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 아닌 사람에게 주눅들 필요없다
면접관 3일차. 대충 마무리하고 와버린 일이 생각나서 확인할 겸 메신저에 로그인했다. 내 메신저에 노란불이 뜨자마자 메신저창이 깜박깜박 점멸했다. 막역한 동기 J였다. J도 함께 면접관을 갈뻔했는데 사정이 생겨 못가게 돼서 아쉬워했었다. J가 묻는다.
“어때? 면접관 재밌어?”
“아니. 다신 안올래.”
“왜? 재밌을 것 같은데. 예비 신입들고 구경하고.”
풋풋한 예비신입사원들을 보는 건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그 기쁨보다는 돈과장 (면접관일기 2화참고)과 하루종일 붙어있는 고통이 더 컸다. 여전히 면접관을 한지 3일이 지났음에도 돈과장은 면접전형과 관계없는 질문과 태도로 지원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몇 번 기분 나쁘지 않게 제지했지만 소용없었다. 하긴, 마흔살 넘은 남자가 내 말한마디로 바뀔 리가 있는가. 그걸 바라느니 하노이에 눈내리는 걸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일 거다.
동기와 메신저로 수다를 떠니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런데 시원함도 잠시, 저 멀리서 뭔가 내 숨통을 막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고장난 기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처럼 뿌옇고 탁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예전 내 사수이자 거친 언행으로 유명한 D부장이었다. 옆자리 앉아있는 인사부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 심층면접관으로 혹시 D부장이 오는지. 인사부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 속에 시린 바람이 분다. 아침부터 힘들게 서울근교 시골에 있는 인재개발원으로 와서 1차 면접에서 돈과장을 만나고, 토론, 논술, 1:1 면접을 마치고 난 후 맨 마지막 심층면접에서 D부장을 만나는 지원자. 나라면 아마 면접장을 나오면서 오줌을 한바가지 싸고 다신 이 회사에 얼씬도 안 할 것 같은데. 설마 신입사원 채용을 최소화하려는 인사실장의 신박한 용병술인가 싶었다.
애써 눈을 안 마주치고 바깥으로 도망가려는데 D부장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오! 시드니 여깄네!” 정지된 자세로 어색하게 그를 맞이했다. 오... 오셨네요..^^; 그를 만나게 될 지원자들에게 RIP를 외쳤다. 저희 회사에 저런 분만 있는 건 아닌데 참.... D부장은 오랜만에 만난 내가 반가운 나머지 이것저것 묻는다. 3일간의 면접에 대해 브리핑을 하니 역시 시덥잖다는 표정을 짓는 D부장. 그에게 이번 면접에서 어떤 지원자를 뽑을 건지 물어봤다.
“나 착하게 할거야. 착하게 해야 대답을 하지. 평소대로 하면 애들 도망가잖아.”
오. 다행히 인사부 교육을 받고 왔다. D부장 주변 사람들도 면접관으로 가게된 그가 걱정됐는지 여러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실제 D부장과 같은 조였던 면접관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그는 별 질문을 안 했다고 했다. 그저 인사부에서 가이드를 준 질문만 하고 듣기만 했다고. 평소 독사같은 그도 상황을 따져가며 행동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 부분은 돈과장보다 나은 부분이었다.
저녁시간 합평을 하면서 D부장에게 특별히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있었냐고 물었다. 역시 그는 한명도 없었다고 했다. 그의 기준을 충족하는 지원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그나저나 내 점수표를 보더니 왜 이렇게 점수를 후하게 줬냐고 나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혼내기 시작했다. 평소에 일도 이렇게 물렁하게 하냐며 핀잔을 주는 그. 좀 난감하긴 했지만 여기서 이럴건가 싶어서 대꾸없이 멍하게 있는데, 한 선배가 다가와 D부장의 말을 가로챈다.
“D부장이 말은 저렇게 해도 시드니 과장이 코멘트 단거 보고 엄청 좋아했어.”
“음, 제가 어떻게 썼죠?”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데. ‘이 지원자는 누가 세상에 강제로 꺼낸 느낌’.”
아, 누군지 생각났다. 발표 내내 허공을 바라보면서 발표하던 돌돌이 안경 쓴 남자 지원자. 발표 내용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라는, 사람들과 소통해야하는 곳과 어울리지 않았던 그 사람. 그에 대해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세상에 강제로 꺼내진 느낌’이라고 썼다. 너무 딱딱한 코멘트보다는 가능하면 직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코멘트를 다는 게 뒤 면접관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내 코멘트를 보고 좋아했다니 브런치 작가로써 (물론 내가 작가인건 아무도 모르지만) 묘하게 뿌듯했다.
그래서 이 장황한 글의 결론은 면접관들에게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거다. 면접관들도 각양각색 특성이 다 다르고, 자기들끼리 혼내기도 하고 심지어 싸우기도 한다. 면접관들도 삼라만상, 모든 만물 중 티끌같은 존재이며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라는 것. 그러니 쫄지말자.
Tip. 압박면접 시 시선처리
보통 면접관은 3-5명 정도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그들은 역할을 나눈다. 인사말을 하는 사람, 클로징 멘트를 하는 사람, 시간재는 사람, 압박하는 사람, 풀어주는 사람.
혹시 심하게 압박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만 보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시선을 여러곳으로 분산하면서 답을 하는 게 좋다. 실제 압박질문을 한적이 있는데 지원자가 나만 째려보는 것 보다는 다른 면접관들도 차근차근 얼굴을 보며 대답해주는 게 압박질문을 던진 내 입장에서도 더 마음이 편했다. 괜히 서로 쳐다보고 있으니 묘하게 지원자와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