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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l 22. 2019

Very Normal 이탈리안 바캉스

여름 방학이고, 여름휴가다.

애초에 계획했던 한국에서의 여름휴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되어 서운해하는 시아에게 이태리행을 제안했다. 

 "이태리에 가면 괜찮아. 어쩌면 아직은 이태리에 가는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그렇게 시아에게는 고향이고, 여전히 형제 같은 인연들이 살고 있는 이태리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로 했다.


이태리 사람들은 바닷가 리조트 여행을 즐긴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은 매년 봄부터 리조트 예약에 열심을 다한다. 하지만 막상 우리는 이태리에 살던 15년 동안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지 못했다.

리조트라니. 어딘가 구식이거나, 지루하거나, 비쌀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휴가 계획을 늦게 잡는 바람에 꼼꼼하게 행선지를 골라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초 여름부터 최저가 숙소를 검색하고 흥정을 하고, 행선지를 고르고, 누구나 파라솔을 들고 가서 쉴 수 있는 자유 해변을 찾아야 하는데, 이태리 행 결정을 늦게 내리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휴가 혹은 여행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예약이 용이했고, 아직은 비수기로 가격이 적합했기에 리조트를 예약했다. 그나마도 없어질까 봐 오래 고민도 못하고 예약을 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이태리에 살지도 않으면서 제일 이태리다운 가족 바캉스를 보내게 된 것이다.


Marche 지역은 늘 궁금했으니 꼭 리조트 바캉스만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과 당부를 하며, 지명도 처음 듣는 아드리아 해의 NUMANA라는 해변가 도시에 오래되고 손님이 많은 리조트에 예약 확정 버튼을 눌렀다.  이태리의 아드리아 해변은 아이들이 수영하기엔 수심이 조금 깊다고도 하고, 모래보다는 자갈 해변이라고 해서 그동안 가보질 못했다. 이제 시아는 아홉 살이고, 물속이 캄캄한 북해에서 다이빙도 해 보았으니 자갈 해변이 있는 아드리아 해변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태리다. 어딘들. 이제 우리에게 이태리는 현실이 아니다. 그리움의 대상이고, 지난 연인이다. 환상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이태리라면 다 좋을 것 같았다.


리조트는 처음인 우리는 커다란 대문 앞에 차를 세우고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운 표정을 하고 벨을 눌렀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문을 열어주고, 주차장과 리셉션을 안내해주었다. 모두 너무 친절하다. 무슨 얘기든 정색하고 본론만 얘기하는 덴마크에 살다 와서 그런지 수다스럽고 친화감이 넘치는 친절이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우리는 자꾸만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태리는 원래 이랬나? 리조트라 그런가?

칵테일 서비스까지 받고 우리가 묶을 통나무집에 안내를 받아 도착했다. 리조트 안에 호텔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300채가 넘는 방갈로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태리 서민 출신답게 당연히 통나무로 지어진 방갈로를 예약했다.


일곱 난쟁이 집처럼 생긴 연분홍색 방갈로가 나란히 줄을 지어 서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이런 리조트엘 다 왔구나.

작은 통나무 집이지만 안에 부엌, 욕실, 방 두 개, 있을 건 다 있다. 리조트 안에는 수영장, 공연장, 식당, 바, 테니스장, 공원, 심지어 성당이 있다. 리조트 건너 해변은 리조트 전용 해변으로 우리 방갈로의 번호와 같은 번호의 파라솔과 비치배드를 찾아가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배낭에 먹을 걸 가득 담고 파라솔을 어깨에 메고 마음에 드는 해변을 찾아다니는 휴양을 주로 하던 우리는 이런 느긋한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 잠시 길 잃은 사람들처럼 허둥댔다. 뭘 하지? 어딜 가지?

우리가 허둥대는 동안 시아는 야무지게 수영복을 갈아입고, 슬리퍼를 찾아 신고, 수영장부터 가보자고 한다.


수영장에는 미끄럼틀도 있고, 비치배드도 있고, 한쪽에서는 아쿠아 짐 강습도 하고, 수영장 바에서는 투숙객들이 게임도 한다. 시아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취해 연실 깔깔 웃으며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다. 오랜만에 물놀이에 시아는 말 그대로 물을 만났다. 수영도 하고, 물속에서 체조도 하고, 다이빙도 하고... 


몸이 퉁퉁 불을 만큼 수영을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니 리조트가 들썩들썩하다.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야외 공연장에서 행사가 있는 것 같다. 야외 공연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하다. 베이비 덴스. 아이들이 춤추는 시간이라고 한다. 아이들 춤추는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공연, 그 공연이 끝나면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공연, 그렇게 공연이 다 끝나면 새벽 1시. 매일 다른 공연으로 매일 새벽 1시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 다 끝날 때까지 시아는 눈을 반짝이며 조금 촌스럽고 유치한 공연에 환호했다. 

다음날 지난밤의 유흥으로 느지막이 일어나 진한 커피와 달콤한 브리오쉬와 비스킷을 먹고, 평생을 리조트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슬리퍼를 신고 해변으로 향했다. 348. 통나무집 번호가 쓰여있는 파라솔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 발아래 동글동글한 자갈을 밟아가며 바다를 만났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바닷물에 둥둥 떠 다니기도 하고, 파도를 뒤집어쓰고 깔깔 웃기도 하고, 되지도 않는 수영 시합을 하기도 했다. 


리조트 스태프들은 해변에서, 수영장에서 쉬고 있는 투숙객들에게 필요한 건 없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수시로 확인을 한다. 역시나 친근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멀리서부터 CIAO!!! 하고 인사를 하며 다가온다. 우리 옆에 아주 자리를 잡고, 어디서 왔는지, 뭘 좋아하는지, 이태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Numana는 초행인지 질문을 늘어놓고, 묻지 않아도 본인은 누구인지, 어떻게 리조트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술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아는 그런 대화를 즐기는 듯했고, 1년 북유럽 거주자인 나는 좀 부담스러워했고, 황가수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해변가에서도 비치발리볼, 체조, 음료수나 간식이 부상으로 걸린 간단한 게임을 하고, 수영장에서도 아쿠아 짐, 아쿠아 댄스 같은 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퍼히어로 복장을 한 스태프들이 수시로 나타나 아이들과 악수를 하고, 안아주고, 사진을 찍는다. 시아는 매일 늦게까지 공연 관람을 간절히 원했고, 우리는 물놀이로 인한 피로로 때로는 꼬박꼬박 졸며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심심할 수 없다. 아마 이태리의 리조트라는 곳은 그런 슬로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리조트의 그런 신박한 서비스 보다도 그 모든 프로그램에 임하는 이태리 사람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무것도 사소하거나 사사롭지 않다. 모든 프로그램은 중요하다. 아쿠아 짐도, 애피타이저를 걸고 하는 게임도, 부모 대항 탁구 게임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맞는 옷차림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장소에 나타나고, 예사롭게 따라 하기 어렵거나 혹은 부끄러운 동작도 혼을 담아 선보인다. 게임에 패하면 진심으로 슬퍼하고 승리하면 온 가족이 포옹을 하며 Numana가 떠들썩하게 환호한다. 베이비 덴스 시간에 춤을 추러 나온 꼬마들은 모두 파티에나 어울릴법한 의상을 하고 나타나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닮은 율동에 임한다. 

수영장 옆 야외 공연장에 저녁 공연을 보러 나온 어른들은 가까이 가면 다리미의 열기가 느껴질것 같은 빳빳한 셔츠에 반바지, 해변에 어울리는 원피스에 하이힐을 차려입었다. 


소박한 해변가 시골 마을에 대단히 고급스러울 것도 없는 리조트이지만,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마치 지구 상에 더 좋은 리조트는 없는 것처럼, 이런 휴가를 보내는 스스로가 아주 대단한 것처럼,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이 신물 나도록 자연스러운 것처럼 행동했다. 


다리미를 들고 여행을 다니는 걸까? 도대체 옷 가방이 얼마나 클까? 아침부터 저녁 공연까지 쉬지 않고 투숙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스태프들의 일당은 어느 정도 일까? 휴가가 끝나면 350호, 346호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여름 시즌이 끝나면 리조트의 스태프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같은 질문들을 만들어 내며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리조트 여행에 대한 거북함도 금세 사라졌다. 


이태리에는 바캉스 영화라는 영화의 장르가 있다. 길게 줄 선 파라솔과 비치배드 사이에서 연인도 생기고 스캔들도 생기고, 감동도 있고, 웃음도 있는 그런 영화들이 매년 여름 개봉한다. 흑백 영화로까지 그 기원이 올라간다고 하니 길고 단단한 역사다. Numana의 클래식한 리조트에서의 일주일은 마치 그런 영화를 보고 있는 듯했다. TV에서 방영했던 바캉스 영화들을 떠올리며, 영화의 장르까지 만들어질 만큼 대단한 이 사람들의 바캉스, 바캉스를 대하는 자세를 체험했고 실감했다.


젊은 아가씨들을 살뜰히 챙기는 검게 그을린 피부의 건장한 수영장 안전요원, 엄마 아빠들이 저녁 공연을 즐기는 동안 통나무집 처마 밑에 꼭 끌어안고 앉아 밀회를 즐기는 십 대 청소년들, 늘씬한 아가씨들에게 가감 없이 당당하게 눈길을 주는 배 나온 남자들, 매일 다른 원피스에 다른 헤어스타일을 하고 저녁 공연을 관람하는 여자들. 나는 엄마고 황가수는 아빤데, 이태리 엄마 아빠는 리조트에서 종일 여자고 남자다. 게으른 나는 부러워도 귀찮아서 범접하지 못할 영역이라 부러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존경하기로 했다.


서민적인 가격에 서민적인 환경의 리조트이지만, 1년 열심히 수고하고, 쉬는 동안은 아주 작정하고 매일 주인공이 되기로 마음먹는 사람들. 그 모습이 다소 과장되고, 희극적이게 보였다면, 그럴 줄 모르는 보는 사람의 잘못이다. 매사에 열정적인 사람들 덕에 난생처음 하는 리조트 여행도 나쁘지 않았다. 


이태리에서 태어난 시아는 리조트가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친구가 없어 앞에 나가 베이비 덴스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관람하고 엉덩이를 들썩였고, 공연 시간에는 나와 황가수의 어깨를 번갈아 쳐가며 박장대소했다. 수영장에서 인사를 해주는 언니 오빠들도 좋았고, 바닷가에서 안부를 물어주는 언니 오빠들도 좋았다. 머리를 빗고 바에 앉아서 콜라를 마시는 것도 좋았고, 십 대 언니 오빠들의 묘한 연애 기류를 슬쩍슬쩍 엿보는 것도 좋았다. 


"다음에 이태리에 오면 또 여기 오면 어때? 다음에는 내 친구 G, M  같이 오면 좋겠다. 그럼 나도 베이비 덴스 같이 하고, 어린이 클럽도 매일 갈 거야. 난 이번 휴가가 진짜 진짜 재밌었어!"

사소한 게 없어 그냥 넘어가는 게 없는 네가 아홉 살이라 엄마가 그렇게 피곤했던 게 아니었구나. 네 안에 이태리가 있어 그랬구나. 바캉스 영화 보듯, 리조트에서 이태리 사람들 보듯, 한 발 뒤에서 너를 봐야 우리가 평화롭겠구나. 내 안에 여자가 게으른 동안 엄마라도 교훈을 얻었으니, 리조트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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