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아내와 내가 탄 항공기는 7시간 만에 자카르타 근처에 있는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과 부통령의 이름을 공항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공항 안에는 짙은 갈색 피부를 지닌 사람들과 머리에 '질밥'을 두른 여성들이 많았다. 드디어 인도네시아에 왔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설렜다.
짐 검사를 마치고 개찰구로 나오자 인도네시아대학교(UI)에 근무하는 두 명의 여사무원과 남자 대학원생이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을 대하자 마치 낯선 곳에서 아주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차를 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오자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느껴졌다. 한국은 추운 겨울이었고 비행기 안도 역시 추울 것 같아 겨울옷을 입고 왔었기에 더욱 그랬다. 우리는 ‘끼장’이라는 승용차에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 차 안으로 스며드는 에어컨 바람이 낯선 더위를 잊게 했다.
‘끼장’이란 ‘사슴’이라는 뜻을 지닌 인도네시아어이다. 사슴이 아주 잘 뛰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끼장’은 도요타에서 만든 2,000cc급 차량으로 뒤쪽 문이 좌우로 나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 차를 특히 선호한다고 했다. 중고차로 내놓으면 좋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데다가, 바퀴가 커서 도로가 물에 잠겨도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우기에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 종종 물에 잠긴다. 이것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반지르’라고 한다. 사전에서는 홍수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홍수와는 차이가 있다. 어쨌든 인도네시아에서는 도로가 수시로 물에 잠기기 때문에 승용차보다 ‘끼장’이 훨씬 실용적이라고 했다.
차가 인도네시아대학교를 향해 가는 동안 우리는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화는 즐겁고 유쾌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인도네시아에서는 참 많이 웃었던 것 같다.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때마다 되물어 보기가 민망해서 웃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야경이 근사한 공항을 벗어나자 곧 자카르타 시내가 나타났다. 도로 양쪽에 세워진 건물들은 밝은 네온사인 때문인지 서울의 건물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인도네시아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객원교수로 선발된 후 인도네시아에 관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구했으나 정작 필요한 정보는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파견되는 대학에 강의용 프로젝트가 있는지, 만약 없다면 환등기나 복사기 같은 것은 있는지 등등에 대해 걱정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인도네시아의 첫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서 안심이 되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방문자 숙소
인도네시아대학교(Universitas Indonesia)는 ‘데뽁(Depok)’이라는 곳에 있다. 데뽁은 서부자바에 있는 자카르타 인접 도시이다.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물론 길이 막힐 때는 예상하기 힘들다. 인도네시아에는 도로가 많지 않아 종종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대학교는 한국의 서울대학교와 같은 곳이다. 해마다 이루어지는 대학 평가를 보면 순위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인도네시아대학교는 족자카르타에 있는 가자마다대학교(Universitas Gadjah Mada)와 함께 매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입구에 도착했는데, 입구에는 열거나 닫는 문이 없었다. 단지 조그만 검문소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직원들은 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주차 카드를 주었다. 어두운 캠퍼스 사이로 가로등 불빛에 비친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상당히 넓은 캠퍼스임을 짐작케 했다.
우리는 인문대 근처에 있는 일본연구소(PBJ)로 안내되었다. 일본연구소는 일본이 투자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외부 손님들이 이곳에서 묵으면서 세미나를 할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지정해 준 숙소 문을 여니 테이블 위에는 예쁘게 생긴 용과일과 몇 가지 다른 과일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바구니에는 우리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테이프가 달려 있었다. 정성이 느껴져 감사했다. 그날 밤, 낯선 침대에 누워 다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해 보자고.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인도네시아대학교는 1997년부터 인문대학에서 교양선택 과목으로 한국어 강좌를 운영했다. 매 학기 20~50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수강했다. 그런데 교수 부족으로 인해 한국어 강좌 운영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인도네시아대학교는 자카르타 주재 한국 대사관 및 한국어 세계화 재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의 지원으로 2006년 8월에 4년제 한국학과(한국어와 한국문화 전공)를 개설했다. 한국어과 또는 한국학과는 나시오날대학교, 가자마다대학교에 이미 개설된 바 있지만 이들은 모두 3년제 과정이었다. 따라서 4년제 정규 학사과정의 한국학과 개설은 인도네시아대학교가 처음이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의 인기는 매우 좋은 편이다. 한국학과 개설이 정식 인가된 2006년에는 320명의 학생들이 한국학과에 지원했다. 그런데 다음 해부터는 천 명이 넘을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따라서 한국학과 입학 경쟁률은 평균 20~30 대 1 정도이고, 인문대학 내에서는 영어과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이처럼 높은 것은 인도네시아의 한류 열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졸업 후 취직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학과 졸업생들은 타 전공 학생들보다 취직이 용이하여 한국의 대기업을 골라가며 선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의 졸업 이수학점은 2015년 현재 144 학점이다. 이 중 전공 필수 학점은 98 학점이다. 학생들은 한국어 39 학점, 언어학 15 학점, 한국 문학 18 학점, 한국 역사와 문화 21 학점, 논문 5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한국학과 학생들은 이러한 수업을 통해 한국어 및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함양하고 있다. 한국학과 학생들이 예의가 바른 것은 이와 같은 강좌를 통해 배운 한국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교수가 나타나면 모두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이러한 광경은 한국 대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매우 흥미롭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는 인도네시아인 교수,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에서 파견된 한국인 객원교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인 교수들은 인도네시아인 교수들과 함께 한국학과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의는 물론 논문지도, 학생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면담, 한국학 관련 세미나 개최, 인도네시아인 교수들과의 화합을 위한 모임, 학교 행사 참여 등을 통해 학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졸업생들은 주로 한국 기업에 취직한다. 많은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소수의 졸업생만이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인 교수들 역시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지만 소수만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에서는 한국의 일반 대학에서 출판한 책과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발행한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종합 한국어>>를 교재로 사용했다. 나머지 과목은 인도네시아어로 출판된 교재가 별로 없어서 담당 교수들이 자체 제작한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학들은 한국과 달리 9월에 1학기를 시작해서 12월이나 1월에 종강을 한다. 2학기는 2월에 시작해서 5월이나 6월에 끝난다. 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게다가 매년 조금씩 변하는 ‘르바란’ 축제일에 의해 교육 일정에 변동이 생기기도 한다.
교육 일정 외에 한국과 다른 점은 학생 성적 평가 방식을 들 수 있다. 한국 대학에서는 대부분 상대평가를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절대평가를 하고 있다. 나는 절충적인 방식으로 평가를 했다.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단지 몇몇 학생들이 성적을 올려달라고 사정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정중히 거절하여 평가의 엄정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점수를 구걸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나는 공정함이 어느 언어보다 강한 신뢰를 준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학생들
인도네시아대학교 학생들은 대체로 명랑하고 똑똑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대부분 나의 강의에 집중했다. 학생들이 별것 아닌 이야기도 재미있게 웃어주니, 강의실은 늘 밝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내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알려 주었다. 식사할 때나 인사할 때 모두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며 왼손은 화장실 이용 시에만 사용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또 어떤 학생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서 친절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나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주저했더니 그 학생이 내 오른손을 잡고서는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으나 상대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인사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의 특징은 시간 개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업시간에 지각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학생이 면담 요청을 하고서 나보다 늦게 온 적도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반지르(홍수)’ 때문에 길이 막혀서 혹은 기차가 연착되어서 늦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지금도 약속 시간에 늦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사관학교 생도 시절 1분만 늦어도 처벌을 받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약속 장소에 미리 간다. 늦을까 봐 초조해하는 것보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시간 개념은 인도네시아인들의 낙천적인 성격과 환경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늦는 것에 꽤 관대하다. 이런 것을 보니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코리안 타임’이 있다며 놀렸다는 것이다.
언젠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인도네시아인 교수가 ‘한국 젊은이들은 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육아 및 교육 부담이 커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역시 한국 사람들은 과학적이라고 하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며 크게 웃었다. 이러한 웃음 속에서 나는, 여유롭게 사는 삶의 지혜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