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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y 11. 2019

눈이 와도 피어내는 네가 고마워

5월에 눈이 왔다.


하늘에서 무언가, 물보다 진한, 무언가가 막 떨어지는데, 차마 '눈'이라고 명명하지 못하고 한참 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5월인데..


이맘때 이태리 우리 동네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진다. 벚꽃이 다 피고 나면 석류나무에 빨간 꽃이 가득 달린다. 초록과 분홍과 노랑과 빨강이 벌써 뜨거워진 태양 아래서 색색 단숨을 쉬고, 아이들은 거리와 놀이터를 가득 채우고, 나는 콧등에 땀을 닦으며 시아를 따라다닌다.


내가 두고 온 5월. 이태리에 살면서는 꽃을 기다리지 않았다. 조금 더워지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화사하게 변한다. 내가 기다리지 않는 동안 개나리와 벚꽃은 소리 없이 부단히 애를 썼겠지만, 꽃들의 수고를 듣지 못했고, 그저 어느 날 갑자기 화사해진 세상에서 한 두 번 '아, 예쁘다' 짧게 감탄했을 뿐이다.


코펜하겐에서의 5월에는 매일 꽃을 기다린다. 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무들을 가만가만 쳐다보게 되고, 고개 숙여 들풀도 살핀다. 언제 봄을 가져다 줄거니?..

시아가 새 학교에 들어갈 때쯤 날이 따듯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꽃이 피는 봄이 올 것 같았다.

우거지지 않은 초록의 나무들이 조심스럽게 작은 꽃봉오리를 출산하고, 덜 싱그러운 들풀 끄트머리에도 연한 잎이 둘러싸인 꽃봉오리가 맺혔다. 매일 볼 때마다 조금씩 자라는 꽃봉오리들에 설레었고, 긴장했다.

새 학교에 들어간 시아도 설레었고 긴장했다.


그리고 눈이 왔다.


시아는 새 학교의 새 친구들의 관심 속에 심심할 틈 없는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았고, 더 이상 아플 일도 어려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새 학교 들어간 지 2주가 채 안된 오후에 시아를 데리러 갔는데, 운동장 한쪽에서 혼자 놀고 있던 시아가 나를 보고 크게 엄마를 부르며 달려왔다. 

"엄마, 나 오늘 좀 울었어. 그런데 이제 괜찮아."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심심했어. 뭐 하고 놀지. 누구하고 놀지 모르겠어서 울었어. 그런데 선생님이 와서 안아주고, 재밌게 해 줘서 이제 괜찮아."

"그랬구나... 왜 심심했을까? 친구들이 시아하고 같이 안 놀아?"

"아니야.. 다 놀고 싶다고 하고, 놀자고 하는데, 나는 친구들이 하는 놀이를 잘 모르겠어. 그래서 재미가 없어. 그래서 혼자 놀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이태리에 있는 친구들 생각이 났어..."

"시아가 외로웠구나."

"외로운 게 뭐야?"

"친구들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처럼, 심심하고 슬픈 마음이 드는 거지... 시아 속상했겠다. 외로운 마음은 힘든 마음인데..."


이제 만으로 9살이 되는 아이들은 6살 때부터 한 반에서 지내면서 나름의 그룹을 만들었을 것이고, 놀이의 방식이나 규칙도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이방인 시아는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서 어떤. 단절을 경험한 것 같다. 몸으로 놀기에는 성숙해버린 9살 여자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시아의 덴마크어는 아직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9살 아이들에게 이방인 친구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요구할 수는 없다. 힘겹겠지만, 시시아 스스로 건너야 하고, 지나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저 버티고 살아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섣불리 봄에 들떠 예정되어있던 추위를 외면했었나 보다.

매일 "재밌었어? 친구들이 잘해줘? 시아는 잘하고 있으니까 엄마는 걱정 안 해." 같은 파이팅인지 잘 지내라는 명령인지를 마구 쏟아붓는 동안 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이름도 모르는 제 감정에 '괜찮다, 괜찮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새 학교, 덴마크어를 술술 잘하는 아이들만 다니는 3년 지기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에 들어가서 매일 재밌을 리가 없으리라고 나도 새겼어야 했고, 시아에게도 설명해주었어야 했다.


"외로운 게 당연하지. 엄마가 시아라고 해도 힘들 것 같아. 엄마도 어렸을 때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처음에는 늘 힘들었던 것 같아. 엄마가 왜 그 생각을 먼저 못했지?"

"엄마는 그래도 한국에서 학교를 바꿨으니까 나보다는 쉬웠을 거야."

"맞아, 지금 시아가 훨씬 어렵지. 시간이 지나면 시아랑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힘들 거야."


시아는 심심한 외로움과 전투 중이다. 


잘 못 알아들어도 웃고, 어려운 얘기를 할 때는 살짝 자리를 피하기도 하고, 많은 아이들이 있을 때는 큰 소리로 얘기하기를 주저하고...

오래전에 내가 그랬었다.

그런 어색함, 외로움, 단절을 이제 겨우 9살이 된 시아가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학교 친구를 집에 초대할까?"

"아니, 아직 잘 모르겠어. 좀 더 있다가. 내가 딱 내 친구다 생각하면 엄마한테 초대하자고 할게. 아직은 잘 몰라."

보통 3시간씩 만들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방과 후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한 시간만 놀고 올래."

"그냥 학교만 끝나고 그냥 올래? 그래도 괜찮아."

"아니야. 조금씩은 놀아봐야지 친구도 알게 되지. 너무 오래 있는 건 싫고. 한 시간만. 있을게."

"좋아."


해줄 수도 없고 해 줄 것도 없는데, 매일 조바심이 난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어제도 딱 3시에 시아를 데리러 갔다. 매일 놀던 운동장에 시아가 없다.

교실이 있는 2층에 올라가니, 금발의 여자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다.

"엄마, 조금만 더 놀아도 돼?"

"응, 그래."

평소 같으면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 너그럽지 않은 중년 엄마는 온화한 미소를 장착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시아를 기다렸다.

한 십분 더 놀고, 나에게 온 시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 재밌었다. 우리 뭐했는지 알아? 친구들이 노래를 만들었어. 나는 잘 못하니까 친구들이 만든 노래를 같이 불렀어. 춤도 만들 거다. 춤은 나도 만들 수 있으니까 나도 같이 할 거야."

"그랬구나, 재밌었겠다."

"내일은. 두 시간 놀면 어때? 내일은 4시에 와."

"괜찮겠어?"

"응, 응. 괜찮아. 내일 보고 심심하면 다음에는 다시 3시에 가면 되지."

"그래."


그녀를 만나기 30분 전이다. 오늘도 웃고 있을까? 오늘은 다시 심심하게 외로웠을까?


눈이 오고 나서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어렵고 더디게 달린 꽃봉오리들이 얼어버리는 게 아닐까? 꽃도 피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매일 들여다보던 나무에는 눈과 바람을 이긴 꽃이 달렸고, 차가운 땅 위에는 뜰 꽃이 피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차도, 꽃은 피고야 말았다.

참 대단하게도. 참 고맙게도.

기다리고, 궁금했던 올해의 꽃 손님은 어느 때 보다 반갑고 화사하고 뭉클하다. 

9살을 처절히 견뎌내 주는 너도 화사하고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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