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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울루루,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by 시드니


귀신이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울루루였다.




울룰루에 도착한 지 이틀째지만 오늘이 진짜다. 오늘은 울룰루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날이니까. 저녁형 인간인 나에게 새벽 다섯 시 기상은 가혹한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아침 5시 55분 출발 예정인 투어버스 앞에는 전날 저녁처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늘 일정은 울룰루에서 카타츄타까지 이어지는 장장 다섯 시간의 투어 프로그램. 만 아홉 살 아이가 잘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아시안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보여 조금은 안심했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Only for Japanese!”라는 소리가 들리고, 아시안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40명 정도가 타는 버스 안에서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는 우리 아이뿐이었다.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버스를 탔으니까.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울룰루는 아시안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아시아인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요즘 어디를 가도 요우커, 중국 관광객이 대세인데, 여긴 일본인이 더 많다. 그게 조금 낯설었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거대한 대륙을 가진 중국은 어딜 가도 사막과 돌산이 있다. 굳이 이 먼 곳까지 와서 또 사막과 돌산을 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은 지형 변화가 크지 않아 이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울룰루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일본인 전용 투어가 부럽기도 했다. 자국의 언어로 설명을 듣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그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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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출발했다. 운전수이자 가이드가 울룰루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꺄르르 웃었다. 대충 분위기 봐서 나도 미소를 지었지만, 왜 웃는지는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같이 웃는 게 중간은 간다. 그래도 속으론 후회가 밀려왔다. 영어 공부를 더 하고 올 걸. 아니, 공부했어도 지금 이 속도로 말하면 이해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걸 포기하고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영국식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인도어까지… 언어의 만찬이었다. 버스 안에서 한국인은 우리뿐이었다. 묘하게 뿌듯했다. 정복자의 기분이랄까. 고향에서 멀고 먼 오지(the wild)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40분쯤 달려 울룰루 국립공원 앞에 도착했다. 아직 깜깜했다. 핸드폰으로 일출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7시 22분. 시드니에서는 해가 일찍 떴는데, 내륙이라 그런지 여긴 해가 늦다. 울룰루가 가장 잘 보인다는 전망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걷던 중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등 뒤에서 묘한 기척이 따라붙었다. 등치 큰 원주민 가이드가 따라오는 걸까? 아니면 울룰루에 사는 영혼이라도 붙은 걸까?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거의 자빠질 뻔했다. 바로 옆에 울룰루가 있었다. 깜깜한 새벽 속의 울룰루는 낮의 붉은 빛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어둠에 몸을 웅크린 노파 같았다. 그 고요하고 묵직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췄다. 무서웠다. 그게 인간이 만든 공포가 아니라, 자연이 가진 압도감이었다.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에 올라섰을 때는 새벽 7시였다. 해가 뜨려면 2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더니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울룰루가 서서히 붉은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햇빛이 바위를 비추는 게 아니라, 바위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숨이 멎을 만큼 장엄했다.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광경’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51012_153658835_13.jpg 일출 전 울루루
KakaoTalk_20251012_153658835_16.jpg 일출 후 울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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