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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에세이] 카레 속 당근


[카레 속 당근]


카레를 싫어한다. 병원 메뉴로 카레가 나오면 그날은 구내식당을 가지 않는다. 어릴 때도 엄마가 저녁 메뉴로 카레를 끓이면 싫었다. 그런데 일식 카레나 인도식 카레는 가끔 즐겁게 먹는다. 왜 이 카레들은 싫지 않지? 카레를 싫어하는 것이 맞나?


구내식당의 카레를 퍼다 생각한다. 무의식이 향하는 국자질이 당근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음을. 아하. 나는 카레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한 것은 카레 물에 퐁당 빠진 그 삶은 당근이었다.  


이제는 내가 집안의 요리를 한다. 굳이 카레에 당근을 넣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나도 싫어하고 같이 사는 남자도 싫어하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애도 싫어한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굳이 반드시 당근을 썰어서 카레 물에 퐁당퐁당 빠뜨려 푹 익힌다. 

싫지만 익숙함을 버리지 못하는 관성. 당근이 빠진 카레란 앙꼬 빠진 찐빵이 아닐까. 하는 마음. 

큰 다짐을 해본다. 늘 국자에게 조리돌림 당하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당근에게도 못할 짓이야. 당근을 빼보자. 당근을 빼고 카레를 끓이는 것이야. 


마크 A 호킨스는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화가 나면 모든 사람과 사물에서 짜증 나는 구석이 보인다. 한밤중에 공포를 느끼면 모든 잡음과 낯선 물체가 위험하게 느껴진다. 지루할 때도 비슷하다. 지루하면 우리 인생 속 몇 가지 것들에 내재한 무의미함이 드러난다.”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곳곳에 당근을 안고 산다. 

지루해보니 알겠다. 내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꾸역꾸역 담고 있는 가치관, 성취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왜 담고 있는 것일까. 남들이 좋아 보인다니까, 으레 그래야 하니까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못 시키면서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꾸역꾸역 담고 있는 가치관, 성취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런 당근이 너무 많아지면 본질인 카레마저 싫어지고 만다. 남의 것을 꾸역꾸역 담다 보면 그것을 담은 나 자신이 싫어진다. 


카레에 당근을 빼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 지구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내 인생 속 몇 가지 내재한 당근들을 빼본다. 


당근을 빼자 카레 맛이 더 온전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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