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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pr 09. 2019

꽃처럼 피어버린 환대



"시아가 곧 새로운 학교에 가게 될것 같아요."

2주전에 선생님으로 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다음주에 새로운 학교에서 미팅이 있으니 시아와 함께 새로운 학교를 방문하셔야 합니다."

첫 번째 메시지를 받고 이틀 후에 다시 받은 메시지이다.


이제 외국인 아이들을 위한 특별반 과정을 마치고 일반 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처음 특별반에 들어갈 때 누군가는 3개월, 누군가는 6개월, 누군가는 1-2년을 얘기했다.

우리는 딱 하루쯤 조바심을 냈고, 이내, 편히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일지 모르는 시간이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고 싸우면서 배우는 것도 있으리라. 덴마크어에 능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모여 말을 넘어 소통하는 법을 깨우칠 수도 있으리라. 덴마크어를 하나도 모르고 덴마크 아이들 사이에 들어가면 언어의 문제를 스스로의 무능인 듯 받아들여 마음이 상할 수도 있는데, 모르는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천천히 배우면 그런 상처는 피할 수 있으리라. 그런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렇게 넉을 놓고 있는데, 역시 봄처럼 느닷없이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지난달에 학교에서 일종의 테스트를 했다고 했지만, 그 테스트와 새 학교 배정이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다.

치마를 안 입어,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바지 입은 엄마는 또 무심하였다.


"아무래도 내가 테스트를 잘 본 것 같은데. 못 볼걸 그랬나. 이렇게 빨리 새로운 학교에 갈 줄은 몰랐어."

시아는 새 학교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겨우 겨우 마음을 내어준 친구들과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새 학교에 가는 날, 약속이 오전이라 시아는 결석을 하고, 나랑 같이 새 학교에 갔다.

새 학교 문 앞에 지금 시아의 담임 선생님과 새로운 학교의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계셨다.

지금 담임 선생님은 어쩐 일로 여길?

지금 담임 선생님께서 새로운 선생님께 시아를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셨다.

새 학교의 사무실에서도 지금의 담임 선생님께서 시아의 학습 성과, 태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설명하셨고, 처음 시아를 만났을 때 어땠는지 지금 시아가 어떤지 자세히 얘기하셨다.

그동안 시아가 학교에서 그리고 쓰고 만들었던 과제들을 모두 모아 전달하셨고, 시험지를 펴 보이시며 시아를 자랑스러워하셨다.

아.. 새 학교에 갈 때는 이렇게 전 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같이 해주시는구나.


새 학교 선생님께서 시아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고, 새로운 학교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시아가 대답을 했고, 간간히 시아가 이해를 못하면 지금의 담임 선생님께서 시아가 이해하도록 풀어서 다시 얘기해주셨다.


평소 할 말만 하시는 츤데레 담임 선생님이 새삼 따뜻하고 감사했다.


새 학교 선생님께서 시아에게 동네에 친구가 있는지 물으셨다.

"여기는 너무 추워서, 동네에 나가서 놀 수가 없어요. 그래서 친구는 없어요. 그런데 스케이트 같이 배우는 친구가 있어요. A랑 M이랑."

"아! 그렇구나. 알았어. 아직 시아가 어떤 반으로 들어갈지 정하지 못했는데, 정하게되면 엄마한테 알려줄게."


선생님께서 학교 구경을 시켜주셨다.

생긴 지 4년 되었다는 학교 건물은 반짝반짝했다. 아이들이 아무렇게 벗어 둔 옷이랑 신발이 복도에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지만, 오히려 우리 집 시아 방처럼 편안한 광경이다. 

체육관, 교실, 그리고 식당! 급식을 하는 학교다! 나의 덴마크 인생의 가장 무거운 짐. 도시락을 내려놓게 된다는 복된 소식을 듣고, 쏟아져 나오는 웃음을 꾸역꾸역 밀어 넣느라 고생했다.


둥그렇게 생긴 반짝반짝한 학교 구경을 다하고,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이제 4번 학교를 더 가면 새 학교에 간다.

"시아는 어때? 기분이 어때? 새 학교 가고 싶어?"

"응, 가보고 싶어. 재밌을 것 같아. 궁금해."


새 학교 다녀오고 이틀 지나 스케이트를 배우러 갔는데, 친구 M이 달려 나와 시아를 안아준다.

"우리 이제 같은 반이다. 알아? 선생님이 나랑 너랑 친구냐고 물어봐서 내가 맞다고 했지. 그런데 오늘 시아가 우리 반에 올 거라고 했어. 나는 정말 정말 기뻐!"

"그래? 진짜? 하하하하하하"

시아는 기쁘다고 말하는 대신 크게 웃었다.

"엄마, 너무 좋아. 진짜 너무 좋아. 빨리 새로운 학교에 가보고 싶어. 재밌을 것 같아."


일요일 아침. 볼로네제 소스를 끓이느라 온 집안에 토마토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시아에게 전달해 줄 게 있는데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아? 네?!"

문을 열어주니, M이랑 M의 친구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가 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섰다.

반 잠옷 차림으로 어정쩡하게 서있는 우리에게

"시아가 우리 반에 오게 된 걸 환영해요! 환영인사를 하러 왔어요. 여기 친구들 사진과,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왔어요. 모두 시아를 기다리고 있어요. 시아가 스케이트도 잘 타고, 이탈리아 말도 하고, 한국말도 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시아에게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빨리 수요일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M의 친구 엄마라는 분이 얘기하셨다.

M의 친구 V와 엄마는 신입생 환영의 임무를 맡아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다. M은 시아 친구 자격으로 동행을 한 것 같다.

시아는 수줍어 몸을 내 뒤로 숨기긴 했지만 팔을 뻗어 M에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앞으로 자주 소통하자고, 여름에 공원에서 파티를 할 계획이니 참석해 달라고 했다.

손님을 문 앞에서 그렇게 어정쩡하게 배웅하고, 나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이런 환대라니.

이만큼의 환대라니.

본론만 말하는, 남의 일에는 원칙적으로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이토록 세심하고 다정한 환대를 해주다니.


시아랑 친구들이 그려준 그림을 구경했다.

꽃, 강아지, 케이크, 스케이트 타는 소녀, 로봇, 우주인까지 개성 넘치는 그림에는 '환영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네가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 네가 빨리 오면 좋겠어.'와 같은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중간이 없어. 무뚝뚝할 때는 언제고, 또 이렇게까지 환영을 해주고 그래. 사람 무안하게.."

그동안 차다, 무심하다 딱 선을 그어 놓고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하고 뚱하게 지내온 시간이 머쓱했다.


학부형 커뮤니티 아이디와 비번을 발급받아 들어가 보니. 선생님께서 시아가 새로 온다는 소식과 시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엄마 아빠는 한국 사람이라 이태리어와 한국어를 하고, 얼마 전까지 덴마크어를 배우는 특별반에 다녔고, 이제는 새 학교에 들어올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고 공지해주셨다. 수업 요강에는 내일 첫 시간은 '웰컴 시아' 시간으로, 시아의 첫 날을 축하하며 노래를 배운다고 되어있다.  



내일부터 나는 도시락을 싸지 않고, 늑장 부리다 겨우 시간 맞추어 나가는 시아 손을 잡고 5분 거리를 늘 바쁘게 뛸 것이다. 


새 친구를 만나고, 종일 덴마크어를 듣고 말하고, 조금 좌절도 하고, 조금 스스로를 대견해하기도 하며 또 성장할 것이다.


시아를 통해 나는 또 다른 덴마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시아를 통해 만난 이태리가 내가 혼자 알던 이태리와 달랐던 것처럼 이제, 덴마크로 쏙 들어가는 시아를 통해 만날 좀 더 맑은 덴마크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많은 외국인들과 그 아이들, 여전히 공항에서 살아야 하는 루렌도 씨 가족. 혼자 맑아서 미안한고 죄송한 봄이다. 어디서나 우리도 환대하는 사람이자. 환대받았을 때 그 맑음, 그리고 그 맑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잘 기억해 우리도 누구에겐가 그런 사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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