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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Dec 19. 2019

저 안 똑똑해요

월급을 사장만큼 주던가


Boss   명이 말한다.

"자신이 사장인 것처럼 일하세요!"

옆에 있던 동료가 조용히 실룩인다.

"월급이 사장이 아닌데 무슨."  






"너, 잘하잖아."

오전 회의시간. 육아휴직에 들어간 동료의 업무를 배분하고 있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동료는 평소 뛰어난 업무 실력을 뽐냈던 터. 묵직한 프로젝트가 부장 손에 들려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성공만 시키면 조직에서 승승장구가 뻔한 대형 프로젝트! 라며 부장이 침을 사방으로 튀기며 약을 팔고 있다.


팀원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승승장구고 나발이고 6시에 퇴근이나 하면 다행. 다들 1.5인분의 일을 겨우겨우 해내고 있는데 여기서 더 추가되면 끔찍하다. 내 눈도 최대한 먼산을 향해 있다. 그런데 불길하다. 갈곳 모르던 부장의 손가락이 점점.....


"시드니!"

"" 아니라 "왜요?" 먼저 튀어나온다. 

속으로 외친다. '나 지금 CEO지시로 A 프로젝트하고 있고 네가 최근에 B 프로젝트로 시켰잖아ㅜㅜ'  부장이 씩 웃으며 말한다. "똑똑한 네가 하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번 생각해보라는 부장의 말과 함께 회의가 끝났다.


자리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똑똑하다".... 이 말이 이렇게 기분 나쁜 말이었나? 상대를 인정해주는 말인데 엄청 기분이 나빴다. 왜냐면 "네가 다하자!"라는 뜻이니까. 사실 업무배분 상 이 프로젝트는 H과장님에게 가는 게 맞았다. 타 본부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이 과장님은 적응기간을 오래 가지고 있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고 있으니 정식 프로젝트를 맡을만한데, 왜 또 나한테 왔냐고...


동기에게 메신저를 했다. "우리 회사는 기업이 아니고 NGO 같아. 돈이 아주 많은 NGO." 동기가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힘 좋은 놈이 소는 계속 키우고 쉬는 놈들은 계속 쉬잖아. 월급은 심지어 쉬는 놈이 더 많이 가져가는데." 동기가 격하게 공감했다. 본인 부서도 그렇단다. 가끔 기업을 다니는지 굿네이버스를 다니는지 헷갈린다며.  


일의 배분이 연차와 난이도에 맞게 되면 상관이 없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다. 내 연차에 비해 유독 과한 일이 온다. 일을 탁월하게 잘해서 그런가?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대기업에서 직원 하나가 특출나봤자 얼마나 특출 난다고. 그저 시킬만하니까 계속 일이 온다.


이게 유독 3년 차 때 심했다. 입사 후 최. 초.로 선배를 잘 만나서 프로젝트가 순항이었다. 그 착한 선배는 자신의 공은 뒤로 해두고 나를 열심히 칭찬하고 다녔다. 시드니 아니었음 자신이 이걸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선배의 말은 순수했다. 근데 회사라는 생태계에서 그건 "일 시킬만한 애"로 바뀌었다.


일이 몰렸다. 부서 모든 사람들이 부사수 대상으로 날 지목했다. 모든 '정'의 '부'였다. 모든 '정'들은 다른 '정'을 비난했다. '너는 나랑 하고 싶지?'하고 묻는 건 모두 마찬가지. 미안하지만 난 너네 모두가 싫었다. 어차피 너네도 편하려고 이용하는 건지 내가 모를까 봐.


한의원에서 가서 머리에 침을 맞았다. 스트레스가 극도였다. 결국 부장에게 상담 신청을 했다. 부장은 하루 시간표를 쪼개서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조직관리에 젬병인 부장이었다. 하루 시간표를 보냈다. 시간표로 정리하니 하는 일이 엄청 없어 보였다. 결국 업무조정은 되지 않았다. 그냥 해!


결국 내가 나섰다. 전체 회의시간에 모든 정의 부가되는 건 말이 되지 않고, 나도 지금 무슨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모든 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나아진 건 모두 일을 덜 시켰다는 것. 무조건 나에게 던지던 일을 자신들이 스스로 했다.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Junior에서 Middle management로 넘어가는 지금. 이젠 내가 정이 되어 프로젝트가 온다. 억울하게도, 내가 Middle Management가 되자 회사의 정/부 개념이 없어졌다. 아무래도 폐해가 많으니까. 나도 어설픈 후배를 받느니 혼자 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또 일이 몰린다. 이것도 네가 하고, 이것도 네가 하고...


이번에 신규부서가 생기면서 갈 일이 있었다. 결국 못 갔다. 부장이 지금 프로젝트는 '내'가 해야 한다고. 그 부서에 사실 가고 싶었다. 나도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책임감에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 날보며 부장은 와서 농담했다. "시드니는  인기가 많아."    뻔했다.


한 사람이 평생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정해져 있다. 조직에서도 완급조절을 해줘야 한다. 지난 3년간 100킬로로 달려왔으면 이번 1년은 80킬로로 달리고, 다음 1년은 60킬로로 가야 지치지 않는다. 이걸 제발 Boss들도 알아주면 좋겠다. 6개월 동안 힘들게 굴렸으면 일주일이라도 좀 여유를 줘야 한다.

안 그럼 영영 서로 못 보는 수가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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