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은율 Jan 14. 2024

나의 플레이리스트

드라마가 떠난 자리에 음악이 남는다.

나는 2020년도에 중국드라마에 빠지면서,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했다. 어릴 때,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랐고, 후에 <<포청천>>, <<황제의 딸>> 즐겨봤다. '조미'가 좋아서 <<안개비연가>>도 챙겨봤다. 이때까지는 그냥 흥미 정도였고,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삼생삼세 십리도화>>를 보면서, 나의 중드 덕질이 시작되었다.


<<삼생삼세 십리도화>>를 다 본 후, 중국어 공부를 결심했는데, '조우정'이 낭독하는 시를 들으면서, 그의 감미롭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 듣는 중국어는 이토록이나 우아할 수 있구나 싶었다. 사실 공항이나 여행지에서 듣는 중국어와 드라마 속에서 배우들이 표현하는 중국어는 달랐다. 그것은 마치 음악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가장 기초인,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성조', 한자를 소리로 읽기 위한 '한어병음'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당시, 온라인 스터디를 많이 참여했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들이 참여하는 중국어 스터디였다. <<맛있는 중국어>>란 교재 1권부터 4권까지 차례로 공부하자, 기본적인 한자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보니, 드라마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던 노래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凉凉 (쓸쓸한)>은 듀엣곡으로, 남자와 여자가 나눠 부르는 구간에 주인공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생겁은 쉽게 건넜지만 정겁은 어렵기만 하오

상처받았던 마음엔

아직도 전생의 한이 얼마나 남은 거요"


 '야화'가 '백천'에게 큰 잘못을 했고, 백천은 야화를 용서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야화의 한결같은 사랑이 끝내 백천의 마음을 움직인다. 백천이 한 생을 저버릴 때,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삼생... 세 번의 삶. 번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야화는 오직 여자만 사랑했고, 나는 그것에 몹시도 끌렸다.


두 번째로 만난 드라마는 <<향밀침침신여상>>이다. 현재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인 '양쯔'와 '등륜'이 주인공이었다. (등륜은 탈세 문제로 드라마에서 몇 년째 만나볼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한 노래는 <不染 (물들지 않길)>이다. 이 노래는 애절하다. 사실 <<향밀침침신여상>>의 내용이 중반쯤 지나면 충격적으로 전개되는데, 그때 금멱의 행동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욱봉은 그래서 금멱을 미워한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원한이 더 깊다. 그 원한은 금멱을 잊지 못하는 자신에게로 향한다.


배다른 형제인 윤옥도 금멱을 사랑하는데, 형제는 결국 한 여자를 놓고 칼을 겨눈다. 이는 천계와 마계의 큰 싸움으로 번지고, 금멱은 자신을 희생해서 대참사를 막는다. 한 여자를 놓고 둘이서 벌이는 갈등은 무척 살벌하다. 양쪽에서 이런 사랑을 받으면 괴로울 것 같다.

 

이 드라마의 포인트는, 천계에 있던 욱봉이 마계의 지존이 되면서, 옴므파탈계의 강자로 자리 잡은데 있다. 이런 섹시한 눈빛을 가진 남자를 계속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 어쨌든 노래를 들을 때마다 술병 들고 길거리에서 금멱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욱봉의 망가진 모습이 떠오른다. 헤어진 연인 때문에 망가져 버린 남자, 현실에서는 별로일 같은데 드라마에선 멋있나 모르겠다. 


<<창란결>> ost,  <决爱(사랑을 놓치다)>는 꼭 들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뭔가 웅장하고 힘이 느껴지면서도 아주 절절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소란화가 동방청창을 위해 했던 선택, 즉 그를 지켜주기 위해 절망감을 묵묵히 감추며 희생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도입부 선율에서 현을 튕기는 소리가 나오는데, 그 부분이 압권이다. 나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 전부터 이미 이 곡에 매료되었다.


내가 제일 많이 따라 불렀던 노래는 <<일섬일섬량성성>>의 <全世界在你身后(온 세상이 네 뒤에서)>이다. 이 드라마도 세 번 봤다. 굴초소에게 푹 빠졌다. 장완선은 과거 속의 인물이다. 린베이싱은 그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자꾸만 돌아간다. 하지만 장완선은 항상 같은 선택을 한다. 린베이싱을 위해서다.



이 드라마는 타임슬립물로, <<상견니>>를 떠오르게 하지만, <<상견니>>가 깊이 있고 우울한 장면들이 많은 반면, 이 드라마는 알콩달콩하면서도 비 오는 날 우산 같은 존재로 린베이싱을 묵묵하게 지켜주는 장완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널 좋아해 나야

언제나 이곳에 있을게

내가 여기 있단 걸 알아줘

온 세상이 네 뒤에서

널 뒤따라 걸으며

묵묵히 기다려

남은 생을 다 바쳐서라도

네 미래를 바꿀게"


어쩜 주제곡들이 이토록 드라마 내용과 딱 들어맞는지.. 그래서 ost가 마음을 이끌면 드라마도 대체로 몰입감이 높은 편이다.


<<유리미인살>>의 ost 중에선 <步崖(낭떠러지로 가는 발걸음)이 제일 좋았다.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의 간주가 경쾌하면서도 사랑스럽다. 게다가 도입부 가사는 시구절을 읊조리는 것 같다.


"때마침 떨어져 그대의 어깨에 입 맞춘 꽃잎이야

괜스레 고집부리는 석양이야

산들바람에 빗소리는 옅어지고

그대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라"


지선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우사봉을 연기한 '성의', '성의'는 '양쯔'만큼이나 왕성하게 드라마를 찍고 있다. 둘의 조합은 <<침향여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유리미인살>>의 성의를 가장 좋아한다.


'임가륜'의 다른 드라마는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주생여고>>에서는 정말 멋졌다. '주생진'이란 캐릭터는 세상에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신의를 위해 '시의'를 버린다. 그는 정말 자기 신념대로 살다가 갔다. 이 비극적인 결말은 <<동궁>>의 비극과 견주었을 때 손색이 없을 정도로 슬프다. <<동궁>>이 피비린내 나는 슬픔이라면 <<주생여고>>는 순백의 슬픔 같다. 당연히 두 드라마 모두 ost도 좋다. 영상미도 빼어나다.


이외에도, <<장상사>>, <<이가인지명>>, <<원래아흔애니>>, <<상견니>>, <<랑전하>>, <<미자무강>> 모두 드라마, ost, 연기가 다 좋았다. 마지막으로  추천하자면, <<이가인지명>>의  ost <My everything>이다.


<<이가인지명>>은 각자의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세 남녀가 한 가족이 되어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엄마때문에 마음에 병이 있는 '링샤오'는 '리젠젠'이 있는 집을 그리워하고, 돌아오기 위해 애를 쓴다. 리젠젠의 아빠는 허쯔추, 링샤오를 모두 친자식처럼 품에 안고 키웠는데,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모두 해낸 그가 참으로 대단하다.


리젠젠의 아빠 테마곡이 바로 <我会守在这里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으마)>이다. 이 드라마의 완성은 리젠젠의 아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Goodbye Goodbye, My Children

언젠가 넌 이곳을 떠나

집에 오는 길도 점점 길어지겠지

천천히 가거라 뒤돌아 볼 필요 없으니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으마

너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단 한 명이라도 이런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이다.  모두가 다 떠난 집에 홀로 앉아 있던 리젠젠의 아빠를 종종 생각한다. 옛날의 아빠가 식탁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떠나온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돌아와 쉴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싶다.


당시에 푹 빠져서 봤지만, 새로운 드라마를 발견하면 금세 다른 것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떠난 자리에 음악이 남아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 박혀 있던 장면이나 대사들이 툭 튀어 올라온다. 그것은 내게 행복한 추억이다. 중드 덕분에 좋은 노래를 많이 알게 되었고, 더불어 중국어 공부의 동기부여까지 되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덕질 덕분에 일상이 넓게 확장되는 기분이다. 영상, 언어, 음악, 문화가 어우러져 이곳에 있다. 이런 기분은 겨울 새벽 공기 속에도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