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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Jul 10. 2020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평온한 회사원 라이프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살다보면 누구나 동요할 때가 있다. 아니, '살다보면'이란 말은 틀렸다. 회사원이라면 감정의 동요는 매일 찾아오는 점심시간 같은 일상이다. 유난히 달달 볶이고 날카로운 화살을 맞은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하루라도 평온한 적이 있었던가? 체육대회가 생각났다. 땡볕에 살얼음 막걸리가 2병 든 가방을 메고 어른들을 따라가던 산행길. 일을 안해서 평온한 건 맞지만 다음날 앓아누워 몸이 평온하지 못했으니 패스.


회사원으로 살면서 평탄한 날이 없었다. 업무 1개가 끝다면 2개가 찾아오고, 열심히 썼는데 다시 갈아엎고, 평온하게 제품이 만들어진다 싶었는데 품질 이슈 터지고. 상상하지 못한 부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동요는 찾아온다. 그런 날마다 술을 퍼마시고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결국 남는 건 망가진 몸과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 잔뜩 불어난 뱃살과 점멸하는 메신저를 보며, 달라져야 겠다 싶었다.


동요 (動搖) [동ː요]
[명사] 1. 물체 따위가 흔들리고 움직임. 2. 생각이나 처지가 확고하지 못하고 흔들림. 3. 어떤 체제나 상황 따위가 혼란스럽고 술렁임
※ 출처: 국어사전


동요는 흔들린다는 뜻이다. 외부 힘에 의해 흔들리는 것 같지만 사실 동요는 내 생각과 처지가 확고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악화되는 경우는 나도 흔들리는 경우다. 아무리 바깥에서 비바람이 치고 태풍이 불어도 몸에 묵직한 추를 하나 매달고 기둥을 붙잡고 있으면 태풍은 지나가게 되어있다.

  


최근에 좀 기억에 남는 동요할 일이 있었다. 첫번째는 관계가 께림한 사람과 밀착근무, 두번째는 갑자기 부서가 바뀌고 내 성과가 날아간 일. 예전 같았으면 상황을 직면하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 애를 썼을거다. 결국 해결되지 않고 악화됐다. 몇천명이 있는 회사에서 고작 한명이 방방 뛰어봤자 벼룩이 유리컵 안에서 뛰는 꼴이니. 그러다 우연히 한 문장을 만났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대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문장. 모든 것을 끌어안는 바다처럼 포용력이 있고 크게 생각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냥 반응을 하지 않는 것. 왜냐면 난 포용력이 없으니까.


첫번째 상황.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팀플레이를 했다. 예전에 같이 업무를 하다가 부딪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걸 업무로 받아들였으나 상대방은 '도전'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역시나 Kick-off(첫모임)부터 그들은 술렁거리고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딱히 반응 할 꺼리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데, 그들이 툭툭 역린을 건들였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부정하고 (소위 '지금 껏 뭐했어요?') 깔아뭉개는 말들.


예전의 나였다면 상대방과 똑같이 했을거다. (그러는 00님은, 뭘 하셨어요?) 그런데 이번엔 그저 잠잠히 듣고 있었다. ... 침묵. 침묵이 길어지자 상대방은 내가 주눅이 든줄 알고 더 신명나게 나를 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간과한게 있다. 이 회의는 우리만 듣는게 아니라 많은 이가 있는 자리였거든. 비난을 충분히 듣고, 사실관계만 소명하고 회의를 끝냈다. 중간중간 많은 상황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감정을 콘트롤 하지 못하고 날 비방한 사람이 이상해졌다. (먼 미래지만 나중에 SENIOR 자리를 두고 경쟁할수도 있는 사이인데, 멀리 안보는 느낌)


두번째, 갑자기 부서가 바뀌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과가 날아갔다. 주변 사람들이 당황했다. 사실 나도 꽤 당황했다. 부서가 언젠가는 바뀔 걸로 생각했지만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할 시간은 줄줄 알았다. 그런데 가위로 싹둑 자르듯 모든 게 날아갔다. 착한 동료들이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려 줬다. 솔직히 약간 분했지만 애써 표현하진 않았다.

뭐, 이런거 하루 이틀이라고. 그런데 나, 늙었구나. 


짐을 싸고 새 부서로 옮겼다. 새 자리에 짐을 푸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열심히 만든 제품들은 이제 누구 손으로 가는거지? 마무리를 이상하게 하면 안되는데.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하는데 이상하게 한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내 돈도 아닌데 뭘.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린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 쏟아부은 시간과 비용에 대해서 회사는 월급으로 보상을 해줬다. 제품을 개발하고 만든 비용도 다 회사가 냈다. 어차피 내것이 아닌데 감정을 쏟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사업을 할때 길길이 날뛰어도 충분하다. 문강태씨가 내 손을 들어 올려 어깨를 두드려주듯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보호사 문강태(김수현 분)이 환자를 달랠때 쓰는 방식) 나도 선덕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금세 마음이 진정됐다.


<강태가 날뛰는 문영을 토닥토닥>


창밖으로 탁 트인 하늘과 건물 전경이 들어온다. 발생하는 일에 하나하나 감정을 쏟을 땐 몰랐던 하늘. 잠잠히 사건사고들을 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푸른 하늘과 별같은 마천루들. 마음에 OCEAN하나를 만들고 나니 창밖의 바람소리도 흐르듯 들렸다.

 


진즉부터 파도가 되지 말고 바다가 될껄.

어차피 다녀야 한다면, 잘 다니는 게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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