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aMya Aug 02. 2019

들어와, 앉아봐, 먹어봐. 이태리의 돌직구 인심

올여름 이태리는 너무너무 더웠다.

연일 40도가 웃도는 날씨에 있던 식욕도 싹 사라질 것 같았지만, 고향 음식을 만난 시아의 식욕에는 더위도 맥을 추지 못했다.


"프로슈토, 살라메!!! 음~ 냄새 좋다!!!!"

일종의 햄의 해당하는 이태리 살루메 코너 앞에서 시아가 코를 벌렁 거리며 비릿한 고기 내에 흠뻑 취했다.

이유식 말기부터 먹었으니 거의 평생을 먹었던 프로슈토 꼬토, 이태리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짭짤한 살라메, 육질이 탱글탱글한 브레자올라를 하나씩 훑어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오늘은 브레자올라랑 프로슈토... 아니, 프로슈토랑 살라메... 아... 잘 모르겠다."

"조금씩 3가지 다 사서 먹지 뭐."

"좋아!! 너무 맛있겠다!! 빵도 하나 사야지. 저걸로 사자. 겉이 바삭바삭하게 생겼네!"

점원 아저씨가 능숙한 솜씨로 삭삭 슬라이스를 해 100gr, 200gr씩 담아주신다. 시아가 슬라이스 칼 옆으로 자리를 옮겨 얇고 맛있게 프로슈토가 잘리는 걸 구경하며 연신 음~ 음~ 소리를 낸다.

"하나 먹어 볼래?" 점원 아저씨가 곁에서 감탄하며 관람하는 시아에게 프로슈토 한 장을 건네셨다.

"고맙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얼굴을 한 시아가 프로슈토를 받아 입을 크게 열고 한입에 넣었다. 

"너무 맛있다!!! 진짜, 딱 이 맛이야!!! 빨리 가서 더 먹고 싶다. 빨리 가자!"

시아는 어릴 때부터 살루메를 좋아했고, 포장되어 파는 살루메보다는 이렇게 직접 썰어주는 살루메를 좋아했다. 그게 더 신선하고 맛있기도 하고, 또 이렇게 슬라이스기 옆에서 가끔 한 점씩 얻어먹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태리는 여전히 다정하고 따뜻하구나.


유럽에서 3번째로 작다는 산마리노라는 나라에 들렀다. 

산마리노 안에 있는 숙소는 가격이  높은 편이라 산마리노가 보이는 건너편 산 중턱쯤에 숙소를 예약했다. 농가에서 운영하는 숙소로 큰 방을 빌려주는 곳인데, 소, 염소 같은 동물도 있고, 주변 경치도 참 좋아 보였다. 그리고 가격이 아주 좋았다.

밀라노에서부터 출발해 40도 뜨거운 해를 받으며 죽죽 내려갔다가 내가 구한 숙소답게 쉽지 않은 비포장도로 코스를 지나 드디어 도착했다. 정말 소랑 염소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도착하고 마음 좋아 보이는 안주인과 시아보다 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왔다.

표정이.... 당혹스럽고 미안한 얼굴이다.

"우리는 예약 취소 연락을 받았는데, 취소하신 게 아닌가요? 취소 연락을 받고 새로운 예약을 확정했습니다. 저희는 방이 딱 하나라서 빌려드릴 공간이 없어요.."

"예약 취소라니요? 저는 예약을 취소한 적이 없는대요"

"잠깐 들어오세요."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아가 놀라 훌쩍,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섰다.

"꼬마 아가씨,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안주인은 우리를 큰 농갓집의 거실로 안내하고 시원한 물을 한잔씩 건넸다. 

컴퓨터를 켜고 예약 취소 메시지를 보여주고, 나도 같이 확인했다. booking.com에서 보낸 메시지인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받지 못하고, 주인에게만 메시지가 갔다. 결제가 안됐다는 내용인데, 같은 카드로 다른 숙소도 예약했으니 카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주인이 대신 booking.come에 전화를 해주었다. 카드 문제라고 확인은 해주었지만 다른 숙소를 같은 카드로 예약했고 그 예약은 문제없이 처리되었다는 항의에는 별다른 답변을 주지 못했다.

booking.com에서 다른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며 여러 숙소를 제안했지만, 안주인은 거리가 멀고, 가는 길이 험하고, 시설이 안 좋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가며 꼼꼼히 거절하셨다. 확실히 결제가 되지 않았는지, 혹시 며칠 지나 갑자기 결제가 될 일은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booking.com 측과 통화를 마무리했다.

"제가 아는 동네의 숙소들에 전화를 해볼게요."

우리는 남의 집 거실에 앉아 시원한 물을 마시며 커다란 개의 배를 쓰다듬으며 남의 일 구경하듯, 미안하지만 참 편안했다.


여기저기 숙소에 전화를 하다, 산마리노 안에 있는 호텔에 연락을 하고, 가격 흥정까지 하고, 전화기를 한 손에 들고 우리에게 의사를 묻고, 조식 포함인지 다시 확인을 하고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 집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새로 리모델링을 한 호텔이라 괜찮을 거예요. 우리 집에 묶었다면 우리도 더 좋았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어디 나갔다 오기도 어려우니 오후 내내 산속에 갇혀있을 텐데, 호텔로 간다면 바로 산마리노 시내에 산책을 다녀올 수도 있잖아요. 정말 죄송해요 예약 취소 메시지를 받았더라도 내가 한번 더 당신에게 연락을 해봤아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여행에 힘든 기억을 심어준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여기서 호텔까지 가는 길은..... 여보!!!"

방금 전까지 농기구를 점검하던 주인의 남편이 땀을 훔쳐가며 들어온다.

"당신 조금 이따 나가야 하죠. 이분들 산마리노에 있는 호텔까지 길 좀 안내해 주세요."

"음, 그래. 잠시만요. 준비하고 나올게요."

주인아저씨가 금세 옷을 갈아입고 오토바이에 오르셨다. 시아보다 두 살 많아 보이는 딸도 아빠를 따라나섰다.

"우리가 천천히 내려갈 테니 따라오세요."

안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음에 꼭 다시 찾겠다고 약속했다.

아저씨와 딸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를 따라 굽이 굽이 비포장 도로를 지나 산마리노에 들어가 큰 길가에 있는 호텔 앞에 도착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천만에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한 농장 숙소 주인은 진흙 묻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떠났다.  

"아줌마가 참 친절하다. 아저씨도 참 친절하고. 다음에는 그 집에 꼭 가서 자고 싶어. 소도 있고, 염소도 있고, 언니도 있으니까 재밌을 것 같아. 호텔이 예쁘고, 아침도 맛있는 걸 많이 준다고 하니까 여기도 좋긴 해. 아줌마가 호텔을 깎아달라고 해서 참 다행이야. 좋은데 좀 비싸게 생겼어." 

그렇게, 우리가 아직도 벌어진 상황을 소화해내기도 전에 우리는 하얗게 새로 외벽을 칠한 호텔에 도착했고, 산마리노 아래 풍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안주인의 말처럼 우리는 산마리노 시내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우리가 이미 Numana의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안주인에게서 메일을 한통 받았다.

예약 취소를 다시 확인하지 않은 게 미안하다고, 호텔은 괜찮았냐고, 더운 날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그렇게 보내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이태리의 마음은 지중해의 햇살보다 더 뜨겁구나.


나라 안의 작은 나라 산마리노에서 기념품을 샀다. 시아가 꼭 사고 싶다고 했다.

"이거 주세요!" 조금 수즙게 이태리어로 기념품을 달라고 하는 시아에게 매장 주인이 함박웃음을 보인다.

"Amore! (사랑)" 이태리 사람들이 아이들, 연인들, 그냥 친한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Honey 정도의 표현이 될 텐데, 이태리 살면서는 낯간지럽고, 과장된다고 생각했던 표현이다.

"Amore! 몇 살이니? 참 예쁘다, 이태리 말을 잘하는구나!"

"고맙습니다. 저는 원래 이태리에 살았는데, 이제는 이태리에 살지 않아요. 저는 덴마크에 살아요."

"Oh! Amore! 그래? 덴마크! 정말 좋겠다. 아주 멋있는 곳이라고 들었어."

"아니에요. 저는 이태리에 사는 게 더 좋아요."

"Amore, Amore! 자 이건 선물이야. Amore!"

작은 기념품 하나를 건네시며 매장 주인아주머니는 연신 Amore를 부르셨다.


이태리의  Amore는 낯간지럽고 과장되어도 참 정답고, 푸근하구나.


바닷가에는 항구가 있고, 항구에는 고기잡이 배가 들어올 것이다.

바다를 끼고 품고 있는 덴마크에 살면서 늘 부족했던 해조류를 찾아 지난밤 음료 가무로 피곤한 시아를 억지로 깨워 항구로 나갔다.

우리는 이르게 갔는데, 벌써 장사를 다 한 배도 있다. 역시 부지런해야 맛있는 걸 먹는다. 

검은 피부에 드러난 팔에 잔 근육이 도드라지는 아주머니 배 앞에 가보았다. 갈색 눈이 깊고 참 예쁘시다. 

맛있게 생긴 작은 생선과 홍합, 스캄피가 있는데.. 아무래도 손질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내 고민을 알았다는 듯이.

"생선은 손질을 해야 하지만, 소라는 손질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번 삶아내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어."

소라가 잔뜩 담긴 양동이를 들어 보이신다.

"이리 와 봐, 손 내밀어봐."

시아 손바닥 위에 소라 두 개를 올려놓으셨다.

"아! 무서워요!"

"괜찮아, 물지도 않는데, 잘 봐라. 이렇게 뿔이 뾰족 한 건 Bombetti, 뿔이 없이 동그란 건 Crocette라고 해. 맛은 똑같지만 모양은 다르지. 어때 먹어보고 싶어?"

"소라는 얼마예요?"

"키로에 5유로인데, 이거 다해서 15유로에 줄게."

"다요? 너무 많아요! 우리 셋뿐인데.."

"껍질 빼고 나면 얼마 안돼요. 파스타도 해 먹고, 그냥 삶아서도 먹고, 샐러드에 곁들여서 먹어도 좋아요. 아직 살아 있을 때 삶아서 속을 빼서 냉장고에 두고 먹어. 같이 앉아서 속을 빼는 것도 재밌을 거야."

5킬로도 넘을 것 같은 소라를 커다란 봉투에 쏟아 담아주셨다. 

소라라니, 정말 오랜만에 먹는다. 

삶아서 속을 쏙쏙 빼서 먹었는데, 탱클 탱글한 살이 참 맛있다. 바다 냄새나는 고기다.

삶아도 삶아도, 줄지 않은 소라를 나는 삶고 시아와 황가수는 속을 뺐다. 아줌마 말대로 재밌었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신문지에 담아 팔던 고동 얘기도 하고, 초고추장이 아쉽다는 얘기도 하고, 속을 잘 빼는 시아를 격려하기도 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어부의 충고대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파스타도 먹고, 샐러드도 먹었다. 3일을 먹었다. 


이태리의 바다 냄새는 푸짐하구나.


리조트 앞에 "신선한 모차렐라! 신선한 과일!"이라고 구수한 사투리에 공명 잘되는 음성으로 목소리 광고를 하시는 과일 트럭 아저씨가 계신다. 배가 많이 나오신 아저씨는 우리가 바닷가에 나갈 때나 들어올 때 항상 인사를 하시며 과일과 모차렐라를 권하셨다.

북유럽 주문답게

"복숭아 4개, 자두 3개, 체리 500g을 주세요."

했다.

"응? 4개? 4kg?"

"4개요. 4kg는 너무 많아요."

"뭐든지 담아 2kg에 5유로니, 자, 여기 먹을 만큼 담아봐요. 복숭아 4개는 한입에 다 먹을 수 있을 텐데 하하하."

배가 많이 나온 아저씨가 크게 웃으시며 건네주신 봉투에 이것저것 과일을 담았다. 

욕심을 냈는지 무게를 달아보니 2kg가 조금 넘는다. 

"아, 딱 2k네, 자 오이랑 토마토를 좀 넣어 줄 테니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요. 이건 납작 복숭아 인데 아주 잘 익었으니 이것도 좀 넣고, 살구는 어때? 살구 좋아하니?"

아저씨는 이미 무게를 담은 봉투에 이것저것 야채와 과일을 담고, 시아 손에는 잘 익은 살구 두 개를 쥐어주셨다.

과일만 먹고 밥을 못 먹을 만큼 배가 부르다. 배도 이태리 왔구나 할 것 같은 포만감이다.


이태리의 과일은 호사스러운 포만감이구나.



Numana에서 위로 높이 보이는 산 위에는 Loreto라는 도시가 있다. 도시 중앙에 있는 Santa Casa라는 성당의 벽이 실제 마리아가 태어난 나사렛의 집의 벽이라는 '전설'이기도 하고 또 일부는 증명된 사실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순례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병든 사람들이 낳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는 그 성당을 찾고 싶었다. 순례자들처럼 기도를 하며 걷지는 못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산 정상의 성당의 모습에 마음이 경건해지는 기분이었다.

경건하게 기도를 읊조리기도 하고 성호를 긋기도 하는 신자들 곁에서 성당을 조용히 둘러보고, 성당을 둘러싼 광장을 둘러보았다. 

성당 뒤 작은 골목에 빵집이 있다.

신도들의 도시에서 빵을 먹어볼까?

셋이 각각 다른 케이크, 비스킷을 주문했다. 

계산을 하려는데, 3유로라고 한다. 하나에 3유로, 9유로인가 보다. 하고 10유로를 냈는데, 7유로를 거슬러 준다.

계산이 잘못된 것 같아서 하나에 3유로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하하 그럼 정말 좋겠네요. 하나에 1유로예요."

덴마크 말고 밀라노와 비교해도 놀라운 가격이다. 혼자 한 조각 먹으면 배가 불러지는 견과류까지 듬뿍 들어있는 케이크, 시아 얼굴만 한 비스킷, 신선한 크림이 부드러운 케이크가 모두 1유로씩. 슈퍼도 아니고, 모두 직접 구워 만들어 파는 빵집인데... 

우리는 각자 주문한 분량을  다 먹고, 기분이 좋아져, 아이스크림까지 하나씩 더 사 먹었다. 


이태리의 달콤함은 가벼운 지갑에게도 꿀맛이구나.


이태리는 낙원도 아니고, 외국인에게 만족스러운 사회도 아니다. 살면서 하루에 한 번쯤은 투덜거렸고, 일주일에 한 번쯤을 얼굴을 붉히며 다투었고, 한 달에 한 번쯤은 속았고, 일 년에 한 번쯤은 정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순수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많은 이태리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찬란한 풍경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다시 만난 이태리는 밉고, 얄밉고, 원통했던 날들을 지워주려 작정한 듯 다정했다. 웃으면서 손을 잡으면서 도움을 주면서 달콤하고 아삭한 것들을 건네면서 이태리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가져달라고 한다. 


회후한 이태리는 인정도 풍경도 뜨겁게 아름답기만 하구나. 사랑했던 추억만 품고 자꾸만 돌아보며 살겠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느린 풍경. Marche- Numan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