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니어도 갈데 많다 정신
난 이렇게 살아왔고
받아 들일 수 있음 받아들이셔
일반인이 나오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지만 가장 재밌게 본건 <환승연애>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아내의 유혹이나 펜트하우스급처럼 자극적인 막장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다. 전 연인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타인의 x와 새 연애를 시작한다는 컨셉이 상상이 안됐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환승연애>는 전혀 막장이 아니었다. 개개인이 지나간 인생을 되짚어보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담아내는, 휴먼다큐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제작진의 개입도 거의 없이 저녁시간에 서로 호감가는 상대에게 문자를 보내는 정도만 의무적으로 하면 된다.
일주일동안 면접관을 참여하면서 이상하도 <환승연애2>가 데쟈뷰 됐다. 크게 지원자들을 두가지 부류로 분류할 수 있었다. 출연진에게 선택을 받지 못해 계속 우울감을 느끼며 Ex 원빈에게 상처를 주던 지수, 똑같이 지수처럼 선택을 거의 받지 못해 잠만 자거나 침울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을하며 소신대로 사는 태이. 지수는 타인의 평가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이고, 태이는 타인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소신대로 사는 사람이다.
면접 지원자 중 이 회사에 자기라는 사람을 보여주려고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가를 받으려’ 들어온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일단 전자와 후자는 걸어오는 소리부터 다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나는 충분히 준비했고, 준비한 걸 다 보여주자는 자세로 들어온 사람과 준비는 열심히 했더라도 끝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은 풍기는 향기와 공기의 온도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한명의 지원자가 기억난다. 이력서를 봤더니 서초구의 명문고등학교, 명문대학교를 나온 재원이었다. 이력을 보고 꽤 기대하는 상태로 지원자를 기다렸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적잖이 놀랐다. 면접장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는지 이미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발표는 어떻게 마무리를 했지만 면접관들의 질문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손발을 덜덜 떨고 있었다. 준비한 걸 천천히 말해보라고 달라면서 했지만 머릿 속에 ‘망했다’는 단어만 맴도는지 전혀 말을 하지 못했다.
면접장에 들어와서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고 만점을 받아간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이력에 쓴 내용들이 경쟁과 관련이 적은, 공동체 생활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스펙을 쌓아온 사람들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경쟁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자신평가 받는 걸 두려워한다. 맨날 누구랑 비교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는 게 익숙해지면 자신감을 잃거나 자칫 잘못하면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경쟁보다는 화합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일 회(會), 모일 사(社)로 구성된 ‘회사’면접에서 유리하다. (물론 많은 경쟁을 경험한 친구들이 유리한 영역도 분명이 있을 것이다.)
면접 때는 <환승연애>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하는 심정으로 참여하는 게 좋다. 일단 나에 대해서 타인에게 평가를 받되, 내가 아니라고 하면 왜 아닌지 반추해보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된다. 한때 내 세상은 Ex만이 전부였지만 실제 알고보면 세상은 훨씬 더 넓고 기회가 많지 않은가.
면접관으로 참여하다보니 별것도 아닌 이유로 지원자들이 붙고 떨어진다. 지방 근무인데 집이 멀다는 이유로, (심지어 서울산다고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들었다) 학벌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경력이 너무 길어서 머리가 굳었다는 이유로, 해외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등등. 어디선가 대우받을 만한 스펙이지만 특정 회사에서는 베네핏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좌절하고 나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저 인연이 아닌 거니 잊어버리고 다음 스텝을 밟아가면 된다.
면접관 일기를 쓰며 생그러운 꽃같은 지원자들 얼굴이 스쳐 지나가서 행복했다. 나도 나이가 먹어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려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원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만약 면접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쁠 일이 있을까.
모두에게 파이팅과 따뜻한 미소를 건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