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상 에세이] 소중한 쓰레기

휴직을 맞아 집구석구석을 들추어 정리를 하고 있다. 이 집에 산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 쓰레기가 한가득이다. 신발장을 정리하다 여러 번 감싼 물건을 발견한다. 꽤나 소중하다 생각했을까. 신문지로 한 겹, 그 위에 뽁뽁이로 한 번 더, 방수용 봉지에 들어있다. 뭔가 싶어 한참을 풀어헤친다. 열어보고 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오래전에 고장이 나서 버린 로봇청소기의 부속품이다. 

미국에 있을 때 로봇청소기를 샀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는데 한국보다 싸니 여기서 사가야 이득이랬다. 안사면 0인데, 사고 꼭 이득을 따진다. 당시 꽤 비싸게 주고 샀다. 부속품이 여분으로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걸 이리도 꽁꽁 싸매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녔던 것이다. 이미 본체는 고장 나 사라져 버렸음에도 말이다.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에너지의 화신들답게 싸움도 화끈하게 하셨다. 너무 싫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조용하고 우아한 집이고 싶었다. 부모님이 사이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마치 나는 싸움 따위는 몰라요. 하고 다녔다. 그러니 갈등이 두려웠다. 관계에서는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생길 수 있는 것을 외면했다. 연애를 하다가도 갈등이 생길라 치면 헤어져버렸다. 싸우지 않을 남자를 골라 결혼했는데, 그와 싸움을 하자 절망했다. 이 결혼은 실패라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그렇게 이중삼중으로 꽁꽁 싸맸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본체는 사라져 버려 아무 의미도 없게 된 부속품처럼 꽁꽁 싸맸던 어린 시절도 꺼내보니 이미 힘을 잃었다. 에너지 넘치게 싸우던 부모님은 나이가 드셨고, 여전히 티격태격하시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사신다. 여전히 열심히 싸우지만 우리 부부는 성숙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다. 아픈 상처라 꺼내면 곪아 터져 버릴까 건들지 못했던 그것은 이미 말랑했다. 말랑해진 그것을 나만 몰랐다. 더 이상 청소기의 핵심 부속품이 아니듯 그 기억은 더 이상 내게 아무런 힘이 없었다.


청소기 부속품에게 인사를 고한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넣어준다. 인사를 건넨다. 그동안 끌려 다니느라 고생했어. 이제는 떠날 때야.



“사실 인간 자체가 설거짓거리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의 육체는 땀과 침과 피지를 분비하고, 각질과 군살을 만들어냅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타성, 나쁜 습관, 부질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설거지 없이 깔끔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에서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인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고대 중국의 탕 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져 있던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본뜻은 일단 잘 씻으라는 것, 즉 스스로의 설거지에 게으르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잘 씻고 살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설거짓거리로 전략하게 될 테니까.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
작가의 이전글 [일상 에세이] 아들의 첫 등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