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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Oct 27. 2018

여덟살. 우리는 DIY의 재미를 공유한다.

시아는 두 개의 인형과 공책 두권, 책 두권, UNO 카드를  가지고 덴마크에  왔다.

시아에게 할애된 이민 가방에 추운 날씨를 대비한 두툼한 옷 가지를 가득 채워 오느라 장난감을 담아 올 자리가 없었다.

친구도 없는 덴마크에 장난감도 없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두 번 스케이트를 타지만, 해가 저물도록 밖에서 놀았던 이태리 생활과 비교하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기도 하고, 동네 놀이터 관광을 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의 그림 감상을 하기도 하고, 슈퍼마켓 투어를 해보기도 하지만, 동글동글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거나  뛰어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이태리에서의 오후에 비하면 무료하고 허전하다.

코펜하겐의 오고 바람 부는 오후에는 학교 끝나고 나오기 무섭게 수영을 하러 갔다가 친구들이랑 놀고, 체조를 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피아노를 치고 친구들이랑 놀고, 테니스를 하고 친구들이랑 놀았던 날들을 꿈처럼 추억하며 조금 시무룩하기도 하다.


이태리에서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특별한 장난감을 오래 열망하지  않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시간이 별로 없기도 했고, 언니 오빠들이 해마다 철마다 물려주는 장난감으로도 방이 가득 찰 만큼 충분했다. 가끔 나는. 어쩌면 시아소유에 무심한 사럼이라고,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덴마크에서의 시아는 슈퍼에 따라나설 때마다 시내에 따라나설 때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다.

시간의 공백과 아직 휑한 제 방안 공간의 공백을 채울 것들을 끊임없이 원한다.


물가가 비싼 덴마크에 와서 소비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시아를 조금 이해하고 조금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물가를 핑계로, 세일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시아의 요구를 대부분 거절한다.

하지만 황가수는 내 눈치를 보며 한번은  하지만 이내 사주고 만다.

내가 덴마크어 학원 가 둘이 있을 때는 번번이 장난감 쇼핑을 한다.

"엄마, 나도 혼내지 말고, 아빠도 혼내지 마, 알았지. 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 줄게."

그렇게 내 얼굴 보자마자 털어놓는 비밀의 내용은, 신기한 색의 풍선을 사고, 레고를 사고, 장난감 화장품을 사고, 만들기 재료를 사고, 장난감 칠판을 샀다는 것이다.

아빠의 결정이나 행동을 시아 앞에서 비난 혹은 질타하는 건 좋지 않울 것 같아 그냥. 크게 숨 한번 쉬고, 행복해서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든 시아와 장난감을 구경한다.


"장난감을 또 사줬어?"

"응... 아니... 너무 심심해 하니까. 그리고 시아는 또래 다른 애들에 비해서 장난감 정말 없잖아. 우리도 거의 안 사주고. 가끔 하나씩 사주기도 해야지. 맨날 안된다고 하는 건 좀 그렇잖아... 생각해 보니까 나도 어렸을 때 장난감 정말 많았던 것 같아서... 조르기도  엄청 졸랐는데, 조르면 또 많이 사주셨던 것 같아."

"장난감 한두 번 가지고 놀면 그만 이잖아. 가격은 비싸고 실용적이지 않은데... 뭔가 쓸 수 있는 걸 사주던지.."

"장난감이 원래 그렇지. 한두 번 노는 게 장난감이지, 한 가지 장난감으로 몇 달씩 계속 가지고 노는 애들이 어딨어?"

"..."


장난감.

장난감에 대한 이렇다 할 추억이 없다.

원숭이 인형을 가졌던 기억. 그리고 몇 년을 그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

커다란 너구리 인형을 몇 년 동안 안고 잤던 기억.

몇 번 종이 인형을 오려 옷을 입혔던 기억.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골똘히 생각하면 그 정도의 추억이 떠오를 뿐이다.


나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고, 그 시절에 대한 여러 기억이 남아 있지만, 유독 장난감에 대한 추억은 없다.

아마, 나는 장난감을 많이 가져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난감이 없어 속이 상했거나, 꼭 갖고 싶던 무언가가 있어 애를 태웠던 기억도 없다.


아마 나는 이러한 추억의 부재로 장난감을 무용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이라고 여기기에 이른 것 같다.


하지만 황가수는 많은 장난감을 가졌었고, 새로 산 로봇에 금방 싫증을 내고 또 다른 로봇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새 장난감의 포장을 뜯을 때의 설렘, 새 장난감을 들고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때의 뿌듯함 같은 것들을 아직도 생생히 추억하고 있다. 그래서 시아에게도 그런 짜릿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행복해하는 시아를 보면서 황수도 여덟 살 꼬마처럼 다시 설레도 보고 뿌듯해 보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다른 유년기를 지나온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장난감이 생기기도 하고 생기지 않기도 하는 덴마크의 늦가을을 보내던 시아가 새로운 세상을 찾았다.

레고 상자를 야무지게 잘라 악기도 만들고, 저금통도 만들었다.

배달 박스를 잘라 강아지 집을 만들었다.

종이를 자르고 접어서 소꿉 장난감을 만들었다.

공책에 색칠을 해서 메이크업 세트를 만들었다.

휴지심에 은박지를 입혀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화장솜을 채워 인형을 만들었다.

실을 예쁘게 따서 팔찌와 반지를 만들었다.

긴 풍선으로 칼을 만들었다.

제 방을 작업장 혹은 고물상처럼 꾸며 놓고 매일 호들갑스럽게 엄마 아빠를 불러가며 자랑이다.


숙제도 없고, 시험도 없고, 아직 언어도 익숙하지 못하니 놀지 않으면 다른 할 일이 없다.

놀아야 하는데, 놀려면 거리가 있어야 하고, 안 사주는 엄마와 사주는 아빠 사이의 빈 공간을 DIY로 채우기로 한 것이다.


장난감 제작에 푹 빠져 한참을 말도 않고 집중하는 시아를 보고 있으면 문득. 반짝거리는 새 장난감, 내일이면 싫증 나더라도 그런 장난감에 대해 내가 좀 너그러워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용하지만, 재미있다면, 그건 사실 무용한 게 아닐 텐데.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생산하지 못하는 인생에도 모두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들의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법을 배우자고. 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재미'라는 가치에는 취약한 사람인 것 같다.

시시껄렁한, 의미라는 건 전혀 없어 보이는 장난을 치며 낄낄 웃는 황가수와 시아를 보면 나도 웃는다. 사랑스러워서 웃는다. 재밌어서 같이 웃어지지는 않는다.

재미는 습득이 가능한 능력인가?

재미있게 놀기에 서투른 나는 재미를 찾는 여덟 살에 공감을 못해 혼자도 답답하고, 여덟 살도 답답하게 한다.


종이로 만든 소꿉장난을 펼쳐 놓고 식당 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재미는 하나도 없지만 같이 하기로 한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아, 아니다. 메뉴 있어요. 이거 보고 고르세요."

"음... 국수 랑 김밥 주세요. 콜라도 한 잔 주세요."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여깄습니다. 뜨거워요. 천천히 호 해서 먹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후룩후룩. 정말 맛있네요."

"네, 이건 내가 다 만들었어요. 나는 주인인데, 내가 만들 수도 있어요."

"아, 그래요?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맛있게 만드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원래 식당 가는 걸 좋아해서 식당에 많이 가서 먹어봤어요. 그래서 잘 만들게 됐어요."

"아, 그래요. 정말 멋있네요. 국수에는 뭐 넣고 국물을 만들었어요."

"국물이요? 아... 멸치? 그렇지?"

"응"

"다시 하자. 멸치 넣었어요. 그래서 맛있어요."

"김치는 없어요?"

"김치는 아줌마가 안 시켰는데요?"

" 한국에서는 김치 그냥 주는데. 외국에 있는 한국 식당도 보통 다 김치는 그냥 줘."

"그래? 자, 그럼 여기 있어요. 미안해요. 아까 잊어버렸어요. 김치 늦게 줬으니까 깎아줄게요."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여기 얼마예요?"

"기다리세요. 여기 영수증이요."

메뉴판에 적힌대로 정확히 계산을 한 영수증 아래 '5kr 깎아줍니다'라고 썼다.

"맛있는데 깎아주셨으니까 다음에 또 올게요."

"네, 아줌마는 어디 살아요?"

"저는 저기 다음 골목에 살아요."

"아, 저는 식당이 집이에요. 그래서 아무 때나 와도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돈이 없을 때는 그냥 먹고 다음에 돈 내도 괜찮아요."

"와! 정말 좋은 식당이네요. 많이 파세요.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종이 메이크업 샵에도 가고, 미용실에도 가고, 종이 박스 악기 연주도 감상하고, 박스 개 집에 들어간 시아 강아지에게 간식도 주고, 풍선 칼싸움도 했다.

무용한 일을 한참 하는 사이 그 자리가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골목길에서 돌에 흙을 개어 소꿉 장난을 하던 추억, 동생이랑 가게 놀이를 하던 추억, 엄마랑 미장원 놀이를 하던 추억, 책들을 쌓아 놓고 우산을 덮어 집을 만들었던 추억, 솔방울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었던 추억. 종이를 잘라 꽃을 만드는데 집중을 해 편두통까지 왔던 기억.

나에게도 당연히 있었던 재밌었던 날들이 거기 있었다.


덴마크에서의 첫 번째 가을에 나에게도 있는 재미의 흔적을 발견했다.

반짝반짝하고 짜릿한 재미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크게 웃을 만큼, 진지하게 온 마음을 다할 만큼 재미있게 놀았던 날들이 있었다는 깨달음은, 이태리의 것보다는 채도가 조금 낮은 노랑과 빨강의 덴마크 가을 오후를 아늑하고 아득하고, 콧등 시큰하게 해 주었다.


나를 거슬러 사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같이 만들어 촌스런 놀이를 하는 엄마여도 괜찮겠지.

반짝반짝하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쓸데없는 소비의 재미, 숨 넘어갈 만큼 짜릿한 재미의 책임을 지우고, 나는 내가 추억하는 덜 재미있는 재미의 기술을 향상해 시아의 시간을 공유해도 시아는 충분히 즐거운 어른이 될 수 있겠지.


그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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