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나는 공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대령으로 명예전역했다. 전역 후에는 해외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그때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서 태국의 치앙마이 대학에 파견할 객원교수를 뽑고 있었다. 나는 곧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지원자 중 두 명을 뽑았는데 내가 1순위로 뽑혔다고 했다. 치앙마이 대학에 두 명을 추천했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통 1순위자가 뽑힌다고도 했다. 그런데 2~3주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치앙마이 대학에서는 2순위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2순위자는 치앙마이 대학에서 10년 정도 한국어를 가르쳐 왔기 때문에 신설 학과에는 나보다 태국 생활 경험이 많은 사람이 더 나으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망했지만 기회는 아직 많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후 슬로바키아 대학에서 1년간 가르칠 객원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슬로바키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얼마 후 잘 아는 교수가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내가 1순위자로 선정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는 최종 선발에서 다른 사람이 뽑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난해 슬로바키아 대학에서 가르치던 교수가 1년 더 연장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럴 것이라면 애초에 공고를 낼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미 끝난 일에 마음을 쏟아봤자 속만 상할 것 같았다. 나는 담담히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무언가 될 듯하면서도 연거푸 실패하자 아내는 실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면서 포기하라고 했다. 순간 아내의 말이 야속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마음 또한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두 번 모두 실력은 인정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한 번만 더 도전해 보고 실패하면 포기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얼마 후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새로운 공고문을 게시하였다. 인도네시아대학교(UI)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칠 객원교수를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지원하였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1순위로 추천되었다. 기쁘면서도, 또다시 뜻밖의 변수가 생길까 염려되었다.
2008년 12월 중순에 인도네시아대학교 객원교수로 최종 선발되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다. 기쁘고 감사했다. 그런데 새 학기가 2월 1일에 시작하니 늦어도 2009년 1월 중순까지는 인도네시아로 가야 한다고 해서 이사 준비를 해야 했다. 시간이 빠듯해 마음이 바빴다.
우선 집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집을 전세로 내놓았다. 1주일도 안 되어 계약이 되었다. 아내는 집 근처에 학교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포장 이삿짐센터에 부탁해서 짐을 인도네시아로 보내기로 했다. 책을 먼저 싣다 보니 컨테이너에 싣지 못한 물건들이 많았다. 아쉽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하며 마음의 짐도 함께 덜어냈다. 그런데 비자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2009년 2월 19일에 출국할 수 있었다.
전역 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