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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열나는 아이 (여행 중 아프면 정말 ...)

by 시드니


호주에서는 타이레놀을 아세트아미노펜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약을 못산 촌극...




결국 걱정하던 일이 생겼다. 아이가 열이 났다. 어제 새벽 찬바람을 쐬고 건조한 공기 속을 오래 걸은 탓인지 금세 목감기가 왔다. 마른기침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체온이 38도 가까이 올라갔다. 다행히 한국에서 챙겨온 해열제를 먹이니 잠시 열이 내렸다. 아이는 금세 잠들었지만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은 다행히 일정이 거의 없다. 오전엔 푹 쉬고 오후엔 비행기만 타면 된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열 살 아이와 울룰루 트래킹은 조금 이른 도전이었다. 단체 관광객을 보면 대부분 성인이고, 어린아이는 드물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은 돼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결국 부모의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엔 아이가 더 크고 우리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다시 와야겠다. 건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타운 스퀘어에서 아점을 먹기 전, 마트에 들러 약을 샀다. 아주 어린아이용은 아니어도 만 7세 이상 복용 가능한 약은 많았다. 어차피 성인 약의 절반 정도로 조절하면 된다. 선반에서 Nurofen이라는 이름의 약을 발견했다. 이부프로펜 성분이었다. 한국에서는 타이레놀 계열을 주로 쓰지만, 이곳에선 이부프로펜 약이 주류였다. 타이레놀은 보이지 않았다. 설명서를 보니 7~12세는 6~8시간 간격으로 1정씩, 하루 최대 4정까지 복용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호주에서는 타이레놀을 ‘acetaminophen’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타이레놀(Tylenol)의 주성분을 acetaminophen이라 하지만, 영국·호주 등 영연방에서는 ‘paracetamol’이라는 이름을 쓴다. 즉, 타이레놀계 약을 찾으려면 paracetamol을 봐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못 산 것이다. 여행 중 갑자기 열이 나면 paracetamol과 ibuprofen, 이 두 가지를 함께 챙기면 된다. 교차 복용이 가능하다.


여기서 타이레놀계 해열제를 찾지 못함..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 있어서 교차 복용을 하니 아이의 열은 37도 후반 정도로 유지됐다. 내 경험상 이렇게 오르내리다가 하루쯤 지나면 안정된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오를지 몰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울룰루에서 시드니로 이동하자마자 바로 귀국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소아과를 들를 시간이 될까 걱정이 앞섰다. 남편은 아이 상태를 보고 “괜찮을 것 같다”며 안심시키지만, 부모의 걱정은 그런 말로 줄어들지 않는다.

연착으로 악명 높은 젯스타 항공을 제시간보다 3시간 후에 올라 시드니로 향했다. 기다림에 지쳤는지 아이는 조용히 잠만 잤다. 열은 조금 내렸지만 몸이 축 처진 아이를 보니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머릿속은 온갖 상상이 난동을 부렸다. 혹시 열이 다시 오르면 어떡하지. 경기를 하면 어쩌지. 그래도 이곳은 호주다. 공기가 맑고 바이러스 걱정은 덜하니 단순한 감기일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면 여행도 풍경도 글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울루루 떠나는 날. 3시간 연착된 젯스타…



세상 어떤 일보다 절실한 바람 하나.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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