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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에세이] 아이를 좋아하시나요.

완벽함에 대한 환상

소아치과 레지던트 면접을 보다 보면 면접자들이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 아이들이 너무 좋아요. 어릴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그러면 삐딱한 내가 또 올라온다. “정말 좋았을까?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이유다. 나는 집안의 첫째였다. 첫째 딸의 첫째로 태어나 사촌들 중 첫째였다. 이씨 자매들은 만나면 싸우면서도 자주 만났다. 사촌들은 사촌인 듯, 형제자매인 듯 어울려 지냈다. 사촌들이 모이면 동생들을 챙기는 것은 내 남동생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별 관심이 없었다. 약간 성가시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학생 때도 그랬다. 사실 소아치과에 잘 가지도 않았다.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무서웠고 아이들은 시끄러웠다. 얼떨결에 소아치과에 지원하고는 소아에 관심이 없는 것을 들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소아”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소아치과학”이라는 곳에서 어떤 공부를 할 수 있을지 학문적 영역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너무 좋다는 면접자들이 말이 신기하기도 믿기 어렵기도 하고 그렇다. 


소아에 관심 없던 난 15년째 그럭저럭 괜찮은 소아치과의사로 살고 있다. 도중에 그만두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지금은 공공연히 소아치과를 했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치과를 떠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도 아이들에 대해 환상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에게 아이들이란 그저 시끄럽고 우는, 성가신 아이들일 뿐이었는데 아이들을 보다 보니 어른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잖아. 싶으면서 더 알고 싶고, 더 잘 대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초반에 힘들었던 이유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가득해서였다. 육아를 할 때도 나는 자주 나에게 화가 났다. 아이에 대한 환상은 없어도 완벽한 엄마에 대한 환상은 가득했기 때문이다. 모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 엄마라면 모든 것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환상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데 필요하지만 때로는 환상이 현상을 보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부모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부모가 된다.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든 완벽한 부모가 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사랑으로 노력하는 부모’인데 나는 그 사랑이 어지간하면 자녀에게 가 닿는다고 믿는다.

나아가 인간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퍽 안심이 된다. 영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오지혜 작가님 말이다. 양육과정의 트라우마를 살펴보는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과거 부모의 행동이, 말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속풀이를 하기도, 울음을 펑펑 쏟기도 한다. 억지로 양치를 시키다가, 혹은 양치를 시키지 않다가 아이를 망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한다. 

물론 맞다. 아이들의 세상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게 또 다는 아니다. 부모도 미성숙하고 아이들도 미성숙하지만 그 모든 행동과 태도가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모든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가 어제와 달리 오늘 좀 오락가락했어도, 내가 오늘 좀 짜증스러웠다 해서 아이가 바로 나빠지지는 않는다. 부모의 역할을 너무 과소평가해도 문제지만 과대평가해도 그 환상이 현상을 가린다. 아이들은 그럭저럭 잘 자란다.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자체적인 잠재력 말이다. 


아이와 나의 비밀이 있다. 아빠가 늦게 오는 날은 가끔 양치질을 빼먹는다. 무려 엄마가 치과의사인데 말이다. 남편은 본인이 치아가 약하다 보니 나보다 더 양치질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아빠가 늦게 오는 날은 가끔 치팅데이가 있다. 어디 가서 말하기 민망하긴 하다. 양치질을 강조하는 사람이 집에서는 치팅데이 유발자라니. 물론 아이들에게는 루틴이 중요하다. 루틴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요소다. 루틴 안에서 자기 효능감과 절제감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모든 것을 똑같이 반드시 할 수는 없다. 기계가 아니고 우리는 사람이니깐. 양치질을 억지로 시킨다 해도, 양치질을 빼먹는다고 해도 아이는 잘 자란다. 


완벽한 부모가 있을까. 완벽하다고 꼭 좋을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아이가 판단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적어도 나는 완벽한 엄마의 환상은 가지고 싶지 않다. 환상 속에서 지금 아이의 현상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우리나라 경마 역사상 최초로 2000승을 달성한 박태종 기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털어놓길, 경마는 마칠기삼이나 다름없단다. 제 아무리 노련한 기수라도 성패는 말의 기량과 컨디션에 좌우된다는 얘기다. 말은 아니지만 우리 육아도 그렇지 않을까. 아칠기삼. 아이 자체가 칠 아닐까. 그리고 인생은 경마가 아니다. 어디 성공점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닌데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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