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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Jan 17. 2020

준최선의 롱런

홈런보다는 롱런이다


최선보단 준최선

홈런보단 롱런

오래 다니려면  

완급조절 필수




날 볼 때마다 "넌 왜 시키는 일만 하는 거야?"라고 잔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1명 밖에 없음) 맘 속으론 '선배는 뭘하고 있는데요?'라고 외치고 있지만 입에서는"그러게요"라고 자조만 하고 있다. 채찍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 선배는 후배들에게 좀 더 저돌적으로 달리라고 한다. 그 선배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를 보면 앞으로 그가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할지 우려스럽다.


나도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었다. 바이어와 영업계약만 맺었을 뿐인데, 우리 제품에 대한 마케팅계획까지 다 세워서 가져가 PT를 했다. 바이어는 PT내내 흥미로워했다. 영업계약서 도장을 찍고 추가협의를 하는 틈틈이 우리 제품을 현지에서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게 좋은지 맞춤형 제안서를 내밀었다. 바이어는 환하게 웃었다. 몇개월 뒤, 현지에서 출시가 진행됐고 내 의견과 반대로 판촉이 진행됐다. 여기까진 오케이. 의사결정은 현지 판매자가 하는 거니까. 나를 좌절시킨 건 우리 팀장이었다. 최종 보고서를 보던 팀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쓸데없는 걸 했어."


몇몇 사건을 계기로 나서서 하기보다(소위 '나댄다'고 하죠) 주어진 범위 내에서 할일을 했다. 조직에서 내 위치를 살피고 역할에 걸맞게 일을 했다. 사실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제안을 하고 싶은게 산더미였지만 참았다. 틈틈이 업무메모만 해놓으며 정말 필요할 때만 목소리를 냈다. 이런 식으로 일상을 보내는데,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 일을 할때마다 느끼던 '만성 부담증'이 사라진 거다. 회사 오는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조직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캐치하고 거기에 충실하니 컨디션 조절도 잘되고 되려 성과도 났다.


저돌적으로 일하라고 외치는 선배는 시종일관 표정이 안좋았다. 자신은 나서서 열심히 하며 Boss에게 어필하는데 Boss는 녹록지 않다. 후배들은 생각보다 자기 생각만큼 따라와주지 않는다. 회사 오는게 답답하고 지옥같다. 저돌적인 일하기의 장점은 다른 사람보다 눈에 띄고 성과를 창출해나가는 모습에 환기를 주지만, 금방 지친다. 회사에 저런 사람만 있다면 어떨까? 조직은 굉장히 불안정 할거다. 주어진 업무를 깔끔하게 해내는 사람이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칼퇴를 하고 서점에 들리니, 신간 중에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2016년 등단한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저자가 밝히진 않았지만 준최선의 준은 準(준할준)인 듯 보였다. 최선에 준하는 정도의 삶의 태도를 가지면 롱런 할 수 있다는 메시지.       


표지 귀엽다
문보영 시인, 예쁘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문보영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산문집 안에는 시인의 '준최선'의 삶이 담겨있다.


상어형 인간인 내가 숨쉬는 방법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한눈을 파는 것, 그리고 내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내 삶의 주도권이 문학에만, 시에 있을 때, 내 삶은 위태로웠다. 시가 떠나면 내 삶도 함께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터 인가, 무너졌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시가 아닌 다른 존재에도 분배하기 시작했다. 음악에, 그림에, 친구에, 춤에, 영상에, 일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아웃 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보기. 준최선으로 비벼보기. 멀리 봤을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최선은 관성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관성이나 습관이 될수 없지만, 준최선은 관성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준최선이 근육에 배면 어떤일을 해도 디폴트 값으로 준최선을 다 하기 때문이다. 최선과 한집에 살면 삶이 고달파지므로, 옆집이나 이웃 정도로 거리 유지를 하고 달걀 꿀 때만 최선이네 집에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p.33-34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좋다"는 말이 와 닿는다. 가성비라는 단어를 보니 드라마 미생의 박과장(김희원 분)이 생각난다. 철강팀의 에이스이자 원 인터의 히어로였던 박과장은 대리시절 큰 성과를 낸다. 회사 영업이익에 막대한 기여를 했지만 정작 돌아온 건 법인카드로 지불된 회식비 정도. 박과장은 억울하다.


"재미없네. 돈은 니들이 다~ 처먹고. 난 월급만 받으면 땡이냐?". 박과장은 자신이 최선을 다한 만큼 대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유령회사를 지어 회사돈을 횡령하다 결국 동료들에게 덜미를 잡혀 철창신세를 진다.  안 그런 직장인이 대부분이지만, 과하게 최선을 다하다보면 번아웃이 되고 도덕성에 시험을 받기도 한다.  


회사를 '자아실현' 수단이 아닌 생업을 위한 기초수단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은 박과장 처럼 살지 않는다. 업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회사 밖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는다. (나는 책을 보고, 북큐레이션을 하고, 필라테스를 한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가 망하고 무너져도 자아는 무너지지 않는다. 회사가 전부인 사람들은 회사가 등을 돌리면 인생이 무너진다.  

 

燃えたよ…燃え尽きた…真っ白によ…
불태웠어… 모두 새하얗게…


명작만화 내일의 죠에서 주인공 죠가 카를로스 리베라와 명승부를 마친 뒤 이렇게 되뇌인다. 경기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의 죠. 한동안 죠가 탈진해서 사망했다는 설이 돌았다. 작가는 죠가 죽지 않았다고 밝히며 루머를 일축했지만, 그 후에 보여지는 장면을 보아하니 확실히 선수로써의 생명은 끝난 걸로 보였다.


옆에 있는 직원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들의 기준이 너무 높지 않은지, 열심히 했을 때 받아 줄 수있는 조직인지 돌아봤으면 한다. 일 안하려고 회사 오는 사람은 없다. 각자 위치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으며, 오래 견딜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을 조정하고 있으니까.


동료가 탈진해서 회사에 못나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가겠는가? 고스란히 주변 사람들에게 간다. 옆사람이 제시간에 출근해서 1인분을 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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