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 에이스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LG트윈스 에이스, 잘 가요.
오지환 은퇴식 때 꼭 와요.
케이시 켈리가 떠났다. 그의 이별소식은 갑자기 알려졌다. 보도기사가 뿌려진 바로 다음날, 잠실의 선발투수는 켈리였다.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좀 의아하긴 했다. 보통 시즌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별다른 인사 없이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작년 플럿코처럼) 켈리는 6년간 구단과 팬들이 보여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본인이 강력히 주장해서 선발을 하고 싶다고 했고, 구단에서는 이를 받아줬다.
7월 20일, 황금 같은 주말이었지만 집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TV를 켰다. 사실 현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켈리의 고별전이자 잠실더비(엘지 vs두산)의 2차전이 열리는 날이라 애초에 표를 구할 수도 없었다. 선발로 등판한 켈리는 평소처럼 늠름하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항상 켈리에게 감동받는 엘지팬이지만, 이날은 더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갑자기 해고 통지한 회사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역투를 하는 켈리의 모습에 내 직장생활까지 반성했다.
애틋한 감정으로 그의 무실점 경기를 보고 있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3회 초부터 폭우가 쏟아진다. 2 아웃까지 잡았지만 경기는 우천중단 선언이 된다. 그 뒤로 1시간, 30분 지켜봤지만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중간중간 피칭을 연습하며 몸을 달구는 켈리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잠실구장을 뚫는 듯한 폭우에도 끝까지 경기를 준비하는 책임감과 열정. 이날 쏟아지는 비만큼 LG트윈스 선수들과 팬들도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켈리를 보면 워크에식(work ethic)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말은 우리말로 바꾸면 ‘성실성의’를 의미한다. 주로 일반적인 회사보다는 영입과 해고가 쉬운 스포츠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 뛰어난 선수들은 경기를 준비함에 있어 꾸준히 몸관리를 하고 엄청난 훈련양을 소화하며 사생활 측면에서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선수들은 악마의 재능으로 불리지만 경기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사생활 논란을 일으킨다.
“사실 켈리는 외국인 선수 라고 할 수 없다. 그냥 LG트윈스 에이스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삼성 시절부터 외국인 선수를 많이 봤지만 켈리처럼 실력, 인성, 어린 선수를 챙기는 리더십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빠지는 게 없는 선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외국인 선수가 아닌 LG트윈스 에이스가 떠난다는 마음에 많이 슬펐다.-LG트윈스 외야수 박해민 (a.k.a 트중박) ”
박해민 선수의 인터뷰처럼 켈리는 일반적인 수준의 워크에식을 넘어선다. 미국에서 온 외인투수 이지만 한국문화에 젖어들고 (켈리선수 아이들도 명절마다 한복을 입는다.) 자기보다 어린 선수들을 챙기고 조언을 잊지 않는다. 다른 외인 투수들이 한국 선수들과 소통을 포기할 때 말이 안 통해도 어떻게든 대화를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 고민을 한다. (임찬규 선수 왈, 본인은 한국말로 하고 켈리는 영어로 하는데 서로 말을 알아듣는 수준이라고..)
슬프게도 우리네 삶에서는 켈리처럼 직업윤리가 갖춰진 사람보다는 워크에식이 결여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말의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들을 꼭 만난다. 주어진 일을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며 프로답게 완수하기보다는 자신이 힘들다는 알량한 핑계로 (타인이 공감하기 어려운) 협업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최악의 경우에는 불평불만만 토로하고 일을 인수인계도 하지 않아서 일 자체가 이도저도 아니게 만들어버린다.
외국에서 건너온 89년생 투수도 해고를 당했음에도 열정적으로 피칭을 하는데, 과연 우리들 중에 얼마나 저런 태도로 삶을 살고 있을지 나부터 반성하게 된다.
켈리 고별전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엉엉 우는 엘지 트윈스 선수들이다. 특히 질문을 해야 겨우 대답을 하는 홍창기 선수가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더그아웃과 엘튜브에서 깨방정을 떠는 임찬규와 문보경의 눈물도 의외다. 100킬로에 육박하는 야구선수 2-30명의 마음을 무너트리는 켈리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사랑을 주고받기 어려운 세상에서 다들 켈리에서는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받았으리라 예상해 본다.
켈리와 그의 동료들을 보니 한 본부에서 동고동락하는 내 동료들도 스쳐간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다가도, 내가 떠날 때 그들도 슬퍼해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면서 하루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켈리의 파이팅을 받아본 선수들이 그와의 이별에 눈물을 참지 못하듯,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며 나의 존재가 작게나마 울림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말만 건넬 수 있길 다짐한다.
잠실 예수가 떠났다. 그가 떠난 다음날 새로운 외인 투수가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그가 부디 구원자가 되길 바라며.
켈리선수 고생하셨습니다.
‘한-참 남았지만’ 오지환 은퇴식 때 봐요.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