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한 것

일상 에세이

오늘 전세준 집 전세 재계약을 위해 다녀왔다.

세입자분들은 2년 사시면서 한 번도 무언가를 위해

연락하신 적이 없었고,


전세 재갱신을 요청할 때도 당연한 권리임에도

어려운 부탁을 하시듯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셨다.


​오늘 만나서도 집은 살기 어떠시냐는 내 말에

집 아주 좋다고. 좋은 덕담이 오간다.


​부동산 사장님은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한 번 전세 갱신을 했으니 이후는 불가하다는 특약조항을

넣어주신다.


​그리고 수고비는 얼마 드릴까 묻는 질문에

그냥 서비스로 해드리겠다며 괜찮다 하신다.

요즘 매매, 전세 얼음으로 쉽지 않으실 텐데

봉투에 넣어간 돈을 그래도 수고비로 드리고 나온다.





이상한 일이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살 때는

목소리를 높일 일이 많았다.


​목소리를 높여도 되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힘도 쓰고 돈도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나는 본 투 비 호구 라며 그냥 호구 비용을 책정하자.

하며 살았더니 오히려 주변인들이 날 챙겨준다.


호구 비용이 되려 나갈 일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살수록 삶이란 1+1=2 이 아님을 느낀다.

거대한 에너지가 삶에 도는 것을 느낀다.

​애담 그랜트가 표현하는 거창한 taker, matcher, giver의

공식에는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살면서 안 주려 애쓰지 말자. 생각한다.

어딘가에 베푼 공덕은 손해 본 것 같아도

돌고 돌아 언젠가는 돌아온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끼친 해는 요령껏 잘 피한 것 같아도

돌고 돌아 언젠가는 역시 돌아온다.


​삶이란 그렇게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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