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아재 바라아재 18화

18화 - 하인리히의 법칙

by 시드니

“끼익”


조심스럽게 영업본부장실 문을 여는 다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영본이 갑자기 무언가를 꺼낸다.


“아악!”

다름은 오른쪽 팔 한쪽에 심한 통각을 느꼈다.


눈앞에는 비비탄 총을 들고 있는 영본이 보인다.


영본 “너 죽을래?”

남다름 “....”


다름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분명 비비탄총은 맞지 않겠다고 했는데.


영본 “대행사 입금 빨리빨리 안해?”


다름은 겨우 정신줄을 붙잡았다.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침을 한번 삼켰다.


남다름 “오늘은 지출일이 아닙니다.”

영본 “하라면 할것이지 말이 많아?!”

남다름 “지원부도 원칙이 있습니다. 영업이나 마케팅에서 해달라한다고 해주지 않습니다.”

영본 “내가 시켰다고 하고, 빨리 해달라고해.”

남다름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만.”

영본 “말씀을 드려보는게 아니고! 무조건 하라고해!”


다름은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은걸 느꼈다.


인사를 하고 뒤로 돌아서는데, 영본이 총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린다.


영본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말야. 귀찮게.”


다름은 뒤를 돌아봤다. 지금까지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임을 증명해준 그의 말.


남다름 “네?뭐라고 하셨죠?”

영본 “뭐?”

남다름 “방금 돈이 필요하셨다고.”


놀란 영본은 금세 표정을 되찾았다.


영본 “내가 그랬어? 잘 못 들은거야.”


영업본부장실 문을 닫으며 나오는 다름. 역시 인테그럴에 지출되는 돈은 주인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잡아내지.”

본인 부서쪽으로 돌아오는데, 영업기획부 쪽에서 소음이 들린다.


전미영 “또 이렇게 쓴거야? 대체 뭐야?”

공민우 “....”

전미영 “다시해. 아니! 하지마!”


민우선배가 전부장에게 또 혼나고 있다.


다름은 공민우도 인테그럴과 살며시 연결되어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과거 민우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다름은 이번엔 본인이 그를 도와주고 싶어졌다.


남다름 “전미영 부장님!”

공민우에게 화를 내고 있던 전부장이 다름을 쳐다본다. 다름을 보며 안도하는 공민우도 함께.



*



여자화장실.

다름이 전부장에게 선물을 하나 내민다.


남다름 “부장님 이거요.”

전미영 “이게 뭐지?”

남다름 “저번에 스카프 빌려주셔서 감사했어요.”


화이트데이를 맞아 작은 사탕박스를 준비한 다름.

사실 아침에 부서 아재들이 준거다.

민우선배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시간을 벌어준 그녀.


남다름 “요즘 스트레스 많을 것 같아서 드려요.”

전미영 “아, 좀 시끄럽긴 하지?”

남다름 “네... 민우선배가 그렇게 못하나요?”

전미영 “공민우? 걔가 왜 못하겠어.”

남다름 “그럼 왜그렇게 혼내시는거에요?”

전미영 “일종의 테스트 중이야.”

남다름 “테스트요?”

전미영 “응. 나도 그에 대해 알고픈 게 많거든.”


의미를 알 수 없는 다름.

전미영부장은 속을 알 수 없다.

다름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전부장.


남다름 “테스트 중이라니. 뭐지.”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는 사이, 오랜만에 한아름과 마주친다. 표정이 밝지 않은 그녀.


남다름 “아름아. 안녕? 안좋은일 있어?”

한아름 “아, 언니. 아..아니야.”

남다름 “우리 너무 오랜만이다. 할말도 많은데.”


아름을 보고 있던 다름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로 향한다. 부르튼건지 누군가 상처를 입힌건지 생채기가 나있다.


남다름 “뭐야? 입술이 왜 그래?”

한아름 “아.. 아무것도 아냐.”

남다름 “너무 야근 많이 한거 아냐?”

한아름 “야근은 무슨. 참 언니. 목요일 저녁 시간돼?”

남다름 “목요일? 남편한테 물어볼게. 왜?”

한아름 “방탄소년단 콘서트 같이 가자구.”

남다름 “방탄? 나야 좋은데, 동엽씨랑 안가?”


잠시 머뭇거리는 한아름.

남자친구 이름을 듣고 안절부절 못한다.


남다름 “설마 싸웠어?”

한아름 “으응.. 좀...”

남다름 “몇년동안 기다려준 여자친구 무조건 둥기둥기해줘야지. 동엽씨 나빴다.”


어색한 웃음만 짓는 한아름.


한아름 “언니는 별일 없어?”

별일이 심하게 많은 다름이다.

남다름 “나? 장난 아니야. 머릿속이 복잡하다. 보호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한아름 “누군데?”

남다름 “마케팅본부장님. 요즘 알지?”


사실 공민우라고 대답할뻔 했다.


아직 다름의 의심이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 아름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아름 “알지. 성추행 사건 때문에 얼굴 못들고 다니시잖아.”

남다름 “그러니까. 괜히 이때다하고 날뛰는 인간들만 많고.”

한아름 “잘나가는 분이시라 적도 많았나봐.”

남다름 “그러니까. 신제품 기획안도 보고드려야하는데 보고할 분위기도 아니고. 이거 신제품 런칭 성공시켜서 본부장님 인센티브 많이 받게 해드리고 팠는데.”

한아름 “언니는 진짜 의리파야. 그래서 언니가 좋아.”

남다름 “내실이 하나도 없는 의리녀지.”


다름이 의리지킨다고 뭐가 잘된적이 있었나.



*


사무실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앉는 다름.

방금 대화를 나눴던 아름에게 메시지가 와있다.


한아름 “언니. 내일모레 신제품 개발 위원회라고 사장님 이하 기관장을 모두 참석하는 회의가 있어. 한달에 한번 열리는건데, 혹시 여기서 언니도 발표할래? 부장님한테만 살짝 말씀드려서 마지막 순서에 언니 이름 넣을게.”


다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영업, 마케팅, 제조, 연구소 등 본부장과 부장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발표라니.


아무리 대담한 다름이지만 신제품 기획을 처음 해보는 마당에 부담스러웠다.


한편으론 자신이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자신의 상관인 마케팅본부장이 조금이나마 명예회복이 될 것 같았다.


남다름 “그래. 지르지뭐. 나도 부장님도 안계셔서 허락받을 사람도 없다.”


비트코인 투자에 실패한 마부장님은 이틀째 휴가중이다.



*



세하그룹 옥상.

자판기 커피를 한잔 들고 서있는 다름.

여러 생각이 복잡하다.


신제품 개발 위원회에서 발표를 하고 제품이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면 프로젝트 리더는 마케팅 본부장이다. 그가 이끌어 줘야한다.


하지만 성추문에 휘말린 상황에서 언제 그가 회사를 나가야할지 모른다.


특히 그와 사장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영업본부장이 가세해서 더 마케팅본부장을 옥죄고 있다.


“선배님!”


어디선가 청량한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민규였다.


남다름 “어, 민규씨. 안녕.”

김민규 “여기서 뭐하세요.”

남다름 “그냥 생각할게 있어서.”


잠시 민규와 함께 먼산을 바라보는 다름.


김민규 “저는 선배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남다름 “갑자기 무슨소리야.”

김민규 “그냥 선배님처럼 좋은 사람들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남다름 “나도 그래.”


다름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부 회사에 온전히 남아 행복하게 정년까지 쭉 다녔으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변사람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김민규 “제가 비록 어리지만, 힘이 되드리고 싶어요.”

남다름 “고마워. 말만 들어도 좋네. 일은 재밌어?”

김민규 “어려운 점도 있는데 잘 맞아요. 대외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도 재밌고요.”

남다름 “어떤 기관들이랑 일하는데?”

김민규 “엄청 다양해요. 최근에는 팡팡 홍보실이랑도 일했어요.”

남다름 “대박. 팡팡? 뉴스에 들으니 직원이 횡령했다고..”

김민규 “네네. 맞아요. 그 직원이랑 일했었는데. 씁쓸하더라고요.”


국내 최대 유통업체 팡팡.

직원 하나가 회사돈을 횡령하다 발각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남다름 “혹시 그 사람 어떻게 됐어?”

김민규 “검찰로 넘어갔다는 소린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잘...”

남다름 “혹시 좀 알아봐줄수 있어?”


갸우뚱한 표정으로 민규가 묻는다.


김민규 “그건 왜요?”

남다름 “그냥 궁금해서.”

김민규 “혹시...”


민규를 빤히 보다가 갑자기 손사래 치는 다름.


남다름 “야! 나 아니야. 내가 아니고. 무튼. 에헴! 선배가 말하는데!”

김민규 “푸하핫. 갑자기 여기서 선배가 왜 나와요. 알아봐 드릴게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남다름 “뭔데?”

김민규 “항상 저를 이렇게, 후배로 대해주시기.”



*



시계가 6시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서서히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한 남자.


공민우 “들어가보겠습니다.”

전미영 “어디가?”

공민우 “네?”

전미영 “가족들 외국에 있는 거 아냐?”


당황한 표정의 민우와 담담한 표정의 전부장.


전미영 “컴퓨터 화면에 Skype있길래.”

공민우 “아...”

전미영 “찍었는데 진짜인가봐.”

공민우 “아...네...”

전미영 “가족들도 다 미국에 있는데 매일 칼퇴. 투잡하니?”


진땀을 흘리고 있는 민우.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전부장.


전미영 “가봐. 내일보자.”



*



밤10시 다름의 집.


방안에는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민준이 보이고, 다름은 내일 발표할 신제품 기획안을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 엔터를 누르고, 웃음 짓는 다름.

“그래. 이거야.”



*



“제7회 신제품 개발 위원회”


플랜카드가 걸려있고 좌석에 높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나란히 앉아있는 영업본부장과 마케팅본부장.


둘다 표정이 좋지 않다.


제품개발실 사람들의 발표가 하나둘씩 끝나고 드디어 다름의 차례.


남다름 “안녕하십니까. 마케팅인사이트부 남다름입니다. 금일 여성타깃 신제품 개발 기획안을 발표드립니다.”


유연하고 유창하게 발표를 해나가는 다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장님과 마케팅본부장.

거드름을 피우고 있던 영업본부장도 자세를 고치며 경청한다.


발표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다름은 어젯밤에 준비한 PPT장표를 연다.


그 장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


남다름 “이 제품의 성공적 기획을 위해서는 앞으로 계속 시장조사를 해나가야합니다. 하지만, 지금 입찰된 시장조사 업체는 역량이 충분히 않습니다. 이에,”


다름은 영업본부장을 쳐다봤다.


‘비비탄총 맞은 값은 해주겠다’는 표정으로.


“현 대행사 교체를 공개적으로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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