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루루가 조금 지겨워질 때쯤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화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두 번째날 저녁 스케줄은 울룰루 선셋 & BBQ 투어였다. 오후 5시 무렵, 울룰루가 보이는 언덕에서 와인과 스낵을 즐긴 뒤 더 가까운 지점으로 이동해 바비큐 파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선셋 포인트에 내리니 원주민들이 후디와 청바지를 입고 그림을 팔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울루루의 자연을 보고 그렸다는 그림은 패턴이 선명하고 아름다웠지만 선뜻 주머니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소비가 정말 그들에게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왜인지 앵벌이 풍경이 겹쳐 보였다.
그림을 파는 원주민들을 지나 선셋 포인트로 가니 여행사에서 제공한 스낵과 와인이 준비되어있었다. 관광객들과 일렬로 서서 휴지를 손으로 집고 스낵을 기호대로 받았다. 다들 위생과 질서를 잘 지키는 느낌이라 편안했다. 누구 하나 음식을 먼저 선점하려 하지 않는 풍경. 이런 곳에서 안정을 느낀다. 와인과 스낵 맛은 평범했지만 장소가 특별하니 맛도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쵸는 거의 10년 만에 먹는 것 같다. 탄수화물 덩어리라 잘 안먹지만 오늘은 와그작 소리를 내며 2-30개를 먹었다. 사막의 밤공기는 괜히 두려웠고 음식이라면 뭐든 일단 뱃속에 넣어야 안심이 됐으니.
잠시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지는 시간의 울루루는 이제 쉬러 가는 한 마리의 곰처럼 보인다. 어이없게도 이제 울룰루가 조금 지겹게 느껴진다. 비행기에서, 일출 투어에서,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이미 여러 번 본 풍경이었다. 에어즈록 지역은 울룰루 관광 외에는 할 게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가 1박 2일 혹은 무박으로 다녀간다고 했다. 나도 오늘까지면 충분히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저녁 BBQ 장소로 이동했다. 가격대가 있는 식사라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우리는 먼저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에는 영국인 가족이 왼쪽에는 일본인 가족이 앉았다. 영국인 가족 중 엄마와 인사를 나눴다. 어디서 왔는지, 휴가인지, 얼마나 체류하는지 묻는 평범한 여행자 간의 대화였다. 그러다 그녀가 딸이 한국에 가고 싶어한는 말에 “혹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때문이야?”라고 하자 옆에 앉은 딸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주 여행을 오기 전에 영화를 보고 와서일까 꽤 등장인물과 음악에 대해 대화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영국인 가족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데 일본인 가족이 조금 소외된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내 성격이라면 먼저 말을 걸었겠지만, 해외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일본인들을 생각해 눈인사로만 대신했다. 남편은 또 “일본어로 인사해봐”라며 장난을 쳤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행 중에는 거리감이 곧 예의일 때가 있다. 물론 속으로는 묻고 싶었다. 도쿄에서 오셨는지, 일본 어디 사는지. 하지만 오늘은 온리 잉글리시. 그들도, 우리도 여행자니까.
이윽고 음식이 준비되었다. 각자 줄을 서서 접시에 고기를 담았다. 밤이 깊어지자 울룰루는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머리 위로 별들이 쏟아졌다. 가이드가 별자리를 설명했지만 솔직히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밤보다 별이 더 많은 울룰루의 하늘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부족했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감탄 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