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땅에서 신성함이 느껴진다면
울룰루 일출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내가 여행하던 2009년에는 울룰루 위에 올라갔었어.” “저기에 올라갔다고?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남편의 말에 따르면 울룰루 등반은 한때 허용되었다가 낙상사고가 자주 발생하면서 2010년대 후반 금지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울룰루 정상 등반은 1936년부터 가능했지만, 원주민의 요청과 잦은 사고로 인해 2019년 10월 26일 완전히 금지되었다고 한다. 햇빛이 퍼지며 숨을 쉬는 듯한 울룰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곳에 사람이 올라간다는 게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동안 발생한 낙상 사고가 어쩌면 이 땅의 영혼이 인간에게 보낸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신성한 영토를 밟고 올라간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오만의 형태일지도.
완전히 해가 떠오르자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남편과 번갈아 아이와 사진을 찍는데 일본인 커플이 다가와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들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앞서 말했듯 울룰루에는 아시안 관광객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마주치면 괜히 반갑다. 남편이 “일본어로 인사해봐, 좋아하실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여행지다. 영어는 우리 모두에게 중립적이고 안전한 언어다. 괜히 일본어를 쓰면 여행의 거리감이 깨질 것 같았다. 여행자들 사이에는 묘한 예의가 있다. 말을 아껴 서로의 고요를 지켜주는 예의.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울룰루의 일출을 눈에 가득 담고 버스로 돌아왔다. 다음 행선지는 카타츄타(Kata Tjuta). 울룰루의 반대편에 위치한 거대한 암군으로, 차로 15분이면 도착한다. ‘울룰루–카타츄타–킹스캐년’이 이 지역의 3대 명소지만, 킹스캐년은 거리가 멀어 이번에는 생략했다.
우리는 카타츄타의 ‘왈파 워크(Walpa Walk)’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의 계곡이라는 이름처럼 협곡 사이를 바람이 스쳤다. 호주의 겨울이라 공기가 차가웠지만 해가 뜨자 적당히 따뜻했다. 문제는 아이였다. 열 살 아이에게 1~2km의 거리와 모래길은 조금 벅찼다. 주변을 둘러봐도 어린아이는 없었다.
아이의 컨디션을 살피며 걷는데 아이는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엥? 엄마 기분 좋은데?” “아까 아빠가 ‘바나나 먹어’ 했을 때 엄마가 ‘먹었어, 당신 먹어’라고 했잖아요. 배려긴 한데, 기분이 안 좋아 보였어요.” 헉. 아마 버스 안에서 바나나가 두 개밖에 없어 남편과 아이에게 양보했던 그 순간을 말하는 듯했다. 아이의 관찰력은 놀라웠다. 나는 배려를 잘하지만, 때로는 관계의 평온함을 위해 내 의견을 삼키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의 말이 정확했다. 그 배려는 ‘기쁜 양보’라기보다 ‘작은 체념’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이가 모르는 게 있다. 그들이 잠든 사이, 나는 이미 바나나를 하나 까먹었다. 무조건 포기만 하는 바보는 아니다.
그래도 가족에게 하는 배려는 행복이다. 배려의 대상이 남편과 아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 배려가 ‘당연’으로 소비될 때는 응징을 하기도 한다. (특히 남편) 카타츄타 협곡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 ‘배려’에 대한 대화만은 유난히 오래 남았다. 시간이 쌓여 암석층이 되듯, 아이의 시간도 그렇게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우리아들 많이 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