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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 인류를 구원한다.

장애인 날을 전후로 시행된 전장연이라는 단체의 시위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이전부터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이동권 수준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관심과 예산 확보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소 저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조차 이번 시위에 대해서는 얼굴을 찌푸리시더라고요. 단정적으로 비난하거나 거친 말을 쏟아내지는 않지만 이렇게까지 굳이.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분들께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권 수준이 얼마나 떨어져 있음을, 결국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따뜻한 시선임을 설파하고 다녔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촌 형을 만나고 온 아이가 그럽니다. 형아가 그러는데 4학년부터는 전투를 준비해야 한대. 여자아이들과 전투.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묻는 제게 아이는 형아의 설명을 해줍니다. 선생님들은 항상 여자아이들 편이니까 남자아이들끼리 똘똘 뭉쳐서 물리쳐야 한다고 말입니다.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정부의 당대표를 싫어합니다. 새로운 정부가 모든 연령층과 성별을 품고 나가려면  분과 함께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내뱉는 발언, 생각 모두가 위험합니다. 그런데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시선은 그도 싫지만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도 싫다고 합니다. 오히려 10 전보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환경에 살고 있는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은 매우 이성적인 동물인 것 같지만, 매우 감성적인 동물입니다. 옳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말을 듣습니다.

그 좋아하는 사람이 옳은 말을 했을 때 가장 잘 듣습니다.



가장 마음이 닫힐 때가 어떤 때인지 아실까요? 나를 나쁘다 했을 때입니다. 지금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모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남자들 중에는 분명 많습니다. 새로운 교육과 가정환경에서 남녀 모두 동등하고, 아내와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여자들 중에서도 앞서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조리함을 알고,  억울함을 알기에 힘을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모두  싸잡아 비난해버리면 더더욱 여성이  자리가 줄어듭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입니다.


혹자는 그럽니다. 사회적 약자가 그런 것까지 배려해야 하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억울한 일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약자입니다. 슬프게도 그래요. 사람들의 선의를, 옳은 마음을 이끌어내려면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지칭해서는 안됩니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목을 발로 밟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전장연 시위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지하철에 갇혀서 장애인 분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불편하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죠. 이런 감정은 항상 외면하고 싶은 거부감이 듭니다. 내가 가해자 같고, 볼모가 된 기분이니깐요. 이런 감정에서 누군가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여러 뒷말을 듣고 육아휴직을 냈습니다. 아직도 육아휴직을 받은 것이 이런 일인가 하는 억울함이 들었습니다. 따지고 싶은 마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휴직을 알차게 보내고, 돌아가서도 병원에 기여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 대한 배려는 조직의 성과를 결정하는 인재 확보의 결정적인 길이라고 말입니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다정함이라고 했습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혐오를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됩니다. 혐오를 막는 방법은 또 다른 혐오가 아닙니다. 혐오는 다정함으로 풀어야 합니다.


주변을   둘러봐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혹시 밟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발을 치워주세요. 그리고 사과해주세요. 그리고  사과를 받아주세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방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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