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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기자 Feb 05. 2023

도쿄, 배려와 무관심 사이의 도시

교통약자 이동권의 사각지대

 2022년 마지막 퇴근 후 하네다행 저녁 7시45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버티고 버티다 일본에 가기 위해 맞은 3차 백신 접종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인지라 여행에 대한 설렘을 피곤함이 이기고 있었다.


인고의 입국 심사를 끝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철 게이큐선 플랫폼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마침 열차 한 대가 곧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기관사가 기관실 문으로 몸을 반쯤 내민 채 열심히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1000만 도시 서울에 사는 사람에게 곧 출발하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지는 건 일상.  행선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캐리어와 몸을 던지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요코하마행이면 어떡하지?"


서둘러 다시 내려서 수신호와 정체 모를 안내를 외치고 있던 기관사에게 도쿄행이 맞는지 물었다. 기관사는 하던 안내 방송을 멈추고 내게 도쿄행이 맞다고 대답해 줬다. 그제야 안도를 하고 다시 열차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네다공항에서 출발한 게이큐 전철은 시나가와역 부근에서 도에이 지하철 아사쿠사선과 직결된다. 북쪽에서는 게이세이선과 직결돼 나리타공항까지 연결된다.


시뷰야 스크램블 교차로

수많은 사철(私鐵) 노선이 존재하지만 나름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직결 운행을 하는 시스템인데, 문제는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노선을 탔는지도 헷갈린다는 점이다.


내 계획은 다이몬역에서 도에이 지하철 오에도선으로 갈아타는 것. 디테일에 약한 구글의 최적 추천 경로를 무시하고 나름 환승의 편의성과 요금을 고려해서 결정한 방식이었다.


열차는 시나가와역에서 잠시 정차해 갔다. 수많은 환승노선이 교차하는 역이어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인지, 열차의 신호체계가 변경되기 때문인지 몇 분 간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로밍조차 하지 않아 인터넷이 필요 없는 시간 때우기용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던 찰나, 기관사가 우리 칸으로 들어와서 내게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네다공항서 탄 대부분의 승객들이 시나가와역에서 내려서 JR노선으로 갈아타는데 "도쿄행이 맞느냐"고 물었던 내가 걱정돼서였던 것이다. "난 다이몬역에서 내린다"고 말하자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기관사가 굳이 우리 칸으로 와서 내가 혹여나 역을 놓칠까봐 알려주는 것도 감사한데, 내가 다른 역에 내린다는 걸 알고 또 죄송하다는 기관사의 극도의 친절함에 감동을 넘어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게이큐선과 도에이 오에도선이 만나는 다이몬역


혹여나 기관사가 걱정할까봐 난 다이몬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문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내려야겠다고 마음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다이몬역에 도착했을 땐 기관사와 눈을 마주칠 순 없었다. 오에도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계단으로 가고 있는데 기관사가 내게 뛰어왔다. 짐을 두고 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서있던 자리에 골프채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기관사가 내 가방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내 가방이 아니라고 정중하게 얘기했더니 또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겪어보는 친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조죠지 앞


도쿄는 정확히 4년 만이었다.

2018년 연말에 방문해 2019년 새해를 도쿄에서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2022년 연말에 방문해 2023년 새해를 도쿄를 맞이했다.

도쿄를 방문한 시기, 같이 온 사람, 숙소 위치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차이는 있었다. 지난 여름 고관절 수술을 한 엄마의 다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덜 걷고, 최대한 계단을 오르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내겐 큰 미션이었다. 그제야 4년 전엔 깨닫지 못한 도쿄의 단면이 보였다.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한 칸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단 걸 말이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 출구를 찾기도 힘들었을뿐더러 그런 출구를 찾아가도 결국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길에, 혹은 반대로 출구까지 올라가는 길에 꼭 한 번은 계단을 마주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매우 높은 일본이지만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서울 내 지하철역 278개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지 않은 역은 16개. 16개의 역 역시 엘리베이터가 전혀 설치돼있지 않은 것이 아닌 '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연결된 통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은 역을 추린 것이다.


서울이 교통약자 친화도시라는 뜻은 아니다. 서울 역시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00%가 아닌 데다, 도쿄에 비해 시내버스 이용률이 월등히 높은데 반해 저상버스 도입률은 66%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전장연의 시위와 그로부터 촉발된 사회적 갈등 역시 이러한 서울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도쿄의 교통약자 이동권은 처참한 수준으로 다가왔다. 과연 이 도시의 수많은 노인들과 장애인들은 얼마나 이동권을 보장받고 있는 것인지, 이러한 문제의식은 공론화되지 않는 것인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사실상 일당이 정치 어젠다를 독점하고 있는 일본의 정치 구조와는 상관없을까.


정치가 양극단화되고 정당 민주주의가 크게 퇴색되고 있는 한국은 시민들의 집단적인 목소리가 정치권의 어젠다로 반영되는 일명 정치적 반응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만으로 여론이 크게 술렁이고, 정치권이 표를 위해 여론에 즉각 반응하고, 해당 커뮤니티 글과 정치인의 발언은 빠르게 기사화된다. 그로 인해 많은 시민들은 한국은 '떼법이 지배하는 사회', '유사 법치 국가'라고 비야냥대기도 한다. 원래 높은 정치적 반응성과 포퓰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지만 과연 일당 중심의 정치구조로 인해 포퓰리즘의 공간은 작은 대신 장기적인 국가 어젠다 실현이 가능한 일본의 정치 사회 구조가 더욱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엄마의 팔짱을 끼고 도쵸마에역의 계단을 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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