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울먹거리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면접관 합숙을 들어오기 전에 한가지 다짐한 게 있었다. 운 사람은 무조건 떨어트린다. 물론 사람마다 사정이 있고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한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 경험한 인간 백데이터에 의거하면, 면접에서 울어서 합격한 아이들 중에 회사에서 잘 생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내 브런치에 몇 번 언급되기도 했던 ‘바닷물에 소금뿌리기’ 후배도 면접에서 울었지만 스펙이 너무 좋아서 합격된 경우였다.
그런데, 면접을 진행하면서 원칙이 깨졌다. 면접에서 울었음에도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던 지원자가 있었기 때문. 그 지원자를 면접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송아지처럼 초롱초롱했던 그분의 눈이 기억난다. 발표면접 도중에는 그저 맑고 투명한 눈이었지만 질문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눈에 물이차면서 그동안의 애환과 간절함이 쏟아져 내린 그 사람.
처음 그 지원자를 봤을 때는 별로 기억에 남는 인상은 아니었다. 이력서를 쓱 봤을 때 그 사람은 꽤 큰 기업에 다니는 현직자였다. 역시 현직자 답게 베테랑처럼 발표를 해나갔다. 주어진 시간은 12분 남짓이었지만 앞에 앉아있는 면접관들보다 더 전문적이면서 유연하게 해결책을 제시했고 시선처리나 태도 또한 바로 옆에 앉아있는 대리님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완벽한 발표였지만 뭔가 가슴 한구석이 쎄했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을 과연 ‘신입사원’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정도 실력이 되는 사람이면 상사를 탁월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확률적으로 그러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발표가 마무리 되어갈수록 어떻게 점수를 줘야하나 고민이 됐다. 점수를 잘줘서 신입사원으로 뽑아놓으면 회사에 실망하고 퇴사할 확률이 높아보였기 때문.
“지원자분은 발표를 쭉 들어보니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이 뛰어나신 것 같은데, 왜 우리회사를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려 하시나요?”
라고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질문도 지원자가 어떻게 대답할지 뻔히 보였다. 더 많이 배우고 싶다, 더 발전하고 싶다, 업계를 리드하는 회사니까 등 그런 말을 하겠지. 실제로는 지금 회사에서 관계가 안좋거나 승진에 문제가 있거나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 이직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당당하게 질문에 답을 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발표면접 내내 총 학생회장처럼 당당하던 지원자가 갑자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사실 이 회사는 저에게 이정표였습니다. 대학생활 내내 이 회사 준비를 했지만 3년동안 공채가 없어서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고 드디어 이렇게 면접 기회가 생겨서 감개무량 합니다..(울컥)”
헉. 지원자의 눈이 벌개졌다. 내 옆에 앉아있는 면접관들도 지원자의 갑작스런 눈물에 당황했다. 질문을 던진 나는 너무너무 미안했다. 그의 진정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을 넘겨 짚은 나의 경솔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결자해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예외적으로 몇마디를 덧붙였다.
“그러셨군요. 지원자의 간절함을 잘 이해했습니다. 이제 채용전형 시작입니다. 지금 눈물을 흘리시면 다음 전형에 영향이 가요. 얼른 눈물 닦으시고 남은 전형들을 잘 치루시길 바랍니다.”
지원자는 발표자료를 떼서 가져가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 지원자가 나가고 저녁 합평 시간에 해당 지원자 멘토에게 그 지원자가 이후에 잘 면접을 치뤘는지 물었다. 다행히 멘토는 눈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후 면접전형에서 야무지게 잘 해냈다고 했다. 합평 시간에 점수를 합산해서 보니 눈물의 지원자는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진정성은 모두에게 통했구나 싶고.
하지만 여전히, 면접 중에는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가능하면 울면 안된다. 특히 여성지원자가 울면 더욱 감점이 된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울고 싶은 상황이 많이 생긴다. 그럴 때 울면 상황이 해결되는데 방해가 되고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가능하면 수도꼭지를 잠그고 면접에 임해야한다. 눈물의 지원자도 발표면접 자체를 완벽하게 하고 마지막 소회를 말하는 부분에서 조금 울먹 거렸을 뿐이다.
만약 발표를 잘 못 했는데 울었다면 회사품보다는 엄마품에 안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