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에겐 아이의 약점만 보일까.

6학년 아이가 엄마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옵니다. 아이는 무표정입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이고요. 진료기록을 보니 6년 전에도 한번 온 적 있었습니다. 그때의 주소(Chief complain ; 병원에 방문한 이유)도 "얼굴 비대칭"이고, 오늘의 주소도 "얼굴 비대칭"입니다.


아이의 얼굴을 봅니다. 비대칭?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봅니다. 점점 한쪽 얼굴이 더 커지고 부푸는 것 같고 턱이 비뚤게 자라는 것 같다고 합니다. 혹시나 어릴 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놓칠까 봐 걱정이 된다 합니다. 다시 아이를 봅니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보니 약간 왼쪽의 얼굴이 조금 더 올라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치아의 비대칭이 심한가 싶어, 아이를 눕히고 입안을 봅니다. 아이의 치아배열은 좋고, 중앙선도 거의 딱 맞습니다. 아이를 다시 한번 보고 아이는 대기실로 내보냅니다.


어머님과 상담을 시작합니다. 혹시 가족 중에 비대칭 가족력이 있는지를 여쭤봅니다. 어머님께서 조심스레 말을 꺼내십니다. 본인이 비대칭이 있어서 스트레스라고 하십니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커서 보니 도드라져서 아이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아이는 예쁜 얼굴을 가졌습니다. 얼굴 크기도 작고 키도 큽니다. 그런데 도드라지지 않는 약간의 비대칭만 엄마 눈에는 보입니다. 사실 이 아이 어머님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가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잘 발견합니다. 이는 우리 인류의 진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고릴라 실험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는 인지 심리학자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와 사이먼스(Daniel Simons)에 의해 진행된 유명한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각각 팀을 이뤄 농구를 하는 동영상을 보며,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공을 몇 번이나 패스하는지 세도록 지시받습니다. 그리고 동영상 중간에는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등장하여 카메라를 보고 가슴을 친 후 사라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험 참가자의 절반 정도는 고릴라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로 알려진 이 현상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배제한 채 특정한 대상에만 선택적으로(또는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공의 패스를 보느라 커다란 고릴라가 지나가는 것도 놓칠 정도로 사람들의 뇌는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적 주의 집중은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우리의 뇌가 살아남기 위해 발전시킨 현명한 진화적 특성입니다. 생존이 중요한 시대에는 생존에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다른 자극에 대해 뇌가 쓰는 에너지를 줄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인류가 살아남는데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 능력의 한계도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뇌의 이러한 여과시스템은 분명히 효율적이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중요한 정보를 자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얼굴도 작고 예쁩니다. 치아도 가지런합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선택적 주의집중은 “비대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비대칭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정보를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도가 왜곡되고 맙니다. 저는 결혼하고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난임클리닉을 다녔죠. 그 당시 제 눈에는 임신한 여성만 보였습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도 다 임신한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 년도에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했던 것일까요? 제가 늘 임신만 생각했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은 10배쯤 제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아이의 작은 비대칭이 어머님께는 크게 다가왔던 것처럼요.


그럼 이런 선택적 주의집중 현상은 우리의 진화과정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이니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문제 해결의 가장 기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문제 해결의 기본은 “인지”입니다.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문제가 반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선택적 주의집중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점은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집중을 하고 있어서 다른 정보를 간과하고 있구나만 인지해도 상당한 진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이의 약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이의 ‘약점’에 집중하느라
이 약점이 실제로 끼치는 영향보다 훨씬 크게 느끼고 있다고
아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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