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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에세이] 잠자리 테 안경

아이가 눈을 찡그린다. 

야구 전광판의 글을 읽지 못한다. 올 것이 왔구나. 당황함을 숨기고 안과를 가야겠네.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아니,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눈이 많이 나빠졌다. 안경을 쓰던가 드림렌즈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동공을 확장시켜 정밀검사를 한 후 시력을 재자고 한다. 예약을 잡고 돌아서는 마음이 착잡하다.


아이와 관련된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나는 그 시절의 어린 내가 함께 떠오른다. 

나는 7살이었다. 아이보다 더 일찍이었다. 근시였고,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보았지만 눈은 계속 나빠졌다. 학교 입학을 앞두고 빨간색 잠자리 테 안경을 쓰게 되었다. 엄마는 너무 속상해하셨다.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니 내가 죄를 진 것 같았다. 눈치가 보였다. 안경이 불편했지만 불편하다는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번에는 7살 내면 아이만 나온 것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엄마가 같이 보인다. 내가 다가가는 쪽은 7살 내면 아이가 아니라 젊은 시절의 엄마다. 오랜 세월 난 엄마가 늘 자신의 속상함 때문에 나를 더 압박한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 직접 처한 자식보다 본인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모르겠다. 그랬을 수도 있다. 



오늘 떠오른 엄마는 걱정이었다. 



안경을 껴보았기 때문에 겪었을 숱한 불편감, 그 불편감을 보다 더 일찍 겪어야 하는 아이에 대한 짠함, 그리고 근시란 나빠질 일 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이 뒤섞인 마음이 느껴졌다. 덧붙여 눈 나쁜 유전자를 물려주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까지 말이다. 


신기했다. 내면 아이가 아니라 젊은 엄마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아이는 안경과 함께 잘 살아갑니다. 30년 이상을 잘 살고 있어요. 젊은 시절에는 렌즈도 예쁘게 잘 끼고 다녔고요, 지금은 지가 내키는 대로 렌즈도 꼈다 안경도 꼈다 잘하고 지낸답니다. 똑똑해 보이는 효과는 덤이에요. 그렇게 살다가 백내장 수술을 빙자한 노안수술을 받으면서 안경을 뺄 수도 있겠지요. 의료기술은 빨리도 발전하니깐요.


내가 지금 듣고 싶은 위로일까. 아니면 나만 피해자였다는 시선에서 주변까지 볼 수 있게 된 걸까. 이제야 비로소 나를 둘러싼 모두가 가해자였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내 삶을 아우른 주변 사람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를 본다. 짠하다. 근시 유전자를 물려준 일말의 죄책감도 든다. 그러다 뭐 어쩌겠어 싶다. 건치를 물려주었으니 약한 눈을 줄 수도 있지. 유전자 조작 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니 좀 가벼워진다. 아이와 안경 색깔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렌즈는 어떨까 떠들어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좀 출출해진다.


“우리 불고기 버거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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