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후배지만 명절인사를 돌려보았다.
생각보다 엄청 좋아하네
브런치 독자 여러분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회사가기 싫지만 막상가면 신나요> 매거진을 구독하는 분들이라면 아실 수 있지만, 시드니라는 캐릭터는 회사에서 그렇게 호락호락한 캐릭터는 아니다.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선배나 상사들에게는 웃으면서 할말 다하는 스타일. (참고로 MBTI가 ENTJ인데, ENTJ들이 저런 성향이라고 한다..ㅎ)
회의로 처음 나를 본 사람들은 돌진하는 인간 팩트폭격기 (어떤 동료는 팩트마취라고 했다. 팩트로 후들겨 패고 마취까지 시킨다고...)를 보고 당황하기도 하고 '뭐 저런 싸가지 없는' 애가 다 있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흉을 보기도 한다. 남의 기분을 생각하며 의견을 내는 걸 주저하기 보다는, 표현 방식이 다소 드라이 하더라도 회사의 성장과 우리 고객들 입장에서 실무자의 생각을 밝히는 게 더 도덕적이라고 봐서 그런 것 같다.
자칫 잘못보면 일에 미친 냉혈한 처럼 보이는데, 가끔 그래도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며 감동이 몰려올 때가 있다. 바로 후배들에게 명절인사를 받을 때. 대체 나는 왜 이렇게 후배나 어린사람들에게 약한지 모르겠지만, 바쁘고 삭막한 그들의 일상 속에서 나를 기억해주는 후배들을 보면 고맙고 찡해진다. 추석 당일인 오늘도 몇몇 후배들에게 명절인사가 왔다. 기특한 아이들에게 답장을 하는데, 문득 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한번도 한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송편을 집어먹던 손을 정갈하게 닦고 한숨 고루 쉰 뒤 평소 고마웠던 선배들에게 인사를 돌려봤다.
"00님 안녕하세요, 제가 이런 인사 하는거 좀 부끄러워하는데... 꽉 차오른 보름달을 보니 00님이 생각나서 인사 한자 적습니다. 항상 직설적인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00님과 함께 근무해서 기쁘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
많이는 못보내고 한.. 10명정도 되는 선배들에게 보내봤다. 몇분 정도 지나니 한두명에게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감동을 받고, 누군가는 어색해하고, 누군가는 고어를 인용한 장문의 편지(역시 아재ㅠㅠ)를 써오는 등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선배들과 작은 메시지를 주고 받으니 그들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그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다음주 회사에 출근하면 좀 쑥스러울 것 같긴하지만 작은 순간을 통했다는 것 때문에 이전보다 더 관계가 깊어질 것 같은 느낌.
혹시 망설이고 계시다면, 추석 인사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낯간지러운 건 아는데, 제가 후배들에게 받아보니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참, 그나저나 구독자 여러분 메리 추석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