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운동 이야기를 안 썼을까
술 잘먹는 사람 = 부담스런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 정보,교류,건강
사실 면접의 필승전략이란 건 없다. 면접(面接)의 한자풀이는 ‘사람이 대면하여 만난다’는 뜻이다. 천태만상의 다양한 사람과 만남에서는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합격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한 가지 포인트를 발견했다.
운동 이야기를 꼭 한다.
면접에서 대화를 나눌 화제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지원자가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보고 궁금했던 부분을 묻게 된다. 고스펙 시대의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는 휘황찬란했다. 나때는 동아리 하나만 만들어도, 축제기획에만 참여해도 면접관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봤는데 요즘 지원자들은 어린 나이에 연구성과를 내거나 심지어 대한민국 법까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선이 가는 건 탁월한 성과나 업적을 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탈하게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을 찾아내는 척도 중 대표적인 건 운동이다. 지원자 중에 가장 눈길이 갔던 사람은 배구심판 자격증이 있다는 사람이었다. 배구는 잘 모르지만, ‘심판’의 권위는 잘 알고 있다. 운동경기에서는 심판의 한마디로 승패당락이 오가기 때문에. 게다가 심판을 할 정도라면 한 운동종목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사람이 살면서 하나를 제대로 알기도 어려운데 한 종목을 독파하고 있다니. 심판 앞에서 면접관을 하려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나만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는지 함께 들어간 면접관들도 압도적으로 심판에게 질문을 했다. 심판과 함께 들어온 지원자들도 상당한 고스펙자였다. 그럼에도 왜 탁얼한 성과자보다 배구 심판에게 더 눈길이 갔을까? 이건 직장인들의 생활패턴을 보면 쉽게 이해 할수 있다.
직장인들은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직장인들 대부분은 회사에 대해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돈을 주지만 힘들게 하는 애증의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딱히 현 시점에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로 열심히 경력을 쌓아서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거나 자기사업을 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다닌다.
이런 직장인들의 유일한 낙은 운동이다. 운동을 하면 회사에서 얻기 어려운 성취감, 스트레스 해소, 다이어트 효과 등을 누린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퇴근하자마자 짐이나 운동센터로 기를 쓰고 달려간다. 어떤 사람들은 동호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등산, 야구 등을 하기도 한다. 직장인의 운동 라이프는 주 40시간 근무가 도입되고 워라밸 문화가 전파되면서 더 활발해지고 있다.
또 운동을 내세우는게 유리한 이유는 면접관들 나이대다. 대부분 면접관은 3040대다. 팔팔한 20대들은 퇴근하고 놀러가기도 하고 날새도록 술도 먹지만 3040대는 그러면 큰일 난다. 퇴근하고 운동을 꼭 해야 밥벌이가 영속 가능한 나이대다. 그래서 다들 건강과 운동에 관심이 많다. 예전에는 양조자격증이나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이 있는 지원자들이 인기가 많았다 들었는데, 솔직히 지금 관점에서 저런 지원자들을 후배로 받으면 부담스럽다. 그냥 개인 생활을 잘 꾸려가면서 소소한 정보가 공유 할수 있는 정도의 후배가 받고 싶다.
또 운동하는 사람은 외적으로 멋있다. 내면을 봐야하는 면접이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게 외견이기 때문에 외모에서 오는 호감은 어쩔 수가 없다. 단단한 피부와 탄탄한 근육에 일단 시선이 쏠린다. 그리고 운동 중에서도 꼭 요가, 필라테스 같은 혼자 하는 운동보다는 단체로 하는 운동을 언급하는 게 좋다. 조직생활도 단체 운동경기와 같아서 함께하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조직에 잘 융화될 걸로 판단되서 점수를 더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번 내 옆자리 면접관은 우리회사 야구 동호회 부회장이었다. 그는 운동에 대해 쓴 지원자들의 지원서를 훑더니 지금 좌완투수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만약 좌완투수 할수 있는 지원자가 있다면 무조건 만점을 주겠다며 눈에 힘을 줘서 말했다. 퀭한 눈으로 자기소개서를 보고 있는 내 손을 덥썩 잡으며, 좌완투수는 지옥에서도 데려와야한다고 꼭 야구 하는 지원자가 보이면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운동의 힘이 이렇게 크다.
에피소드.
어떤 지원자가 자소서에 골프 관련 이야기를 썼다.
- 면접관 : 지원자는 라베가 얼마 인가요?
- 지원자 : 76... 입니다.
- 면접관 : 헉. (이런 인재가!)
어떤 지원자도 자소서에 운동을 좋아한다고 썼다.
- 면접관 :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 지원자 : 한강에서 조깅하는 걸 즐깁니다.
- 면접관 : 아.... (어쩌라는 거지...)
면접에서는 가능하면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종목을 고르는 게 좋다. 한강에서 조깅한다고 하느니 운동을 아예 안한다고 하고 그 이유를 잘 말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