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좋은 코치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코치공학자, 이한주 코치님의 수업을 들었다. 코칭 수업 처음에 나의 인간관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다. 인간관이라니.. 무슨 이런 거창한 것까지... 코칭이 철학도 아니고.. 필요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코치님의 인간관을 듣고는 수업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인간관이란 내가 인간, 즉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시선이다.


코칭의 프로토콜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좀 더 더 수월한 코칭을 하기 위해 우리는 수업을 듣고, 배우고, 외우고, 시험을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탁월하고 훌륭한 코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탁월성"은 이미 고객 안에 있고
그 "탁월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월성"을 위해 코치는 더 연마하는 것이다.

- 김종명 코치님



그러려면 고객은 이미 "탁월하다는 것", 이미 사람은 온전하고 이미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믿고 있어야 한다. 코칭의 질문이란 때때로 반사적으로 나온다. 대부분의 대화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기본적인 인간관이 없다면, 사람은 그 자체로 훌륭하고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다고 온전하게 믿지 않으면 그 생각은 질문 또는 반응이 되어 반사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병을 고치는 일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훌륭한 의사는 꼭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손이 매우 좋아 수술을 잘하던지, 머리가 매우 좋아 진단을 잘하면 된다. 꼭 삶의 철학과 의사의 철학이 일치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일치한다면야 훌륭함을 넘어 더 좋은 의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코치가 되려면, 적어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려는 코치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는 좋은 코치가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배운 코치는 질문, 인정, 경청 등을 통해 고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동행하는 사람이다. 끄는 사람도 아니고 미는 사람도 아니다. 고객이 스스로 답을 찾게끔 질문 등을 통해 옆에서 머무를 뿐이다. 그 동행하는 과정 중에서 즉각적이고 개별적으로 반응을 하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가 평소에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평소 사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바로 코치의 이런 반응을 통해 드러난다.


어쩌면 잘 듣고 공감을 잘하는 편이니 코치로서 좋은 역량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영역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코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직업 하나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코치의 삶은 나의 삶과 동떨어져서 이어질 수가 없다. 나의 삶이 곧 코치로서의 삶이고, 나의 철학이 곧 코치로서의 철학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관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과연 나는 좋은 코치가 될 수 있을까. 배우면 배울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연스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