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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Apr 29. 2020

숨차는 우정

8살 어린 후배와 친구하기


룰라를 몰라도

REF를 몰라도

우린 친구다

비록 숨차지만





"깔깔깔깔"

낙엽만 봐도 자지러진다는 여고생도 아닌데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 한복판에서 몸을 잔뜩 웅크려 웃고 있다.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 앉히고 옆을 본다. 옆에는 한손에 아아를 들고 조커처럼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한 사람이 서있다. 내가 이렇게 자지러질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롭게 빨대에 자그만 입을 대고있다.


이 사람은 마음 울적하거나 답답할 때 만나는 후배다. 이름을 잘못 발음하면 '웅뎅이'처럼 들려서 원래 이름대신 웅뎅이라고 부른다. 웅뎅이랑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다보면 그녀가 나를 훨씬 앞질러가고 나는 헉헉 거리곤 하는데, 이는 웅뎅이가 나보다 무려 8살이나 어리기 때문이다.


86년생과 94년생. 94년도엔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룰라의 3!4!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웅뎅이에게 '룰라 알아?'라고 물으면 '살아있는거죠?'되묻는다. SES 최근 레트로 붐때문에 힙겹게 아는 수준이고 REF 보고서에 쓰는 레퍼런스(REF.) 알고 있지만 우린  통한다. 100% 확신은 없지만 웅뎅이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인 듯하다.


웅뎅이를 사물에 비유하자면 '갈아만든 배' 같다. 진탕 술을 퍼먹은 다음날 아침, 한잔 들이키면 온몸에 수분이 공급되며 갈증해소 동시에 해독이 되는 그런 존재. 나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지만 주머니에 있는 송곳처럼 웅뎅이는 이곳 저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갈아만든 배'가 숙취를 해소해주는 '코리안 매직 드링크'로 알려져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함을 안겨주고 있다.


헐, 숙취해소 버전이 실제 있었다!


사실 어린 후배들을 보면 '치기어리고 무모하다'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초년생 시절 쟤네는 멀 잘 몰라~라는 말을 듣고 분노했으면서, 정작 내가 선배가 되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회사생활 노하우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동기나 동년배가 줄수 없는 것들을 준다.


머리 터지게 일하고 있는데 웅뎅이에게 메신저가 온다. "선배님, 편의점 고고?" 예전에는 후배들을 만나면 지갑을 열어야 하고 관심사가 맞지 않아서 피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감성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니 굳이 피할 이유가 없어졌다. 오히려 고마운 감정이 든다. 이 늙은 언니랑 노는게 뭐가 재밌다고 놀아주는 건지.


지갑을 챙겨 나가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좋은 선배 또는 동료가 될 수 있는지. 비록 숨차는 우정이지만 같이 있으면 서로에게 쉬는 느낌이길. 이 험난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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