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공개수업이 있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교실에서 촬영을 줌으로 내보내고 부모님들은 조용히 입장해서 보고 나가는 형태였다. 아이들은 즐겁게 지냈고, 수업도 활기차 보였다.
그런데 내내 나는 이런 “교수법”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30여 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30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나의 1학년 시절과 아이의 1학년 수업 형태는 너무 닮아있었다. 교실 배치도, 책상의 형태도, 수업방식도.
30여 년 동안 세상은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학교는 왜 그대로일까.
혁신의 기본은 뭘까. 사람이다. 시스템이 중요하지만 그 시스템의 의견을 내고 정착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다 혁신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교육의 변화가 없는 것일까. 개인의 개별적 역량의 차이도 있지만 요즘 느끼는 생각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이다.
오늘 핀란드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핀란드가 또다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로 뽑혔다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교육을 들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선생님 직업은 가장 존경받고 대우도 좋은 직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선생님들의 급여가 정확히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말도 못 한다. 교육자가 돈을 밝힌다는 시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동기부여시키는 것 중 하나는 돈, 경제적 가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받은 만큼 일하려고 하는 것이 또 사람이다.
돈이 아니면 존경심이다. 예전 선생님들은 넉넉지는 않아도 권위가 있었다. 말과 행동의 권위 말이다. 이것이 체벌이나 권력이라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말이 얼마나 받아들여지느냐의 여부다. 글사세 모임에서 한 작가님을 보면 세상 편하게 수업하시는 것 같다. 그러니 더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더 활기차게 수업이 된다. 왜. 모두가 한 작가님을 좋아하니까. 그가 재채기만 해도 좋아하니 더 자신감 있고 도전하고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학기 초 상담 전화에서도, 공개수업에서도 선생님의 긴장이 느껴질 수 있었다. 나의 어떤 모습이, 어떤 말투가 평가당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사람은 긴장감만 있는 상태에서는 혁신을 할 수가 없다. 도전을 할 수가 없다. 매번 평가되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도전을 할 것이며, 혁신을 할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방과 후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문자이다. 요즘은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아마도 방과 후 선생님에 대한 이 강의 평가가 다음 학기의 개강 여부를 결정하겠지.
마음이 무겁다. 평가는 물론 필요하다. 피드백 없이는 발전이 없다. 하지만 평가가, 피드백이 도전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