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모든 걱정을 녹여버리는 남편
짝궁의 조건은
나를 깊게 사랑해주고,
표현을 위트있게 하는 사람.
브런치 구독자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나트랑 여행 이후에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브런치는 네** 블로그와 달라 여행후기와 어울리진 않지만, 나트랑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과 소소한 팁을 공유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
문보영 작가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상어형 인간이자, 두뇌용량의 한계로 멀티플레이가 안되는 게 나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니 완전히 걱정의 수렁에 빠졌다. 보통 퇴근하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글감을 모으고 8회 브런치 프로젝트(하...하실거죠?)를 준비하곤 했는데, 전염병이 퍼지니 정신이 완전 그쪽으로 팔렸다. 핸드폰을 열거나 PC만 켜면 포털에 코로나를 쳤다. 그 외에는 마스크와 청결제를 사는데 사력을 다했다.
어른용, 아이용 마스크를 충분히 확보하고 국내 확진자 증가추세가 잦아드니 이제야 브런치가 생각났다. 그래도 구독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는데 거의 한달동안 보합세다. 그래도 다행히 구독자가 줄어들진 않아서 위안이 되긴 했다. (구독자 분들, 감사합니다) 거의 3주만에 주말 외식을 하며 남편에게 이런 마음을 토로했다. "진짜, 코로나 터지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 코로나에 완전히 정신팔려서 글을 하나도 못썼어." 그랬더니 남편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걱정은 내가 할테니, 너는 글 써."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은 남편은 자신은 주식을 하기 때문에 뉴스가 가장 빠르다며 관련 속보가 있으면 카톡으로 알려줄테니 좋아하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어차피 너가 걱정해도 바뀌는게 없다며 비하발언을 쏟아내더니 대화의 말미에 걱정은 남편의 몫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반쯤 비어있는 남편의 맥주잔에 그의 손등이 굴절되어 비쳤다. 유독 남편의 손이 크고 단단해보였다.
결혼 한지 햇수로 7년, 올해 6월이 되면 만 6년이 된다. 28살에 결혼을 준비해서 29살에 결혼해서 지금 35세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여직원들 기준 꽤 고령층(?)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후배들이 많은데, 그들의 나이는 내가 한창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던 시기다. 아무리 봐도 이 아이들은 결혼 할 생각이나 계획은 없어보인다. 그래도 1년에 한두명은 하는 것 같더니 속도가 완전 둔화 되었다. 각자 인생의 방향성이 있을테니 내 쪽에서 결혼 여부에 대해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다.
휴게실에 모여 삼삼오오 계란을 까먹는 여자 후배들 틈에 앉아 핸드폰 어플로 CCTV를 켰다. 하원하고 돌아온 우리 아이가 잘 있는지 보고 있는데, 영상을 흘끗 본 아이들이 금세 내 주변을 둘러싸고 앉았다. 아이 외모에 대한 적절한 찬사를 보내던 한 후배가 슈렉고양이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결혼하면 좋아요?"
배운 사람들은 안다. 어려운 질문일 수록 양비양시론을 택하는 게 낫다는 걸.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고 생각해." 기혼자 입에서 '안해도 된다는' 답이 나오니 급격히 안심하는 눈동자들이 보인다. 괜히 내말에 용기를 얻어 너무 안도할까봐 급히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런데 할거면 빨리하는 게 좋아." 다시 불안에 떠는 눈동자들. 이미 늦었는데... 라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 가슴에 불을 지른 것 같아 그만 휴게실을 떠나려데, 다른 후배 한명이 옷깃을 잡아 끈다.
"근데 어떤 남자랑 결혼해야되요?"
주변에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친구 J가 있다. 그녀의 남편인 D는 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D와 함께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었기 때문. 2~3개월 동안 동거동락하며 본 D는 그룹에서 최연장자였다. D는 카리스마 있게 그룹을 이끌지도 않고 그렇다고 뒤에 숨어만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튀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와 시간을 오래보내면서 그가 인간적으로 엄청난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어느날 갑자기 친구J가 D와의 결혼을 선언했을 때 많은 동료들은 패닉에 빠졌다. 회사에서 주목받는 유망주인데다가 어리고 예쁜 J가, 평범하고 나이 많은 D와 결혼하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J를 걱정했다.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난 D가 걱정이 됐다. (J미안) 난 알았다. D보다는 J가 훨씬 결혼을 잘한다는 것을.
J와 친밀해서 종종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해 듣는다. 어떤 부부가 그렇듯 그들에게도 갈등상황이 생긴다. 그럴때마다 D의 대처가 아주 인상적이다. 결혼 직전에 J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 김연아처럼 무쌍의 매력이 돋보이는 그녀였지만 혼자서는 스트레스 였던 것 같다. 그런데 수술이 좀 잘못됐다. 쌍커풀이 비대칭(전문용어로 '짝짝')으로 되어 버린 것.
J는 한동안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회사에 왔다. 밥 먹자해도 도망가고 커피 마시자고 해도 말도안되는 핑계를 댔다. 사회성으로는 조세호 버금가던 J인데, 거의 대인기피증에 빠진 듯했다. 이를 보다못한 D가 그녀에게 한마디를 한다. "짝짝이니까 더 자연스러운 거 아냐?" 쌍꺼풀을 원하면서도 너무 튈까봐 걱정했던 J는 D의 말에 바로 평정을 찾았고, 곧 내 부름에 화답했다.
시간이 지나 두 사람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전체적으로 J를 많이 닮았다. 자기주장이 강한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기는 금세 4세 아이가 되었다. 이목구비만 자기주장이 강한 게 아니라 성격도 자기주장이 강했다. J는 나와 만날 때마다 "언니, 훈육 어떻게 해야돼?"하며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비록 4살이지만 아직 36개월이 된 J의 아이, 경험상 훈육을 하는게 쉽지 않다는 답없는 답밖에 못주고 우린 헤어졌다.
J는 갈수록 천방지축이 되고 콘트롤이 되지 않는 아이가 걱정되었다. 식탁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아이를 보며 J가 한숨을 쉬자, D가 다가 왔다. "왜그래?" J는 갈수록 자기멋대로인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 고민을 듣던 D는 한마디로 J의 걱정수렁을 날려버렸다. "예쁜 애들은 원래 싸가지 없어." 이 말을 듣고 J는 무릎을 쳤다!(ㅋㅋ) 인성좋은 이 부부의 대화는 아이를 훈육을 안하겠다는 게 아니다. D가 저 말을 한 목적은 온전히 와이프를 달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J는 훈육으로 스트레스를 안받기로 했다. 오히려 엄마처럼 너무 인성 좋으면 어떡하냐는 익살스런 농담을 늘어놓을 뿐.
D의 노련하다. 노련한 남자랑 산다는 건 어떻게 보면 피곤한 일이다. 아무리 아내가 난리를 쳐도 산신령처럼 구름을 타고 날아가버린다. J는 화를 낼 생황이 되도 화를 못내고 산다고 한다. D는 예상치 못한 포인트를 캐치해서 상대방의 요동치는 감정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확인 시켜준다. J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가 남편D에게 완전히 붙잡혀 산다고 한다.
저번주 퇴근길에 엘레베이터 앞에서 D를 만났다. D에게 말했다. "J가 자기 잡혀 산다던데?" D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 요즘 집에서 숨도 못쉬어."라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결혼은 저런 사람이랑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