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미성 지음
제목과 표지가 맘에 들어서, 도서관에서 배회하다가 무심코 택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된 그런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지 20년이 넘는 베테랑 '이방인'인데 어느 날 이태리어에 관심이 생겨
회사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파리에서 이태리어 수업을 받는다.
함께 수업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들도 흥미로운데 파리에서도 꽤나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이태리어를 배우고, 저자가 이태리 볼로냐에 단기 어학연수를 갔을 때의 클래스메이트들은
국적과 나이, 직업 모든 게 더 다양해서 역시 흥미로웠다.
이태리 볼로냐에서는 현지 홈스테이를 하면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홈스테이 가족과 유대감을 가지게 되고
단기 연수가 끝나자 저자의 남편이 파리에서 이태리로 와서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이태리에서의 체류는 끝이 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 책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모국이 아닌 곳에 대한 적응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도 이 책을 통해서 어렴풋하게 윤곽을 그릴 수 있다. 언어는 문화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도구이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진실되게 그들의 세계로 발을
들이미기는 어렵다. 일단 언어가 어느 정도 통해야 유니버설 한 인간의 소통이 좀 더 효과적으로 되는 것이고,
그리고 새로운 곳의 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언어가 어느 정도 숙지되었을 때 훨씬 더 흡수가 빠르다.
나 역시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이태리어를 배웠었는데, 이태리어는 사실 꽤나 재미있다.
물론 동사의 변화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영어보다 너무나 좋은 점은 발음기호 그대로, 거의 예외 없이, 발음을 하기에
듣는 대로 쓸 수도 있고, 듣기가 영어보다는 백만 배 쉽다고 생각한다.
아주 미약한 나의 이태리어는 내가 머물렀던 2009년이 지나서 두 번의 이태리 여행 때 나름 효과적으로
그 힘을 발휘했었는데,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식당이나 호텔은 괜찮지만 이태리어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야말로 아주 조금이라도 이태리어가 되는 것이 훨씬 여행이 쉽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동양인인 내가 어설프게나마 이태리어를 몇 마디 하면, 갑자기 상대 쪽에서 친절한 모드로 변신하는 모습도
여럿 봤다.
요즘은 파파고나 번역앱 등이 너무 잘되어 있어서, 사실 핸드폰만 있으면 의사소통을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들이 튀어나올 때, 또 그 튀어나온 언어로서
상대와 대화가 될 때 그 기분은 참으로 묘하고 즐겁다.
자율주행 100%가 가능한 시대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아무리 파파고가 100% 소통을 개런티 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조금씩 언어를 공부해서 직접 자기 입으로
그 언어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치 밀키트로 만든 요리와, 내가 직접 식재료 손질해서 만든 요리는 느낌이 다른 것처럼.
그리고 언어를 배우면서 끝없이 좌절하면서 동시에 소소한 성취를 이루면서 자신감을 조금씩 얻는 것처럼.
새로운 언어는 늘 즐겁다. 나 역시도 그래서 언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은 일본어에 매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