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재독 작가 노은님 [내 인생의 철학자들]

내 그림의 모든 점,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의 표식


안녕하세요~ 닥터 뽀롱입니다.

저는 미술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미술을 좋아하고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즘 미술계가 호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늘어나서 전시도 많아지고, 관련 책도, 기사도 많아져서 행복합니다.


오늘은 재독작가이신 노은작가님에 대해서 [글로 쓰는 미술] 살펴보려고 합니다. 노은작가님은 김지수 작가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라는 책에서 그분의 인생과 말씀을 듣고 매우 인상 깊었던 화가님이셨습니다. 그림도 너무 생동감이 넘칩니다. 8 29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하십니다. 이전 인터뷰를 통해 노은작가님에 대해 함께 살펴보시죠.^^






“저는 원래 화가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져요. (그림을 그린 지) 50년 다 됐는데도 그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 돼가고 있어요.”



재독화가 노은님(75) 화백이 201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젊은 시절 고독과 방황 속에서 마치 큰 벌을 받는 사람처럼 지냈다”는 그는 “외로워서 괴로웠고, 괴로워서 외로웠다. 나는 그 덕에 많은 그림을 그려냈다”라고 했다.  


그런 시간이 그에게 선물을 준 것일까. 그의 그림은 ‘외로움’ 혹은 ‘괴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맑고 푸른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힘찬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작품은 대담한 선과 색으로 전하는 위로와 즐거움에 가깝다.


물고기와 새, 꽃 등의 자연물로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뤄온 노은님의 개인전 ‘생명의 시작: am Anfang’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작품부터 지난해 완성한 신작까지 총 31점을 선보이는 자리. 국내에선 2년 만에 열리는 전시인데도 반응이 심상찮다. 개막 전 작품의 절반이 ‘예약’ 됐고, 개막 3일 만에 초대형 작품 등 두 점을 제외하곤 29점이 모두 팔렸다.    



노은님은 독일에 정착한 지 50년이 넘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독일로 이주했다.
함부르크 시립 외과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던 당시 간호장이 우연히 그의 그림들을 보고 병원에서 전시를 열도록 주선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그 전시를 계기로 73년 국립 함부르크 미술대학 회화과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했고, 독일 표현주의와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거장 한스 티만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돼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6/2018072602018.html



노은님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생명’이다.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점(點)은 그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과감한 붓질로 파랑·빨강·초록 등 원색으로 그려낸 고양이와 물고기, 새와 꽃, 개미 등엔 반드시 점이 찍혀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점은 곧 눈(目)이란다. 살아있는 존재, 즉 생명의 표식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시화집  『눈으로, 마음으로』에서 “나는 모든 물체에 눈을 그려 넣는다. 나무에 눈을 달아주면 잎이 살아나고, 곤충들은 날아다니고, 물고기들은 우주를 여행한다”고 썼다. “내가 큰 대자연 앞에서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는 그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자연의 형상을 표현해왔다. “모든 복잡함이나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아 있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는 신념에서다.

   


2007년 개인전을 열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숙제를 푸는 데 그림은 나에게 도구였으며 길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태우고, 녹이고, 잊고, 들여다보았다. 살아남는다고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노은님의 놀이는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129008






노은님은 1970년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돈을 벌러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로 많이 떠났을 때 독일로 떠나셨습니다. 그때 나이 23살이었다고 하네요.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한국에선 아픈 과거로 인식된다는 어느 인터뷰 기자에 말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6/2018072602018.html



“괜한 오해는 말아요.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온 것처럼 광부와 간호사들이 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진 않았어요. 밤 근무를 하느라 힘이 들긴 했어도 다들 잘해줬습니다(웃음).

들어보면 그녀의 독일행은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희생이라기보다 신세계로의 탈출에 가까웠다. 해외개발공사 가서 서류를 내고 3개월 만에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도 ‘잘못 탔으니 내리라고 하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했답니다.”

-새로운 세계로의 엑소도스군요. 성격과 운명을 바꾸려면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갑작스러운 타지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9명이 한 병원에 배속이 됐는데, 한동안 잠을 못 자고 밤마다 뛰어다녔어요. 유럽의 여름은 백야가 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데, 우린 왜 밤이 안 오나 불안해서 헤매고 다닌 거죠. 나중에 간호장이 와서 커튼을 쳐줬을 때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낮을 밤으로 바꾸는 이런 신기한 물건이 있다니…(웃음). 같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시름을 잊었는데, 그때 부른 노래가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내 빛…’이었어요. 그런데 그 곡이 또 크리스마스 번안곡이라 한여름에 캐럴 부른다고 독일인들이 어찌나 신기해들 하던지요(웃음). 젊었으니 그렇게 저지르고 살 수 있었지요.”



그녀의 인터뷰에서는 계속 (웃음)이 나옵니다. 분명 힘들었을 시절이었을텐데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계신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노은님의 화가 데뷔는 극적입니다. 간호장이 침대 밑에 숨겨둔 스케치북을 발견했고 그것으로 병원 회의실에서 전시회가 처음으로 열렸고 그녀는 거기서 처음으로 그림을 팔았습니다. 그림값으로 받은 2000마르크가 왠지 내 돈 같지 않고 훔친 돈 같아 동생들 학비에 보태 쓰라고 한국으로 보냈다고 하시네요. 당시 한 달 월급이 400마르크인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이 전시회 뉴스가 함부르크 지역 신문 1면에 났고, 그림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동양의 조그만 나라의 파독 간호사는 3년만에 세상에 없던 그림을 그리는 동양의 화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한국에선 불가능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배우질 않았기 때문에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릴 수 있었지요. 독일에선 개성을 중요하게 봐줬거든요.”

독일에선 시험 볼 때도 개성을 중시했어요. 오히려 잘 그린 그림은 퇴짜를 놔요. 일례로 한국 미술 대학에서 석고 데생 시험 치는 걸 이곳에선 이상하게 생각하죠. “너희 나라 사람들은 왜 맨날 죽은 사람을 그렇게 아등바등 똑같이 그리느냐"고요.”


-기초 기술이 탄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죽은 걸 그리는 게 기술입니까? 한국 교수들이 배운 스승이 다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이 당시에 파리에서 그렇게 배웠거든요. 과거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똑같은 상태를 재현하는 건 예술이 아니에요. 10년 내내 책상다리를 4개로 만들면 목수지만, 어느 순간 3개를 붙이면 예술입니다. 개성이 생명이에요.



-개성을 가르칠 순 없지 않습니까? 선생은 독일 국립대학의 교수로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저는 가르치지 않았어요. 볼 기회를 많이 줬습니다. 장님으로 살다 눈을 뜨면 얼마나 볼 게 많습니까(웃음).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을 느끼게 해줬지요. 색채도 가르쳤지만 제가 가르친 건 세상에 미운 색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밉게 보인다면 그건 그 옆에 어떤 색이 모자라서죠. 흰색과 검은색조차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한 색이 있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색이 섞여 비단처럼 검은색이 되고 흰 장미 한 송이에도 온갖 색이 다 깃들어있지요. 겉으로는 안 보여요. 들여다봐야 보이지요.”




웃음 속에 뼈 때리는 촌철살인을 날리십니다. 그러네요.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죽은 사람 석상을 똑같이 그리지 못해 안달복달일까요. 저도 미술을 배우러 처음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갔더니 원기둥 석고를 주면서 선생님이 그림자의 전형적인 모습까지 알려줬습니다. 그걸 그대로 보고 따라 그리라고요...해가 어디서 비치던 그림자는 왼쪽으로 반달형으로 그리는걸 "훈련"시켰어요.;;;; 예술을 왜 기술로 가르쳤을까요...




-인생 고생이라면 어떤 부분이 그리 고통스럽던가요?


“여자 혼자 외국에서 뿌리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온종일 걸어도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는 날이 많았어요. 어린애 취급도 많이 받았어요. “내가 누구인가?” “내가 있는 땅이 어딘가?” 그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다른 사람은 남자도 있고 돈도 있는데(웃음), 나는 왜 하나도 가진 게 없나(한숨). 병원 일도 하기 싫어서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지요. 더 무시무시한 건 자고 일어나도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고 술술 그려진다는 말씀에 기자가 그럼 창작의 고통은 없으시냐고 묻습니다. 노은 작가님은 그만큼 고생을 했다며, 고생한만큼 가벼워진다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의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벌 받는 것 같던 마음을 다스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결론은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죠. 내가 벌 받고 사는 게 언젠가는 그림으로 나올 거다, 그게 작품의 힘으로 나올 거다... 지금 가볍게 그리는 건 그때 벌을 잘 받아서죠.”



-여백을 남기면 아시아의 그림, 여백을 칠하면 유럽의 그림이 된다고 하셨어요. 독일 표현주의의 색면과 동양의 선이 한 작가의 세계에 공존하는 게 저는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놀랄 거 없어요. 섞어야 그림이 되죠. 독일도 기독교 나라지만 이젠 교회는 텅텅 비고 부처 장식이 인기지요. 종교세 내는 게 아까워서 교회도 빠져요. 부처는 서양에 와 있고 예수는 동양에 가 있는 셈입니다.



-우주의 정원사로 사는 게 행복한가요?


“행복이 뭔가요?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해요.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죠. 행복은 지나가는 감정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감정이 중요한가요?


편안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사는 거죠. 눈떴는데 아직도 하루가 있으면 감사한 거예요. 어떤 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돼요.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웃음). 날씨처럼요.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






그림도 인생도 억지로 해서는 되는게 없다고 하십니다. 화장실 들어가면 행복한 것이고 못들어가는 것이 불행이다. 행복을 그렇게 거창하게 볼 필요도, 억지로 잡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쉬운게 "놓는 것"이라는 이 노작가의 말씀이, 부드러워져야 술술 풀린다는 말씀이. 온 몸에 힘을 주고 살아서 근육이 뭉쳐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림의 색감이 참 화려한 듯 밝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요. 독일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하네요. 가나아트센터에서 8월 29일까지 전시회가 합니다.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네요ㅜㅜ


https://www.ganaart.com/exhibition/eun-nim-ro/




-만약 20대 때 독일인 간호장이 선생의 그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하하하. 그 사건과 크게 연관 짓지 않아요.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처럼 살라고 태어난 사람이에요. 요셉 보이스가 그랬어요. 아이들을 위해 감자를 깎으면서 내가 지금 하는 게 조각이 아니고 뭐냐고요(웃음).”





아이들을 위해 감자를 깎는 것도 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맑은 날이 밝았습니다. 공기도 선선하네요.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예쁜 아이와 눈 마주칠 수 있고 얼굴 비빌 수 있음에 감사하며 힘 빼고 부드럽게 오늘 하루도 살아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조선일보




작가의 이전글 스포츠 엘리트주의와 아마추어리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