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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Dec 02. 2019

발에 뽀뽀해야 진짜야

진짜 끝까지 사랑한다는 뜻이야


말도 못하게 방황하던 시절,

그래도 끝까지 가지 않은 건

엄마가 내 발에 뽀뽀를 해줘서



극도의 사춘기를 보냈다. 사춘기는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답답함을 느꼈다. 한달동안 해외연수를 다녀온 친구는 미국인처럼 보였다. 미국인이 되고싶어졌다. 바로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영어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는 학원비를 알아보더니 월40만원이나 되는 학원에는 갈수 없다고 했다. 위로 고등학생 둘이 있는데 무슨 중학생이 학원이냐며.


", 나는 중요하지 않는 자식이구나."가 내 머릿 속을 지배했다. 가난한 주제에 왜 자식을 셋이나 낳아서 나에게 지원을 못해주는지.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첫째였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윤선생, 수학선행, 논술학원에 매여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학원없이 자유롭게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나를 부러워하긴 했다. 내 마음은 지옥인지도 모르면서. 



『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는다. 저 별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니 내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겨난 것들일텐데. 그렇다면 저 별은 도대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 것 일까. 소년의 궁금증엔 해답이 없다. 

- 김영하 <그림자를 판 사나이>  』

 

나는 대체 누구인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 저 별은 저렇게 빛나는데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는거지. 해답없는 물음은 어두운 내면을 더 깊게 팠다. 내가 만든 작은 굴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물려받은 교복도, 물려받는 옷도, 물려받은 문제집. 물려 받은 모든 것에 화가났다. 방에서 '아아악!' 소리를 지르고 바닥이 꺼지게 발을 쿵쾅거렸다. 다른 부모님같으면 화들짝 놀라 방문을 열고 아이를 감싸 안았겠지만, 부모님은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그분들은 첫번째, 두번째 사춘기를 겪으신 분들이었다. 세번째는 껌이었다.  


비록 껌인 셋째였지만 나름대로 심각했다. 방에서 혼자 소동을 피우다 지쳐 침대에 누워 입을 가리고  ('발리에서 생긴일' 조인성처럼) 흐느꼈다. 문틈 사이로 울음소리가 흘러나갔다. 어떤 자극에도 덤덤하던 부모님도 눈물엔 약했다. 아빠는 방문에 귀를 대고 엄마에게 "쟤 괜찮아?"하고 물었다. 엄마는 "쟤 사춘기 잖아."라고 하며 보던 TV를 마저봤다. 능수능란했다.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아예 연필을 놨다. 전교에서 노는 영재는 아니었지만 전교에서 30~40등 안에 드는 '공부 잘하는 딸'이 었다. 39등 대신 39점 성적표를 갖다 줬다.부모님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중학생이 무슨 공부냐, 그냥 놀아라.

(이런 나이브한 정신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학급임원+방송반 조합의 평범한 모범생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영어학원 사건을 계기로 아예 공부에서는 손을 뗐다. 수업이 시작되면 맨 뒷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이제 중3이니 공부를 좀 해야하지 않겠니"하고 자리를 바꾼 후, 맨 뒷자리에서 귤을 까먹었다. 선생님 몰래 귤을 까먹는 게 당시 유일한 기쁨이었다. 귤껍질을 깔때 나는 '사사삭'소리가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줬다.  


그리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모 아이돌 가수의 팬클럽 임원이 됐다. 그 가수의 모든 공방을 쫓아다니며 우리 회원들(?)을 관리했다. 성적은 끝을 모르게 추락했고 학교를 나가긴 했지만 모든 일상은 그 아이돌에게 맞춰져 있었다. 팬클럽의 임원인 걸 부모님도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탈선이었지만, 엄마는 우리집에서 재밌는 인물이 나왔다고 기뻐하며 그 아이돌이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녹화해줬다. (하...)


모든 걸 초탈한 부모님이 드디어 내 걱정을 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지역 내외로 흉흉한 사건들이 많았다. 우리집 근처에서도 중학생이 혼자 골목을 거닐다 화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게다가 부모님은 '그것이 알고싶다'의 열혈시청자였다.  


아무리 밖에서 놀아도 집에는 11시 전에 들어갔다. 혼자 들어가면 혼날 것 같으니 항상 우리집 고등학생들이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어느날, 그 가수가 팬미팅을 했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팬미팅을 꽤 오래했다. 시계를 봤다. 12시였다. 집에 도착하니 1시.


택시에서 내려서 집으로 뛰어가는데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1개도 아니고 2개도 아니고 3개였다. 엄마, 아빠, 고등학생. 고등학생이 "어! 저깄다!"를 외치자 셋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마음은 달려가서 안기고 싶었지만 죄책감은 나를 반대로 뛰게했다. "아악!"소리를 지르며. 결국 잡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눈을 들어올리니 팔짱을 끼고 날 노려보는 엄마, 아빠가 보였다. 능수능란한 분들이었지만 그건 범죄에 노출되지 않는 범위까지였다. 엄마는 손을 떨고 있었다. 그 손을 보니 괜히 졸렸다. 사랑받지 못한 자의 날선 마음은 스스르 녹아버렸다. ",  그래도 중요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스스로 일어난게 아니었다. 누군가 내 발을 만지고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내 발을 만지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이 아이를 지켜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쉬지 않고 내 발에 뽀뽀를 했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항상 발에 뽀뽀를 해줬다.  


셋째라서 피해를 봤다고 신나게 떠들었지만 사실 막내라서 받은 사랑과 혜택이 많았다. '엄마아빠가 죽으면 니가 부모야'(첫째가 자주 듣는말) '언니가 되가지고! 오빠가 되가지고!'(모든 손윗 형제가 듣는말) 이런 책임을 떠넘기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조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은 명절이 되면 나부터 찾았다. 손에 사탕을 쥐어주며 볼을 매만져주고 등을 두드리고 예쁘다, 사랑스럽다, 귀엽다고 해줬다. (어리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엄마아빠가 하는 행동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딱 하나 다른 점은 발에 뽀뽀를 하는 사람은 엄마와 아빠 뿐이라는 것. 아무리 내가 좋다고, 사랑한다고 외치던 연인도 발에는 뽀뽀를 못하더라. 


엄마는 중학교 3학년의 발바닥을 얼굴에 대고 뽀뽀를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의 발이야 포슬포슬하고 귀여울지 모르지만, 240mm에 육박한 중3의 발바닥은 성인의 것과 다름없었다.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바닥과 닿는 발, 하루종일 빛을 보지 못하고 속 앓이를 하며 숙성의 시간을 보내는 발, 썩어버린 마음과 초연한 눈을 지탱하느라 문드러진 발. 그 발에 엄마는 입술을 대고 있었다. 쪽쪽 소리를 내며.


쪽쪽 소리와 함께, 사춘기는 끝났다. 방황 할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아이돌을 쫓아가든 영어를 못하든  39점을 맞든 상관없었다. 그저 이 발에 뽀뽀를 할 수 있다면. 이 발이 안전하게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신경 썼다. 늦은 저녁 내내 마음을 졸였던 엄마는 기적을 만난 것처럼, 다시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은 것처럼 내 발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발을 만진다는 것,

발에 입술을 댄다는 것,

그건 엄청난 사랑이다.



『 처음에 나는 잘못 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로커룸에서 은수가 벗어놓고 간 신발에 가만히 자기 발을 넣어보던 사장은 단지 신발이 편한지 궁금했거나 자기 사이즈에 맞는지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중략)

우리의 높고 호젓한 입이라는 것이 몸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까마득한 아래의 발에 닿는다면, 어느 타인의 것이 어느 타인의 것에 그렇게 닿는다면 기적이 아니라 무얼까. 

- 김금희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




우리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아이에 발에 똑같이 뽀뽀를 한다. 하루종일 아이를 지탱했던 발에 뽀뽀를 하고 나서야, 내가 이 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다 사랑한다는 게 실감이 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도 언젠가 내가 밉겠지. 그 생각이 들면 가슴이 미어진다.(엄마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미운 순간에, 발바닥을 양손에 포개서  입을 맞췄던 엄마를 기억해주길 바라며. 오늘도 아이 발에 뽀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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