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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Sep 06. 2022

깍듯하다는 건 너와 멀어지고 싶다는 뜻이에요

널 존중합니다만 제발 멀리 떨어져주세요


극존칭 =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어색할 때가 있다. 이게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맞나? 부드럽던 입술 근육이 경직되고 말을 뱉는 입모양이 어색하다. 내가 한국말을 하는지 혀에 힘을 주어 영어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 부자연 스럽다.


“팀장님께서 어떤 구상이신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평소 상사 앞에서 짝다리를 짚거나 커피타임을 할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등 아메리칸 컬쳐를 몸소 실천하는 자유로운 영혼인 내 입에서, 아직도 직급으로 서로를 부르는 올드한 조직에서  혼자 선배들에게 영어이름을 부르는 자유로운 내 입에서 극도의 존칭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이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요즘 같은 시대에 동료들에게 반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로 00님을 쓰며 선후배를 막론하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일을 하면서 가까워진 사이의 경우 ‘님’을 빼는 경우도 많다. 소연씨, 안녕하세요 했다가도 서로 프로젝트를 하며 친해지면 소연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대방도 반말로 불리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은 없는 걸로 추정한다. 일단 부르면 반가운 얼굴로 만사 제쳐두고 달려오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극존칭을 쓰게 된다. 나이테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이 있고 구심점으로 올수록 가까운 사이라고 했을 때 나무껍질 바깥에 두고 절대 속을 내어주고 싶지 않은 사람. 그들에게는 깍듯하게, 아주 깍듯하게 행동한다. 단순히 예의있고 차분하게 대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불편해 하는 걸 상대도 알아줬으면 하는 그런 목적에서 극존칭을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가 없기 때문에 극존칭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하네?’하며 기뻐한다. 네. 맞습니다. 존중합니다만 좀 멀어져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가끔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왜 저한테 이렇게 존댓말 하세요. 서운하게’ 라고 나무껍질을 톡톡 두드린다. ‘내가 그랬나?’하며 잘 모르는 척하지만 그 사람에게 눈으로 말한다.

속으로 들어올 생각은 0.1도 하지마세요.      


이렇게 쓰고보니 나도 참 자의식 과잉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존댓말 쓰는게 뭐라고. 상대방은 생각도 안 할텐데. 그럼에도 이렇게 그룹핑을 해두는 건 필요하다. 정에 약하고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손해 보는 경우가 많은 나같은 사람은 ‘극존칭’ 그룹을 주의할 필요가 있으니까. 조금 방심해서 속을 보여줬다가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ㅠㅠ)     


오늘도 어떤 팀장님과 회의를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회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가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지요?”

하시는   나왔다. 그렇다. 나는  사람과 가능하면 아주 멀리, 가능하면 이역 만리 까지 멀어지고 싶다.


조심히 살펴가세요. 아주 멀리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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