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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Feb 13. 2024

서울의 달 그리고 김운경

드라마 ‘서울의 달’ 이 방영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94년 1월 첫 방송이 나간 뒤 높은 시청률과 화제를 끌어 모았고 한석규, 최민식 이라는 당대 최고의 두 배우를 성장시킨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김운경 작가의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김운경이라고 답할 것이다. 수십 년간 드라마를 봐왔지만 단 한 번도 다른 이름이 거론될 자리가 없을 만큼 김운경은 나에게 K-드라마 그 자체였다. 그의 드라마를 보면서 넉넉한 위로와 삶의 버팀목을 얻었고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품었다. 


김운경의 드라마는 항상 서민 혹은 빈민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이들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비교를 위한 도구화나 전형적 패턴으로 손쉽게 다루어진다. 생각해보라, 팍팍하고 하품 나는 현실에서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마음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구질구질한 인간사를 드라마에서까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한 길만을 향해 나아갔고 조미료 범벅의 드라마 틈에서 얼마나 깊은 울림을 선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냈다. 그의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겉모습만 모방하는 코스프레 서민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서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쯤 한 OTT 사이트에서 서울의 달 81화 전 회차를 다시 보았다. 사실 나는 김운경의 드라마 중 ‘파랑새는 있다’ 를 가장 좋아하지만 ‘서울의 달’ 이 가지는 상징성만큼은 넘어설 수 없다. 좋은 드라마란 세월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켜내는 단단한 뿌리 같은 것으로 서울의 달은 바로 그런 드라마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꿈과 희망을 안고 찾아오는 땅 서울. 그러나 생존과 욕망과 에너지가 들끓는 땅 서울은 결코 모두에게 따뜻한 환영인사를 보내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대도시 부산에서 올라왔음에도 낯선 이방인의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았다.

      

90년대 초 서울 빈민층의 생활상을 엿보고 싶다면 이 드라마가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들이 본다면 지금의 가치관이나 젠더의식과 괴리되는 장면과 대사들을 보며 놀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김운경 작가는 머리가 아닌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서울의 달 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생생히 살아서 숨 쉬고 있다. 끝내 철저한 악인이 되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제비족 홍식, 꿈을 안고 상경한 서울에서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농촌 총각 춘섭, 서울깍쟁이 흉내를 내보지만 위태로운 사랑에 흔들리는 영숙. 이 세 주인공과 그들을 둘러싼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가진 거 없는 이들이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뼈저리게 까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운경의 드라마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울퉁불퉁 비포장 시골길처럼 투박하게 주고받는 서민 개그의 향연은 절로 웃음이 끊이지 않게 만든다. 그의 드라마는 여전히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 가족까지 해체되는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설정이라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김운경 월드가 건네는 조막만한 희망들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값이 나가지도 않고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허약한 희망이라도 함께 한다면 더 가치 있다는 믿음. 그것은 누구든 이 서울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김운경의 드라마를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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