 못하는 상대가 야속해 참 지침 없이 치열했다.

지금 생각하면 저 둘이처럼 듣고 있어도 우습고, 다시 생각해 봐도 부끄러운 말꼬리 잡기를 해가며 매일 분하고 원통했었던 것 같다.


"오빠는 시아랑 싸울 때 나하고 부부싸움하는 것 같아. 말도 별로 안 하는 사람이 참.. 웃겨."

"아니... 재가 먼저 너무 사람을 화나게.. 에이..."

"우리는 그렇게 싸웠어도 어찌어찌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만, 시아는 클수록 아빠랑 사이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 좀 다정하게 대해줘. 나중에 큰 딸 마음 얻기는 힘들걸. 그럼 우리 집에서 오빠 왕 따 당할 거야."

"아.. 진짜 몰라.. 재는 왜 그렇게 따지고, 한 번도 지는 게 없어. 꼭 너 같아."

"그런가?.. 내 딸이니까 나 닮았겠지."


"아빠는 화 안 내고 얘기해도 되는데, 화내면서 얘기해. 내가 말하면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라고 하고. 나한테는 그럼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아빠는 어른이고, 시아 아빠잖아. 그리고 아빠는 시아랑 달라. 얘기를 계속하면 속상한 게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속상하면 잠깐 얘기를 안 하고 있어야 괜찮아지는 것 같아. 시아가 아빠한테 좀 시간을 주고, 화가 나서 계속 얘기하고 싶을 때 좀 참으면 싸움을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나는 아빠 화나도 괜찮아. 화나면 뭐? 화나는 거지. 그래도 나는 얘기해야 되면 해야지. 왜 못해?"

"그렇지... 뭐 못한다는 게 아니라, 잠깐 참고 지나면 싸우지 않을 수 있으니까 조금 참으면 좋겠다는 거야."

"아빠는 계속 얘기하면 화나고, 나는 얘기 안 하면 화나니까, 뭐. 그냥 할래."


맞는 얘기도 틀린 얘기도 아닌 얘기를 해가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두 사람에게 간식을 내어 주거나 밥을 차려 주는 일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뒷짐을 지고 서서 나는. 둘이 서로 마음을 읽지 못할까 봐, 시아가 새로운 나라에서 사춘기를 맞을 때 아빠를 멀리할까 봐, 딸의 사춘기를 감당하지 못해 아빠가 많이 힘들어할까 봐 미리 걱정을 하기도 한다.


황가수가 극장일을 마치고 덴마크어 학원에 다녀오는 날은 저녁도 안 먹고 아빠를 기다린다.

"시아야 뭐해?"

"오늘 아빠 학원 갔다 오잖아. 그러니까 내가 선물 줄 거야. 일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까 아빠 힘들잖아."

"무슨 선물?"

"이거 내가 좋아하는 감자칩인데, 아빠 줄래. 포장지도 내가 만들 거야. 여기다 다 그림도 그리고."

"그래? 아빠가 좋아하겠다."


"아빠!!!!! 선물 있어."

"응? 뭔데?"

"이거!!"

"와!!! 진짜 예쁘다. 시아가 그렸어?"

"응, 뜯어봐 속에 더 좋은 게 있어."

"그래? 우와!!! 아빠가 진짜 좋아하는 건데, 이따 밥 먹고 같이 먹자."

"아니야. 아빠 선물이니까 아빠 혼자 다 먹어."

"아니야. 시아랑 같이 먹어야 맛있지. 이따가 둘이 나눠먹자!"

"알았어 그럼. 같이 먹자."


비가 오는 날, 괜히 기분이 그런 날 시아가 그윽하게 황가수를 바라본다

"아빠 오늘은 giornata speciale (특별한 날) 할래?"

"응?"

"나, 오늘 엄마 아빠랑 잘래. 어때?"

"아빠는 좋은데, 엄마한테 물어보자."

"엄마는 어때?"

"시아가 너무 커져서 셋이 자면 엄마는 잠을 못 자겠어. 시아는 움직이고, 아빠는 코 골고..."

"그럼, 내가 아빠하고 자고, 엄마는 시아 방에서 자면 어때? 그렇지 아빠? 그럼 어때?"

"아빠는 좋지."

시아랑 황가수가 나란히 앉아 흘긋 나를 쳐다본다.

"마음대로 하세요~"


9시부터 손을 꼭 붙들고 잠이 든 둘이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전쟁같은 사랑을 하는 그대들.

부디 치열히 서로를 알아가길 바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달콤한 만남 같은건 이제 더 이상 없는 매일 담담하고 당연한 사랑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서로를 바라보기를 넘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평범한 사랑을 단단히 쌓아가길 희망한다.


카드 게임을 하겠다고 하니, 곧이어 전쟁이 예상되니, 나는 갑자기 급하게 슈퍼에 좀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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