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지음
오랜만에 만난 강렬한 소설.
긴 분량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선명하게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런 소설.
사실 이러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소설가가 그리 많지 않기에,
무라카미 류는 늘 특별하다.
그는 감성을 전달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특히 오디션에서는 중년 남성의 '여성'에 대한 호기심, 애정, 집착 등을
그야말로 감각적으로 잘 전달해 준다.
40대 초반의,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이 주인공이다.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본인의 프로덕션도 설립해서 나름 잘 자리 잡고선
부인이 없어서 가끔 외롭긴 하지만 엇나가지 않고 잘 커주고 있는 십 대 아들을 키우는
적당히 여유 있게 생활을 하는 그런 남자 주인공.
어느 날, 식사 도중 아들이 주인공인 아버지에게 아버지도 여자를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이후에 주인공이 여자를 만나게 되는 스토리 전개.
하지만 그냥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친구와의 수다 끝에 그 친구의 아이디어로
마치 새로운 영화의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을 진행한 후 그 오디션 참가자 중에 재혼 신붓감을
골라보자는 (요즘 같으면 사실 이런 설정은 없었을 것 같지만, 이 소설은 1998년작이다.)
목적 하에 이런 의도가 복선으로 깔려있는 오디션을 실제 진행한다.
이 오디션 참가자 중에 주인공의 눈길을 사로잡은 20대 초반의 여인이 등장하고,
이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어 변해가는 감정이 휘몰아치는 전개를 이룬다.
대충은 이런 스토리인데, 이 여인이 마냥 평범한 그런 여인이 아님을 초반부터 어느 정도
설정에서 캐치할 수 있고 이 평범하지 않음이 결말에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예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묘사가 너무 복잡하지도 않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전달이 잘 되어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이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이 젊은 여인을 놓칠까 봐 안타깝고
애가 타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 계속 휩싸이게 된다.
미스터리라고 보기엔 조금 약하지만 굳이 '어떤 장르'라고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스릴 있는 소설이라서
역시 무라카미 류는 내가 좋아하는 어나더 무라카미 임을 깨달았다.
하루키도 좋지만 류도 좋으니.
감각의 전달은 영화나 음악에서 제일 잘 통할 것 같지만
사실 '글'에서 전달이 잘 되면 가장 강렬하고도 완전하게 감각을 독자에게 전달시킬 수 있다.
그게 되는 작가가 몇 없어서 보통은 그런 경험을 자주는 못 하지만.
요즘 책을 꾸준히 읽긴 했지만 게을러져서 책 리뷰를 안 썼는데 이 책은 뭔가
읽고 나서 강렬한 느낌을 어떻게든 기록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몇 자 적었다.
또 한 번 이런 소설을 읽어보고 싶네.
덧.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그 영화가 고어물로서 나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던데
영화는 보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영화 줄거리 요약 영상으로 봤더니, 주인공의 친구 역할을
영화 '곡성'에 일본인으로 나왔던 배우가 하고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