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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13. 2021

물이 차도 바다는 바다

덴마크 여행 - AGGER

산보다 바다가 좋다. 수영도 잘 못하지만 바다를 보면 뛰어들고 싶다.

삼면만 바다가 아니라 온면이 다 바다인 섬나라 덴마크에 오면서 '그래, 조금 외로워도 바다가 있잖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아무데서나 첨벙첨벙 물에 뛰어드는 덴마크 사람들을 보고, 북해도 별거 아니네 하고 나도 뛰어들었다.

아우... 너무너무 차다. 바다물이라기보다 스위스 알프스 아랫자락 계곡물에 뛰어든 기분이었다. 북해는 별거구나. 그래도 바다는 바다라 여름이면 이를 꽉 물고 뛰어들어 헤엄을 치고, 겨울에는 바람에 휘청거리고 서서 물 구경을 했다. 

어쩌다 고른 여행지 Agger에 도착하니 모래사장이 끝이 없다. 거기다 인구가 적은 덴마크 답게 해변이 아주 한산하다.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은 정도다. 숙소에 짐만 내려두고 급하게 수영복 입고 해변으로 나섰다. 셋이 같이 물에 발부터 들어갔는데, 너무 놀라 같이 멈추었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한 남쪽의 셀렌 섬 바닷물은 찬 것도 아니었다. 후후 숨을 몰아쉬고, 물장구를 치며 준비 운동을 막 하고, 셋이 약속하고 하나, 둘, 셋을 세고 동시에 입수했다. 다시 떠올려도 부르르 몸이 떨린다. 진짜 찼다. 이 물이 더 뜨거워지면 지구가 아픈 거라니까, 이 물은 원래 이런 거니까 물 탓하지 말자. 우리는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덴마크 북부 스타일 바다 즐기기를 터득했다. 

덴마크 바다에 튜브 타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여기 사람들은 다 수영을 잘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다. 물이 차니 튜브 타고 동동 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온몸을 격렬하게 움직여 수영을 잠깐 하고 다시 나와서 몸을 데우고 또 들어가는 것이 북해 스타일 해수욕이었던 것이다. 

젊은 딸은 찬물에 어느새 적응을 했는지 물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신진대사가 느린 우리 부부는 물 밖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었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더 차가운 북해를 진하게 만났다.

11살이 되었어도 모래사장을 좋아하는 딸은 인적 드문 모래 사장에서 모래 구덩이도 파고, 성도 쌓고, 댐도 만들면서 바닷물만큼 모래도 원없이 즐겼다.

그리고 물개.

진정한 덴마크 휴가인 답게 바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저녁 수영을 나왔다. 몇 번 어푸어푸 물을 가르는데, 물 위에 떠 있는 동그랗고 까만 뭔가가 보인다. 저게... 뭐지....

"물개다!"

"물개다!"

물개였다. 진짜 물개였다. 처음에는 한 마리였는데 나중에는 4마리까지 늘었다. 

제 집에 허락 없이 놀러 와 물 차다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물개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 정말 예쁘구나.

북해에서도 호기를 부리며 물을 첨벙거리던 황가수는 당황한 듯 뒷걸음을 치며 물 밖으로 나왔다.

"제네들이 수영이 아주 빨라. 금방 여기까지 올 거야."

 ㅎ 무섭구나.

날이 저물어 차가운 바람이 불 때까지 까맣고 둥근 물개 머리에 반해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렇게 물개와 눈을 한번 마주치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작은 배를 타고 물개 서식지를 구경하는 물개 투어가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검게 그을린, 딱 봐도 어부처럼 보이시는 조정사님이 운전하시는 작은 배를 타고 물개를 찾아 나섰다. 한가운데서 내려다본 북해는 참 깨끗했다. 지중해의 초록빛보다는 아주 진하고 어두 룬 초록색이었지만, 그래도 그 아래 물고기들이 들여다 보일 만큼 깨끗했다. 배 타고 얼마 나오지도 않았는데, 돌섬에 나란히 들 앉아 새끼 돌보고, 쉬고, 싸움도 하는 물개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덩치가 더 큰 물개들도 있었다. 덴마크 바다에는 덩치가 아주 큰 물개랑, 작은 물개랑 두 종류가 살고 있다고 했고, 물개들은 게를 좋아하는데, 이 지역에 특히 물개들이 좋아하는 큰 게들이 많아 물개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인어처럼 다리 대신 요염한 꼬리를 탁탁 치며 움직이는 물개들을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다니, 감격스러웠다. 사람이 만들어 준 터전이 아니라 물개의 터전에서 만나는 물개들은 편안해 보였고, 사람들의 시선을 귀찮아하는 모습이 쉬크하고 당당해 보였다. 아주 보고 싶었던 슈퍼스타를 만나는 것처럼 하마터면 눈물이 다 날뻔했다. 물개 구경을 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정사님께서 손가락으로 바다 한쪽을 가리키신다. 

어머, 돌고래다. 어머, 어머.

내 입에서 감탄사가 속수무책으로 흘러나왔다. 바로 저기, 조정사님의 손 끝이 가리키는 거기 돌고래 하나, 둘, 셋, 네 마리가 풀쩍풀쩍 뛰어오르며 헤엄을 치고 있다. 조정사님은 승객들의 감탄사 소리에 만족해하시며 돌고래를 매일 만날 수 있는 건 아닌데 오늘 운이 좋았다고 하신다. 너무너무 운이 좋았다.

물개와 돌고래라니. 내게 주어진 모든 행운이 감사하고 벅찼다. 호들갑을 떨던 딸아이는 돌고래의 등장에 숨을 죽였고, 아하.. 하는 낮고 깊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배에서 내리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한동안 말은 못 하고, 서로 아... 아... 하고 감탄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도 또 한 번 해수욕하다 물개를 만났다. 모래 위에 돌무더기를 쌓다 눈을 들었는데 물개가 또 우리를 보고 있다. 친구를 만났것처럼 반가워서 벌떡 일어나 손을 막 흔들었다. 그 물개는 오늘도 잘 있을까? 참 예쁘고 고마웠다.


바다에 별이 떨어졌네. 

밤바다 산책 중에 파도에 실려 모래사장으로 떠내려온 앙증맞은 불가사리를 발견했다. 다시 물살에 밀려가기 전에 급히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꼬물꼬물 움직인다. 원래 불가사리는 이렇게 말랑말랑하구나. 마음 같아서는 코펜하겐까지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바로 들어오는 물에 놓아주었다. 예쁘고 통통한 불가사리의 매력에 반하여 몇 번을 더 밤바다에 나갔다. 원래 불가사리가 그런 건지 덴마크에 사는 불가사리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AGGER 해변의 불가사리는 바다 아래로 해가 가라앉아야만 나타났다. 별이었다.


Cold Hawaii

덴마크와 서핑이라니 생각해 보지 않은 조합이다. 서핑이라면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와이, 호주 같은 곳이 먼저 떠오른다. 물이 검푸르고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덴마크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을까? 

Agger를 비롯한 율랜드 북서쪽 해안을 Cold Hawaii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건 아무래도 덴마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인 듯하다. Cold는 맞지만 Hawaii는 좀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Cold Hawaii에서는 세계 서핑 대회가 열리기도 했었다고 하니 서퍼들에게는 북유럽의 서핑 성지쯤 되는가 보다. 

세상 모든 운동이 궁금한 딸이 서핑 용품 상점 구경을 하다 서핑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서핑의 성지답게 서핑 교습도 가능하다기에 교습 신청을 했다. 나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지만 황가수는 조금 의욕을 보였으나, 서핑에 앞서 균형 연습하는 벨런스 보드에 올랐다 고공 낙하를 하시고는 의욕을 잃었다. 아찔하고 부끄러운 순간 뒤에도 "그래도 내가 운동 신경이 좋아서 이 정도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많이 다쳤을 거야" 라며 기개만은 굽히지 않았다.

서핑이라는 운동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몇몇 성인들이 벌써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철썩철썩 파도를 거슬러 보드를 끌고 들어가 다시 파도를 타도 돌아 나오는 운동이 좀 싱거워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제 키만 한 보드를 끌고 나가 보드에 몸을 싣고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돌아온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재미있는 운동을 만났을 때의 흥분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이다.

세 시간 가까이 파도를 거슬러 보드를 끌고 나갔다 돌아오고를 반복하면서 제법 보드 위에 몸을 세워 바로 서는 자세도 잡게 되었다. 힘들어서 쉴 법도 한데, 쉬지 않는다.

"여기 다시 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니까 오늘 많이 해야지."

교습 다 끝나고 옷을 벗었는데 보드를 묶었던 발목이 발갛게 까졌다. 쓰라리고 아팠는데,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열한 살에게는 대견하다고 했지만 사실 존경스러웠다. 재미에 대한 열정. 아픈 것도 힘든 것도 다 참을 수 있는 그런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열한 살은 찬란하다. 


튜브 타고 동동도 못하고, 염분이 낮아 몸이 잘 뜨지도 않지만,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가 딱딱 부딪히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덴마크 바다의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파라솔도 없고 비치배드도 없는 심심하고 조용한 덴마크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의 얼굴이 있다. 파도 소리, 갈매기 우는 소리만 들리는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의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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