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공감 안해주는 코로나 일상
아이를 낳는 다는 건 혼자 바닷가에 서있는 일이다.
지금 몰디브의 외딴섬에 와있는 기분이다. 수도 말레에서 멀고 먼,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한 산호섬이 수풀처럼 우거진 미지의 세계. 그곳에서 혼자 스노쿨링을 하고 있다. 바다 속을 깊게 헤집어 들어가니 거북이가 동무가 된다. 나와 거북이의 발장단에 큰 조개가 입을 뻐금거린다. 혼자라서 조금 외롭긴 하지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계가 펼쳐진다. 아무도 알수 없는, 나만 알수 있는 새로운 세계. 외롭지만 괴롭지 않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선택 할거니까.
몰디브처럼 바다휴양지인 괌(Guam)에 가면 사랑의 절벽(Two Lover's Point)이 있다. 괌 여행의 필수 코스인 이 곳은 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원주민 추장의 딸이 스페인 장교와 결혼을 강요당하자 이를 피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도망을 간다.
두 사람은 스페인 군대의 추격을 피해 사랑의 절벽까지 오게 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운명을 마감했다. 전망대 옆에 있는 사랑의 종은 이들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곳을 찾는 연인들은 종을 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아이와 강렬하게 몸이 하나가 되어 바다로 가라 앉는 것. 그것이 코로나 시대의 육아다. 남성과 미혼여성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기관의 휴원으로 인한 유연근무를 타진했지만 곧 공허한 외침이 되어 돌아온다. 회사에서 '엄마'티를 안내려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태다. 용기를 내어 재택근무를 어필했으나 거부당한 채 자리에 앉아있다.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앉아있는데, 이상하게 바다사진을 보게된다. 겨울바다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다.
겨울바다를 보러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바다는 역시 여름이지. 그런데 모니터에 서린 바다풍경을 보니 마음이 시리다. 겨울바다 앞에 와있는 것 같다. 한적한 곳에서 자연의 위로를 받고 있다. 춥고 먹을게 없는 알래스카에 굳이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알래스카에서 물개를 쓰다듬고 있다. 아무도 공감을 못해주는 환경이지만, 춥고 외롭지만 그래도 물개의 눈망울을 보는 시간이 축복이다.
일하면서 아이키우는 건 생각보다 할만 했다. 아이가 5세 될때까지 큰 위기없이 잘 키웠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단체휴원과 어려워진 회사 상황과 맞물려 절대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주머니가 채워지든 가슴이 채워지든 해야하는데, 지금은 둘다 텅 비어있다.
지금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건 자연 뿐. 오늘 점심은 같은 상황에 처한 워킹맘, 워킹대디들과 먹었다. 아메리카노를 한손에 들고 공원을 거닐었다. 평소 밝은 에너지를 품어내는 우리들이지만 오늘따라 침묵했다. 우리는 왜 하필 이 곳에 왔을까요. 난파당한 배에서 떨어진 미아처럼 우리는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