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에서 이혼으로
타인은 지옥이다
모바일 브런치 웹화면이 리뉴얼됐다. 원래 브런치에서는 ‘글’ 위주였는데 이제는 ‘브런치북’으로 바뀌었다. 순위도 글 위주였다면 바뀐 화면에서는 지금 떠오르는 브런치북이 보인다. 1위부터 20위까지 브런치북을 보면서 공통되는 키워드들 하나 발견해다. 바로 이혼.
발행글 중심으로 추천이 떴을 때는 ‘퇴사’ 키워드가 많았다. 오늘 퇴사했어요, 퇴사하고 간 여행, 출근 마지막날 소회 등 브런치 작가는 퇴사를 하지 않으면 알고리즘에 노출이 안 되는 건가 싶었는데 이제 그 키워드가 이혼으로 옮겨갔다. 추천 브런치북 내 이혼 관련 테마가 족히 10개는 되는 것 같다.
새로 떠오르는 브런치북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저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멘털이 흔들리는 이야기들이었다. 작가 시드니는 ‘살아가는 마음’에 대해 쓰고 있지만 저 정도 일을 겪은 분들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
아무리 필명이라도 이혼 이야기를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불특정 다수에게 발행되는 글이지만 그래도 구독자 중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테도 지인도 있을 텐데 용기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브런치에서 순위가 높은 브런치북들의 공통점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첫째, 솔직하게 쓰기
둘째, 나만의 이야기
셋째, 스토리테링(기승전결)
순위가 높은 글들의 공통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단순한 순위를 노리지 않더라도 시선을 사로잡는 글에는 솔직함, 독창성, 스토리가 있다. 리뉴얼된 브런치를 통해 여러 재능 있는 작가님들을 알게 돼서 즐겁기도 하고 긴장감도 들었다.
이혼 관련 브런치 글을 보면서 나도 한번 내 결혼생활을 돌아봤다. 올해 결혼 10년 차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아직은 이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한 잉꼬부부인 듯하지만 전혀 아니다. 우리는 성격이 너무 다르다.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와 관념이 아직도 다르다.
단편적인 예로 ‘청소를 하다’에 대한 정의가 달라 아직도 소소하게 다툰다. 나는 정리를 하면 청소를 했다고 생각하고 남편은 구석까지 싹싹 닦아야 청소라고 생각한다.(내 기준 이건 대청소다) 언어에 대한 다른 정의는 삶과 사람에게 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뭐든 대충 하는 사람이고 내가 보기엔 남편이 강박적인 사람이다. 대충과 강박이 잘 지낼 리가 없다.
자석의 양극처럼 너무 다른 우리지만 그냥저냥 지낸다. 왜 잘 지내는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무던한 사람들인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날카롭고 불같은 사람들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기 때문에 어디가 서로의 급소인지 정확히 한다. 우연히 급소를 맞으면 용서가 가능하다. 고의로 급소를 공격한 사람을 용서하긴 쉽지 않다. 다행히 아직은 급소를 때리지 않았다.
이혼테마를 다룬 글을 읽다 보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소소한 사례부터 감정까지 남편과 나의 이야기인가? 싶은 부분도 많다. 직면한 문제는 대체적으로 비슷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느냐 그냥 넘기냐의 차이 정도. 이혼을 하는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의 차이는 습자지 한 장 차이라는 걸 느낀다. 삶의 파도를 잠재울 수 있는 건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가게 둬야 한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이혼이고 누군가에게 퇴사인 거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퇴사, 이혼, 이직, 우울증 등 브런치를 지배하는 많은 테마들을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든다. 타인은 지옥이다. 나 하나 간수하고 살기 벅찬 도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타인에게 감정을 소모해야 한다.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각자 다양한 방식을 찾아 나선다.
브런치를 찾아온 독자분들은 브런치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받는 게 브런치북 순위에 올라있고 지금은 이혼 키워드가 순위권을 덮고 있다. 드러내기 어려운 주제를 드러내준 작가님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그 글을 순위로 보낸 독자분들에게 안타까운 감정도 든다. 다들 얼마나 결혼생활이 힘들면 그럴까.
‘살아가는 마음’에 대해 다시 한번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글이든 선하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글을 써야지.
늦은 밤 남기는 작은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