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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Apr 10. 2023

청담동은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청담동을 걷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청담동을 한달동안 걸어다닌 소회






한달 간의 짧은 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직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한마디는 ‘왜 이렇게 살이 쏙 빠졌어?’ 였다.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딱히 받을 일도 없었는데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랫뱃살이 속 빠졌던 이유는 하나다. 바로 청담동을 걸어 다녔기 때문.      


평소에 비해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여느 초등학교 1학년 엄마처럼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릴러가고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릴러 가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릴러 갔을 뿐이었다. 자동차로 데려다주기에는 거리가 다소 애매해서 아이 손을 잡고 열심히 걸어다녔다.      


조금 길게 체류하는 영어학원에 아이를 집어넣고 학원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면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린다. 오후2시 정도 되었을 시간인데 벌써 5천보를 걸었다는 것. 회사가 있는 대치동에서 우리집이 있는 삼성동까지 걸어와도 3천보를 안 걷는데, 청담동 언덕을 몇 번 왔다갔다 했다고 금세 5천보를 걷는다.      


학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애매한 거리다. 아이 손에 초콜릿 하나를 쥐어주고 언덕을 올라오다보면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청담공원 놀이터를 만난다. 그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쫓아다니다보면 핸드폰 알림이 또 울린다. 동그란 세 개의 링에 빨간색이 가득 채워지며 하루 운동 목표를 달성했다는 축하메시지가 날아온다. 딱히 운동할 생각도 없었고 그냥 학교 학원 스케줄 대로 살았을 뿐인데 자동으로 운동이 되고 있었다.     


머리로는 운동을 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평소보다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다리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직 8살 밖에 안된 아이도 청담동 언덕은 버거운지 잠시 쉬어가자고 한다. 청담동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며 걸어다니는 행인들을 본다. 오후4시. 널찍한 인도에는 인기척이 드물다. 청담역에서 청담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에 걷는 사람은 다섯명도 채 되지 않는다. 아이 다리를 조물조물 주물러 주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왜 이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까?      


한종수 작가의 <강남의 탄생>을 보면 청담동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가장 강남스럽지 않은, 그러나 가장 강남다운 청담동

청담동이 뜬 이유는 물론 압구정동의 우산효과 때문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곳은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가 없다는 사실이 매력이 되어 뜬 동네다. 지하철 3호선 개통 후 압구정동에는 ‘외지인’들이 모여든 반면, 청담동에는 오랫동안 지하철역이 없어 자동차가 없는 이들은 접근하기 힘든 편이었는데 이또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물론 2000년에 7호선 청담역에 개통되긴 했지만 알다시피 진짜 ‘청담동’과 ‘청담역’은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청담동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파출부’ 밖에 없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래서인지 청담동 일대, 특히 도산대로에는 유난히 외제차 매장이 많다.           

- 한종수, <강남의 탄생> 186p


청담동에서 걸어다는 사람은 파출부 밖에 없다니. 농담으로 하는 소리겠지만 왜 저런 말을 만들어냈는지는 알 것 같다. 산책할 겸 운동화를 질끈 묶고 나갔다가 가파른 경사를 타고 내려다가 보면 집에 다시 돌아가기 무서워진다. 다시 돌아가려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해도 정류장과 역은 저만치 멀리 있다. 결국 다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담동 주민들은 차를 타고 다닌다. 도보로 다니기에는 굽이치는 언덕 때문에 금세 진이 빠지고 마니까.     


진을 쏙 빼놓는 청담동 언덕이지만 걷는 게 좋았다. 인적이 드문 도산대로를 걷다보면 묘하게 내가 이 길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갤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메이크업 샵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어울어져 잠시나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디. 시야가 탁 트인 청담동 웨딩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언제 내가 아닌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길에 혼자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음악과 향기가 어울어져 청담동이 오롯이 내 것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이 길을 걷는 사람만 느낄 수 있다. 가파르고 험준한 언덕을 이겨내면 묘하게 이 길이 내것이 되는 상상에 빠진다. 비록 허벅지 뒤가 저리고 발바닥이 아프지만,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 길을 만끽하고 싶다.      



산책하다 발견한 영동고 옆 유현준 건축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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