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잡문집
민이네 집
나는 기억이 없는데 아버지가 하도 얘기해서 내 기억인 것 같이 박혀버린 사진이 하나 있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의 첫 둥지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이사를 하며 그곳을 뜨기 전까지 약 10년간 아버지는 필름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곳을 떠난 이후부터 찍지 않은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내가 머리가 크면서 차츰 외모에 관심을 가져 사진 찍는 것을 피하게 되었고,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면 안 되겠다는 당신의 우려가 손에서 카메라를 놓게 했다고 했다.
고향 집에 내려갈 때마다 그때 그 마을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 보곤 했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바다 냄새가 나는 듯했다. 내가 언제 어디서 찍은 거냐고 물으면 당신은 언제 어디서 찍은 것이라고 곧장 대답해주었다. 어떻게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고 되물으면 당신은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 "기억 못 하면 바보지."하고 답했다.나는 작년 이맘때 내가 어디서 뭘 먹었고 누구랑 놀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당신은 10년도 더 지난 날들의 장면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진에 취미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50년째 등산과 분재 외에 취미다운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카메라로 찍었는지, 어떤 렌즈를 썼는지, 어떤 필름을 사용했는지 물어봐도 전혀 모르겠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찍은 건지는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그런 건 몰라?" 내가 묻자, 아버지는 웃으며 답했다. "그걸 알면 천재지."
아버지에게 카메라는 도구였을 따름이었다. 실제로 당신은 몇 백 통의 필름을 소비하면서 단 한 번도 촬영에 트라이포드나 플래시와 같은 보조도구를 활용하지 않았다. 구도나 빛 따위의 미학적 요소에도 관심이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자식의 예쁨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아서 셔터를 누른 것이다.
본질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젊은 부모였던 당신이 피붙이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 셔터를 연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사진이 아니라 사랑이 취미인 사람이었다.
“이 사진은 어떤 의도로 찍은거야?” 내가 물었다. 힘들었던 시절을 사진을 찍으며 이겨내었다는, 뭐 그런 분명하고 시시한 의미부여를 바랐던 걸까. 질문해놓고 아차, 싶었다. 아버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냥 좋아서 찍은거야, 좋아서.”
그는 사진에 의미를 담지 않았다. 그저 사랑으로 찍으면, 의미는 보는 사람이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관건은 그 풍경과 나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었지, 왜 찍었고 이 사진을 통해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가 아니었다. 그에게 의미는 나중에 말로 붙이는 것에 불과했다.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본다. 내가 모르는 추억에 잠긴 듯 보였다. 이 사진들에 의미가 이다면 그것은 당신이 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받는 것이었을까. 사진은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찍는 사람의 추억이라던데, 아마 그런 것일까. 그 속에는 온통 어린 내가 찍혀 있었지만, 그것의 다른 이름은 당신의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끝>
* 이 글은 문장과 장면들 출판사의 『이달의 장르 vol.01 아버지』에 투고해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