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력을 키워주는 글쓰기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vs 글을 쓰면 생각이 난다.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둘 다 맞다는 이야기이겠지요 ㅎㅎ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어떤 화두가 있고, 화두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라도 있을 때 글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서는 그 화두를 끄집어내는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와 독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유지요.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써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써봐야 알 수 있다"입니다.
발견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해서, 저조차도 글을 쓰는 도중에 비로소 이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장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만들어 보고 있을 때는 아직도 매우 혼돈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구체적인 문장을 여러 가지 조합하다 보면 불현듯, “아, 그렇지!” 하고 생각되는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중
치과치료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엑스레이를 뚫어지게 보고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치료를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보입니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어디까지 해결을 해주어야 할지. 그래서 임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흔히 우리는 무언가를 알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여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란 "내가 아는 것"을 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도 글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똑똑해서 내가 아는 것은 남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조금만 검색해서 나오는 AI는 다 압니다. ㅎㅎ
글이란 내가 여러 자료를 보고 몰랐는데 "알게 된 것",
여러 자료가 겹쳐져서 "깨닫게 된 것"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내가 뭘 아는지, 뭘 알고 싶어 하는지 말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내면을 향해 잠수해가는 행위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어디까지 든 한없이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개별성이나 개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이상까지 뚫고 나가버립니다. 그는 '광맥'이라고도 하고 '어둠'이라고도 합니다. '우물'이나 '지하실' 같은 비유를 사용할 때도 있지요. 자기 내면으로 깊숙이 내려가면 고유성의 존재 따위는 꿀꺽 삼켜집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중
가끔 예전 글을 보다 보면 내가 이런 글을 썼단 말이야? 싶은 글들이 있습니다. 하루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 어떤 나의 깊숙한 내면 속 광맥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희열은 말해 무엇할까요.^^
전 일기는 아무리 오래 써도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안 쓰는 것보다는 낫겠지만요.
독자가 있어야 글이 정돈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사고력에 압박을 가합니다. 남에게 나의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부담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말이 되는지, 논리적인지 따지게 되고 사고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모든 글에 독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내가 가진 어떤 역량보다도 든든하다고 말입니다. 대부분 노후 대비를 위해 상가를 사거나 자본이 많으면 꼬마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을 알아보시지요. 그런데 수익형 부동산은 복잡합니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요. 세입자도 그렇고 관리도 그렇고 세금도 그렇고
또 받는 수익에 비례해 내야 할 건보료 등도 올라갑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계속되고 글쓰기가 나의 역량이 되면 어느 수익형 부동산 못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아직 글쓰기 수익은 미미합니다만, 노동소득에 비하면 훨씬 즐겁고, 훨씬 덜 힘듭니다.
그리고 일이 일을 물어옵니다. 내가 쓴 글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내가 쓴 글이 중개자가 되어 나를 소개하러 다닙니다. ㅎ
사고력도 성장시키고, 돈도 벌어주는 글쓰기.
함께 해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