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지음
임경선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의 에세이를 사랑하고, 그녀가 툭툭 내뱉은 거의 모든 말들이 내게는 너무나 수긍되는 표현들이어서
뭔가 정신이 어수선할 때나 마음이 방황으로 얼룩질 때 그녀가 뱉은 말들을 찾아보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무조건 '호감'은 아니였다.
마치 비슷한 노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뮤지션처럼, 그 뮤지션의 음악이 늘 비슷해서 좋아할 수도 있지만
너무나 몇 년 동안 복제한 듯 똑같아서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도 있는 그런 느낌을
그녀의 소설들에서 받았던 것 같다.
이렇게 100%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또 웃긴 게 임경선 작가가 소설을 발표하면 여지없이
찾아서 읽어보곤 하는 마음도 뭔지는 모르겠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놓지 않고 있었다.
작가의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아마도 가장 큰 의미를 지닌 듯하다.
사실 인간의 인생에서 어찌 보면, 눈감을 때 떠오르는 건 사랑받았던 기억과 또한 사랑했던 기억이 전부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임경선 작가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인데 작가가 발표한 모든 소설 중에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고, 또한 강한 흡입력이 있다. 우연히 알게 된 피아니스트인 남자를 좋아했던 공무원인 여자, 그 여자의 시점으로 풀어내는 사랑 이야기가 줄거리이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허우적대다가 사랑이 끝난 감정을 쫓아가는 스토리인데
뭔가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상대와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이 느끼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대해서 구구절절 공감 안 할 수가 없는 부분이 많다.
모래를 쥐어봤자 힘주면 알갱이들이 스르륵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뭔가 상대를 헷갈리게 만들고 안달 나게 만드는 사람의 유형은 분명 존재하고
그들은 때론 명확하게 표현하지만 대부분은 본인 감정에만 신경 쓰고 상대의 감정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뭔가 관계가 끝나가려 하면 또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액션을 하기도 하는 그런 유형.
소위 '나쁜 남자'가 보통 그러한 유형이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러한 나쁜 남자를
욕하면서도 막상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면 열에 아홉은 빠져드게 된다는 게 우리가 현실에서 맞닿뜨리는
관계들일 텐데 그러한 관계가 끝나게 되었을 때, 그 무수한 혼란과 슬픔과 답답함의 끝에는
자조섞인 추억만이 보통 남아있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쁘다'라는 기준은 대체 어떻게 정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한 표현도 잘은 모르겠다는.
관계에 있어서 100% 절대적으로 나쁘다 라고 말하기도, 좋다 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나.
어쨌든 이러한 모호한 감정으로 얼룩진 연애의 경험은, 인간의 길어진 수명을 생각했을 때 오히려
기억할만한, '좋은' 경험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글로 읽거나 영화에서 본 것이 아닌, 직접 자신이 겪은
스스로가 망가지고 감정에 허우적거리다 일상까지 부숴지는 그러한 경험.
일단 흔하지 않아서 의미가 있고, 그런 깊은 감정의 수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인간을 아니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크나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40대가 되어 점점 메말라져 가는 감정상태, 그 어떤 자극에도 쉽게 동요되지 않던 마음상태를 지닌
요즘의 내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모처럼 찌릿한 순간들을 선사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 것에 대해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책이였다.
한참 벚꽃이 만발하여 흐드러지는 봄날, 오히려 이렇게나 격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는 소설이
대조적으로 잘 어울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